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대치동서 ‘마약 시음회’라니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약을 섞은 음료를 마시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자주 다니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열린 ‘시음회’다. 중간고사 대비 기간이라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이 더 많은 때였다. “기억력과 집중력을 올려주는 음료”라며 플라스틱 병을 하나씩 건넸다고 한다.
의심 없이 음료를 받아든 아이들에게 시음회 일당은 “보는 앞에서 음료를 다 마시고 가라”고 했다. 아이들은 맛이 어떤지 등 설문조사에도 답했다. 부모님 전화번호를 묻고, 시음 이후 추가로 음료를 마실 의사가 있는지도 확인했다고 한다.
시음회를 한 일당은 곧 아이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 아이가 마약을 한 것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다음 날 아침 협박 문자도 돌렸다고 한다. 이들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조건을 걸며 부모에게 금품을 요구했다. 한 중학생 학부모는 “아이 친구가 당할 뻔했는데 다행히 뚜껑에 따라 한 모금만 마시고 버렸다고 하더라”며 “음료를 다 마셨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를 일”이라고 했다. 이 사건으로 자신도 모르게 마약을 복용한 아이가 최소 6명이다. 경찰은 시음회를 한 일당과 이들 배후에 있는 인물을 추적하고 있다. 묻지 마 마약 범죄의 표적이 된 아이들은 어지럼증과 두통 등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에 따르면 음료 속 필로폰 등이 소량이고, 혈관에 직접 투여한 것이 아니라 다행히 몸에 큰 이상이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모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여덟 살 아들을 키우는 한 대치동 주민은 “아이에게 밖에서 아무것도 받지 말라고 여러번 당부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딸을 둔 어머니는 “한 가족의 인생을 모두 앗아가려고 한 범죄”라며 “마약 범죄 처벌이 약하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근처 학교와 학원에도 비상이 걸렸다. 한 중학교 교사는 “요즘 중간고사 준비 기간이라 아이들이 안 그래도 긴장해 있는데 범죄자들이 이를 노린 것 같다”며 “학교 차원에서도 음료를 마신 학생들이 있는지 조사했다”고 했다. 근처 학원들도 학부모들에게 ‘안전에 주의해달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대치동은 우리나라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곳이다. 사건이 일어난 사거리부터 아파트 상가, 골목 구석까지 학원들이 빽빽하게 있다. 수많은 학생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교와 학원을 밤늦게까지 오가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표적으로 마약을 먹이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공분이 일고 있다. 대치동 학원이 끝나는 밤에 고등학생 딸을 데리러 나온다는 한 아버지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지 못하는 나라에 미래가 있겠느냐”고 했다. 가슴에 와닿는 아픈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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