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발전 말고 밭전, 공사 말고 농사

기자 2023. 4. 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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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1년 전의 일이다. 2012년 여름 팔당 두물머리의 유기농민들은 민관 협력 생태학습장 조성 약속이라는 합의서를 들고 자신들의 경작지를 떠났다. 그들이 나간 자리에서 중장비가 땅을 뒤집고 잔디밭과 자전거도로를 깔았다. “겨레의 기적이 숨 쉬는 우리의 한강 두물경”이라고 적힌, 해남 땅끝마을에서 볼법한 표지석도 세워졌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이야기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두물머리에 경작단지가 시작된 것은 1976년부터이고 1990년대 중반에는 팔당 유기농 단지로 확대되었다. 농민들이 피땀으로 건강한 땅을 가꾼 덕분에 이곳은 수도권 최대의 유기농업 단지가 되어 서울 시민들에게도 좋은 먹거리를 공급했다. 그러나 2009년 5월, 이명박 정부가 4대강사업을 시작하면서 두물머리 일대는 ‘한강 살리기 제1공구’ 사업 부지가 되었다. 유기농민들은 갑자기 한강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몰렸고, 하천 점용 허가 취소를 통보받았다.

농민들은 농지 보존 친환경 농업 사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저항을 시작했다.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으로 경찰력이 수차례 투입되었고 농민들은 고발과 벌금의 위협을 받았다. 60여 농가가 함께했던 반대운동은 2011년이 되자 4개 농가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때부터 싸움은 새롭게 시작되었고 더 커져갔다. 남은 농민들을 응원하고 4대강사업에 대한 반대의 뜻을 함께하기 위해 전국의 환경단체, 생협 조직, 성직자, 시민들이 두물머리로 모여들었다. 수십 동의 천막을 치고 미사를 진행하고 모종을 심고 공연을 열었다. 팔당 에코토피아에는 생명의 활력이 넘쳤다. 이른 새벽 농성장을 철거하러 들이닥친 경찰과 공무원들은 갈대와 부들을 들고 웃고 춤추는 시위대를 보고 당황했다. 투쟁은 진화를 거듭했고 ‘유기농 대작전’이라는 도심 시위와 ‘팔당 우드스탁’ 축제도 열렸다.

2012년 4월, 유기농민들을 지지하는 단체와 개인들이 ‘두물머리 밭전위원회’를 발족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불법이라면 자신들을 불법 경작자로 고발하라고 외쳤다. 두물머리 단지를 더욱 친환경적으로 관리하면서 시민과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담은 대안 모델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기념비적인 구호가 등장했다. 두물머리 유기농지를 지키기 위한 선언문의 마지막 문구는 “레저 말고 삶을, 발전 말고 밭전을, 공사 말고 농사짓자!”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한 성장과 무한 파괴의 다른 이름인 발전도 아니고 끝없이 국토를 파헤치는 공사도 아닌 생명과 살림이라는 선언이었다.

2012년 8월14일, 천주교 수원교구의 중재 속에 4대강 추진본부와의 합의가 이루어졌고 3년4개월의 싸움은 막을 내렸다. 결국 두물머리 유기농 단지는 지켜지지 못했고 생태학습장 조성도 아무런 진척이 없다. 4대강의 16개 보 역시 건재하고 윤석열 정부는 이를 최대한 써먹겠다고 한다. 하지만 11년 전 팔당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곳에 이미 지금 우리의 모든 곤경을 헤쳐갈 수 있는 미래가 살짝 펼쳐져 있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신공항과 케이블카를 밀어붙이면서 만드는 탄소중립 기본계획 따위가 다 무엇인가. “발전 말고 밭전”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의 국가 비전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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