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한민국 의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기자 2023. 4.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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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늘 건강보험 수가(진료비)가 낮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대도시에서 10대 응급환자가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거리를 떠돌다 사망해도, 지방 병원에서 연봉 4억원으로도 의사를 못 구해 일주일에 절반이나 응급실 문을 닫아도, 대학병원이 소아청소년과 입원환자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서라고 한다. 지난달에는 소아청소년과 개원의들이 수입이 줄어 병원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며 폐과를 선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모든 일이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서 벌어지는 것일까? 의사들 주장대로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면 의사들도 제대로 된 월급을 못 받고 있을 것이다. 일은 힘든데 건강보험 수가는 낮다는 기피 과목 의사의 수입은 더 낮아야 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대한민국 의사는 선진국 의사들 중 가장 돈을 많이 번다. 다른 나라와 의사 수입을 비교할 때는 그 나라 의사 소득이 노동자 평균 임금의 몇 배인가를 본다. 그 나라의 소득 수준을 반영해야 공정하게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OECD 국가에서 전문의 월급은 노동자 월급의 2.5배 수준인 반면 한국 전문의 월급은 4.4배에 달했다. OECD 평균에 비해 1.8배 높고,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인 OECD 국가 중 1위이다. 개원의 소득 수준은 더 높다. OECD 국가 개원의 소득은 노동자 월급의 4.5배인데 한국 개원의 수입은 7.6배이다.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이다.

전 세계에서 소득 수준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미국 의사보다 한국 의사가 돈을 더 많이 번다. 미국 의사 20% 이상이 참여하는 메드스케이프 의사 수입 조사 결과를 보면, 2019년 노동자 평균 임금 대비 전문의 월급은 4.2배, 개원의 소득은 5.2배였다. 한국 전문의 월급은 미국에 비해 약간 높은 수준이었지만, 개원의는 1.5배나 많았다. 이른바 기피 과목 의사들의 수입도 다른 과목에 비해 별로 낮지 않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전체 의사 평균 소득(2억3700만원) 대비 기피 과목 의사의 수입은 외과와 흉부외과에서 5% 낮았고, 산부인과는 평균 수준, 신경외과는 38% 높았다.

폐과를 선언한 소아청소년과 개원의들의 주장은 사실과 더욱 거리가 멀다. 이들은 지난 10년간 소득이 25% 줄어 병원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복지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개원의 소득은 2010년 약 1억3000만원에서 2019년 약 1억8000만원으로 늘었다. 가장 적을 때는 노동자 평균 임금의 4.2배, 많을 때는 5.0배에 달하는 소득을 올렸다. 다른 과목에 비해서는 최근 소득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2010년 개원의 평균 소득의 90% 수준이던 소아청소년과 개원의 소득은 2019년 66% 수준까지 낮아졌다. 다른 과목 의사를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있을 순 있지만, 폐과 선언이라는 아이들의 건강을 볼모로 한 실력 행사를 정당화할 만큼 생활고를 겪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의과대학에 입학했고, 산더미 같은 공부를 하느라 남들처럼 대학생활도 제대로 못했고, 주 80시간의 살인적인 수련의 과정을 견뎌냈으니 그 정도 소득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에 따라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왜 문제 삼느냐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들이 철저하게 자본주의 방식으로 능력에 따라 돈을 벌고,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실력을 행사한다면 우리 사회가 의사들에게 준 특권도 내려놓아야 공정하다. 환자는 자신의 병을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는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전문가인 의사에게 결정을 위임한다. 대신 의사는 환자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높은 수준의 직업 윤리를 약속하고, 환자와 사회는 의사에 대한 높은 수준의 신뢰와 존경으로 보답한다. 이것이 의료전문가인 의사와 환자가 맺은 사회적 계약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한국 의사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환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파업과 폐과를 무기로 삼는 것은 사회적 계약을 깨뜨리는 행위이다.

높은 수준의 직업 윤리를 요구하지 않는 다른 직업처럼 돈을 벌겠다면 환자의 건강을 앞세워 의사 수를 늘리는 데 반대하거나 폐과 선언을 해서는 안 된다. 환자를 위한다면 돈을 더 벌기 위해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의료체계를 개선하고 병원에 부족한 의사를 늘리기 위해 수가를 올려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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