[세상읽기]나는 종이다

기자 2023. 4. 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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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나는 신이다>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신이 배반한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문장 그대로 해석하면 신이 사람들을 배반했다는 것이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데, 다 보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통’ 교회에 가면 목회자는 자신을 ‘만유의 주(Lord of all)’인 신의 뜻을 대신 전파하는 ‘종(servant)’이라고 낮춘다. 신도들은 주의 종 말씀에 의지해서 신이 약속한 구원을 추구한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그런데 이곳 ‘이단’ 교회는 다르다. 목회자가 자신을 주되신 신이라고 선언하고, 자신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약속한다. 사람들은 이 약속을 믿고 눈앞에 살아 있는 주를 섬기고 있다. 한국 사회에 자칭 ‘만유의 주’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종’이 이렇게나 많다니! <나는 종이다>로 제목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부제는 ‘주가 배반한 사람들.’

더 놀라운 것은 자칭 구세주의 모습. 서슴지 않고 막말과 쌍욕을 내뱉는다. 교리는 또 어떤가? 나를 구세주로 믿으면 천국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 수준이 이런데도 모두 ‘아멘’으로 화답한다. 가족을 버리고, 세상을 등지고, 헌금하고, 헌신한다. 어쩜 저럴 수 있지? 눈살을 찌푸리다가 막말과 쌍욕을 입에 달고 사는 정통 교회의 주의 종도 떠올랐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일제강점기 이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여덟 글자로 단순 교리를 전파한다. 자신이 구세주라고 말만 안 할 뿐, 사실상 구세주 역할을 하며 절대 권력을 휘두른다. 헌금을 바치라고 한다. 현금이 없으면 빚을 내서 바쳐라. 다들 ‘아멘’으로 화답한다.

이쯤 되면 뭐가 이단이고 뭐가 정통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구세주 믿으면 천국. 불신자는 지옥, 아멘.” 주술화된 교리로 신도를 꼬드기고 협박한다. 구세주를 자처하든 구세주 대행자 노릇을 하든, 모두 주술사다. 초일상적 힘을 조작해 현실 세계에서 통하는 실제 목적을 얻으려고 한다. 초일상적 힘은 신과 접속한 신비한 체험에서 나온다. 실제 목적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무병장수하는 것. 현세에서는 이를 얻을 수 없으니 내세에서 영생불멸하면서 누리자! 이게 주술사가 약속하는 구원의 실제 내용이다. 나의 초일상적 힘을 믿고 따르면 구원받을 수 있다. 이 말에 넘어가 구세주를 믿으면 구원받기는커녕 종이 된다.

일찍이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구원 종교의 초월성에 주목했다. 구원 종교는 부당한 현실을 초월하는 예언을 한다. 베버는 예수의 가르침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누구나 사랑하라는 말씀은 매우 추상성이 높은 성스러운 가치다. 이를 실천하면 할수록 당연히 좁은 혈족윤리에 갇힌 현실과 불화하고 충돌할 수밖에 없다. 혼자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하다. 교회는 구체적인 타자와 사랑에 빠져 있는 현실과 충돌하며 보편적인 타자를 사랑할 수 있도록 초월 윤리를 가르치고 실천한다.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베버는 이러한 보편적 형제애 윤리가 혈족, 인종, 신분,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 장애 등 온갖 불평등을 주조하는 사회적 범주를 깨치고 민주주의 사회를 열었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준다. 보편적 형제애 윤리를 실천하면서 인류는 줄기차게 작은 자를 존엄한 인간으로 만들어 왔다. 예수가 참으로 인류의 구세주인 이유다. 하지만 아직도 이 땅에는 작은 자가 너무나 많다. 길을 잃어 영혼이 갈급하다. 이런 작은 자에게 예수를 실천하면 그와 나 모두 종이 아니라 인간이 된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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