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38] 황제(皇帝)의 기원
황제(皇帝)라는 명칭을 처음 쓴 사람은 누굴까. 역사상 ‘첫[始] 황제’라고 해서 시황제(始皇帝)라고 불렸던 이가 그 주인공이다. 앞에다가 나라 이름을 붙여 우리가 흔히 진시황(秦始皇)이라고 부르는 인물이다.
황제라는 말은 삼황오제(三皇五帝)라는 전설상의 군주들로부터 비롯했다. 그러나 진시황 이전 임금들은 대개 ‘황’이나 ‘제’를 따로 사용했다. 혹은 후(后), 왕(王), 천왕(天王) 등의 직함을 썼다. 황제는 그를 모두 통합한 이름이다.
이른바 “덕은 삼황을 넘고, 공은 오제보다 높다(德兼三皇, 功高五帝)”는 의미에서 생긴 극단의 존칭이 바로 황제다. 앞의 황(皇)은 ‘하늘’ ‘빛’ ‘찬란함’의 뜻이라는 점에 이의가 없다. 그러나 뒤의 제(帝)는 풀이가 다소 엇갈린다.
혹자는 불 피우는 나무를 얽어 하늘에 제례를 올리는 상황을 그렸다고 풀이한다. 다른 쪽은 꽃받침[蒂]을 형상화한 글자라고 설명한다. 한자의 토대인 갑골문의 초기 용례를 보면 이 글자는 ‘하늘’이라는 뜻을 얻기 전에 조상신(祖上神)을 가리켰다.
꽃받침이 열매를 맺는 부분이라서 ‘생명의 연원=조상’이라는 추정이 그에 따라 붙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이후 글자는 ‘하늘’이라는 뜻을 더 보태다가 모든 질서를 아우르는 ‘하늘의 신’, 즉 상제(上帝)와 천제(天帝)라는 의미도 획득했다.
진시황 이후 땅의 모든 권력은 늘 황제의 차지였다. 황제는 삼엄(森嚴)하다고 해도 좋을 등급과 위계의 정점(頂點)이자 상징이기도 했다. 그로써 과거에는 늘 황제 권력 중심의 철저한 관본(官本)의 사회가 펼쳐지곤 했다.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의 3연임 뒤 중국은 그 황제 권력을 되살리고 있다. 통치 권력은 무한으로 강해지고 민간의 역량은 끝없이 초라해지는 관강민약(官强民弱) 현상이 더 깊어질 듯하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확실히 거둬들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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