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의 세상현미경] 한국경제 괜찮은가

이홍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2023. 4.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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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글로벌 경제가 어지럽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은행이 쓰러지고, 165년 전통의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 은행이 망했다. 독일의 막강한 은행인 도이체방크가 흔들렸고, 미국 대형증권사 찰스슈와브도 위험하단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의 수출 급감과 무역수지 적자다. 3월 기준 수출이 551억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3.6% 감소했다. 무역수지는 46억2100만 달러 적자로 13개월째 진행 중이다. 도대체 한국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답을 얻기 위해서는 이렇게 된 이유와 그 밑바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글로벌 금융 상황이 한국경제를 심하게 괴롭힐 것 같지는 않다. 여진은 있겠지만 위기의 본질이 알려져서다. 알려진 위험은 수습 가능성이 높다. 또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방호벽을 치고 있어서다. 2월 말 기준 4252억9000만 달러로 세계 9위다. 1997년 IMF시절처럼 달러 유동성을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

문제는 수출과 무역수지 적자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큰 원인이다. 이로 인해 한국 1위 수출품인 반도체에 불똥이 튀었다. 한국은 반도체 수출의 60%를 중국(홍콩 20%, 중국본토 40%)으로 수출한다. 이 시장이 막히며 2월 수출물량이 전년 동기대비 마이너스 42.5%였다. 중국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이유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수지 흑자국이었다. 중국이 매년 6~8%의 GDP 성장을 해주어서다. 그런데 2022년엔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성장률이 3%로 주저앉았다. 이에 중국내수가 급감했고 한국수출에 막대한 타격이 왔다. 이런 것들이 겹치자 2022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대중국 무역이 적자로 돌아섰다. 수출은 줄어드는데 각종 소재와 원자재 수입은 증가해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그동안 잘하고 있던 한국의 기둥 산업들이 포화기나 쇠퇴기로 접어든 것에서 찾아야 한다. 반도체를 보자. 한국은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로 잘 먹고 잘살았다. 그런데 이 산업이 부가가치가 떨어지고 성장이 정체되는 포화기 산업이 되었다. 조선산업은 포화기로 진입한 지 오래다. 철강도 마찬가지다. 포스코는 중국의 저가 철강수입으로 힘들어한다. 전기차 등장으로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도 포화기로 들어가고 있다. 한때 수출을 주도했던 LCD 디스플레이는 아예 국내생산을 포기했다. 한국의 주력산업들이 포화기와 쇠퇴기로 진입하면서 한국경제가 힘을 잃게 된다. 그 배경에 중국기업들의 약진이 있었다.

그럼 한국경제는 망하는 것일까? 아니다. 초격차 경쟁력으로 무장된 새로운 먹거리 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는 2005년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업은 2017년부터다. 이후 불과 5년 만에 매출액이 메모리에 버금가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2022년 4/4분기 시스템 반도체 매출이 7조를 넘어 낸드플래시를 제쳤고 D램에 육박했다. 이 산업은 메모리와 달리 성장기 산업이다. 질적 수준은 어떨까?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3나노 최고난도 공정을 개발하며 시스템 반도체 1등인 대만 TSMC를 놀라게 했다.

전기 자동차 배터리에서의 경쟁력은 글로벌 넘사벽이다. 한국기업들이 중국의 CATL이나 BYD 등과 격렬히 경쟁하고 있지만 성질이 다르다. 중국기업은 저가형(인산염) 배터리에 집중하고, 한국은 고가형(삼원계)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기업들도 저가형으로 진입하고 있어 중국과의 한판 대결이 예상되지만, 중국기업들은 고가형 진입을 꿈도 못 꾼다. 한국기업들의 초격차 경쟁력 때문이다. 특허를 보면 안다. 한국 배터리 선두주자인 LG에너지솔루션의 특허는 2월 기준 2만6000개가 넘는다. 중국의 선두주자인 CATL은 4000개를 조금 넘는다.

조선에서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싸구려 벌크선을 만들고 방만 경영하다 망했던 한국 조선업에 찬란한 햇빛이 든다. 고부가가치와 친환경 선박 건조에서의 초격차 경쟁력 때문이다. 2022년 기준 한국은 고부가가치 LNG와 초대형 원유운반선 건조에서 글로벌 발주량의 58%를 쓸어왔다. 독보적 글로벌 1위다. 여기에 차세대 초격차 기술이 준비돼 있다. LNG, 메탄올, 전기 배터리, 수소 배터리로 움직이는 초절정 기술들이 출격을 대기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부가가치가 낮아진 LCD 산업을 버리면서 중국에 디스플레이 패권을 뺏겼지만 고부가가치 OLED 시장이 커지고 있어서다. 기술은 당연히 넘사벽이다. 최근 한국을 넘어서자고 일본 정부, 소니와 파나소닉 등이 야심 차게 출발시켰던 일본 JOLED사가 파산했다. 한국의 OLED 디스플레이 기술을 넘지 못해서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도 수출과 무역수지는 왜 비실대고 있을까? 아직 차세대 주력산업들의 시장이 충분히 크지 못해서다. 전기차를 보자. 2022년 기준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전체 자동차 시장의 7.9% 정도다. 파운드리 매출 역시 삼성전자의 메모리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도 유사하다. 하지만 한국기업들이 이들 산업에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할 날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이들 기업과 한국이 버텨주는 것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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