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건강한 도시 부산, 미래를 위한 유산
아이들 웃으며 뛰놀도록 활기찬 도시 조성 힘써야
신승건 부산 연제구보건소장
요즘 엑스포 소식을 접할 때마다 런던에서 보낸 꿈같은 일 년의 시간이 떠오른다. 아침에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샌드위치에 물병 하나만 챙겨서 런던 시내 곳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원 없이 돌아다녔다. 특히 보안요원과 인사를 나눌 정도로 숱하게 드나들었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전 세계의 공예품과 장식 예술을 주요 전시품으로 하는 박물관으로, 대영박물관이 오래되고 진귀한 보물들이 모인 곳이라면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은 아름답고 섬세한 일상품들이 모인 곳이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이 있는 사우스 켄싱턴은 박물관이 많기로 유명한 런던에서도 손꼽히는 장소다. 자연사 박물관, 과학 박물관까지 런던을 대표하는 박물관들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모여 있어서 주말이면 아이들 손을 잡고 모여든 가족들로 북적거린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오늘날 영국을 대표하는 이 박물관들이 1851년에 런던에서 열린 제1회 만국박람회, 즉 세계 최초 엑스포의 유산이라는 점이다. 19세기 영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 앨버트 공의 제안으로 하이드 파크 한쪽에 지금은 화재로 사라진 수정궁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짓고 제1회 만국박람회를 개최했다. 영국은 박람회에 모여든 6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에게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신문물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앨버트 공은 박람회가 끝난 뒤 그 수익금으로 하이드 파크 남쪽의 사우스 켄싱턴 일대의 땅을 사들였고, 거기에 박물관들을 세워서 박람회에서 주목받았던 물품들을 전시했다. 오늘날 런던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의 시작이 바로 엑스포인 것이다.
자, 이제 그만 현실로 돌아와서.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부산 연제구청 화단 앞에 펼쳐진 커다란 2030 부산 엑스포 응원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그 앞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2030 부산 엑스포의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라는 주제는 훗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우리는 이 역사적인 이벤트를 통해 아이들에게 어떤 유산을 남길 수 있을까. 웅장한 건축물들일까. 아니면 시대의 흐름을 바꾼 놀라운 기술들일까.
먼저, 2030 부산 엑스포는 도시 환경을 개선하고 친환경적인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2030 부산 엑스포의 첫 번째 부제인 ‘자연과의 지속 가능한 삶’에도 이러한 의지가 담겨 있다. 기대컨대 엑스포를 준비하고 개최하는 과정을 통해 부산의 공기 질은 개선되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공기 질이 좋아지면 부산 시민의 호흡기 질환 발생률이 낮아지고, 자연 속에서 여가를 보낼 기회가 많아지면서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2030 부산 엑스포가 부산 시민의 건강 증진으로 이어지리라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두 번째 부제 ‘인류를 위한 기술’에도 나타나 있듯, 엑스포는 세계 각국의 최신 의료 기술과 지식을 소개하고 공유하는 장이기도 하다. 2030 부산 엑스포가 부산의 의료 산업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많은 경제 전문가가 산업화 시대에 제조업이 부산의 경제를 이끌어왔다면 이제는 첨단 의료 산업이 그 역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흐름은 부산 시민에게 발전된 의료 기술을 누릴 수 있는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의료 산업의 발전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이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부산 시민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수많은 관련 연구에서 좋은 일자리가 근로자 삶의 만족도와 정신 건강에 중요하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2030 부산 엑스포는 의료 산업의 발전과 그에 따른 좋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세 번째 부제 ‘돌봄과 나눔’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말마다 딸아이 손을 잡고 찾아가던 런던의 박물관들, 그때는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과 그 안을 가득 채운 보물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것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며 쓸데없는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무엇이 본질인지 어렴풋이 보인다. 엑스포의 유산은 기념비적 건축물도 놀라운 발명품도 아니다. 화창한 날씨에 부모 손을 잡고 나들이 나온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야말로 우리가 엑스포를 통해 남겨야 할 진짜 유산이다.
아무쪼록 이번에 부산을 찾은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에게 부산 시민의 엑스포 개최를 향한 진심이 잘 전해졌기를 바란다. 언젠가 우리의 아이들, 아이들의 아이들이 지금보다 활기차고 건강해진 도시 부산에서 뛰어놀며 역사 교과서 속 2030 부산 엑스포 이야기를 배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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