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57] 돌이 날아다니면? 멋있지 뭐
뭐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배웠다. 성실함을 미덕으로 삼았던 시대의 부모님과 선생님들 덕에 무겁고 진지한 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변하였지만 나는 지금도 인내하고 연단하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가벼움의 시대’에 살면서 이렇게 옛날 사람이 되어가나 싶다가도, 나도 모르게 가벼움에 매료되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유현미 작가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조각과 회화, 사진의 방법을 순차적으로 이용한다. 우선 오브제를 조각해서 원하는 형태를 만들고 작업실의 한구석에 그 조각들을 설치하고 사진에 찍힐 모든 표면에 칠을 한다. 유화물감으로 정교한 그림을 입히면 돌 모양 조각이 돌로 변하는 마술이 펼쳐진다.
만약 이 돌들이 바닥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면, 말 그대로 그냥 돌이다. 영화 세트에 등장할 만한 돌, 너무 실감나게 만들어서 가짜인 것을 숨기고 있는 돌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떠있는 돌은 다르다. 그것도 거친 돌덩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우아한 아치형의 실내 구조물 사이로 유영하는 돌들은 신기함을 넘어 매력적이다.
실재와 허구, 진품과 모조품, 소품과 작품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현미의 돌은 공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시켜준다. 그의 작품은 설명이 필요 없이 직관적인 방식으로 감상자를 설득하지만 한번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같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교묘하게 정렬된 그림자는 애초에 세트를 구성할 때 작가의 손에 의해 그려졌거나 마지막 사진을 찍는 단계에서 햇빛이 들어 생겨났다. 촬영 이후에 디지털 후보정은 거의 하지 않는다.
작품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 즉 촬영에서 중요한 것은 카메라의 위치 선정이다. 돌들이 가장 극적으로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을 찾아서 사각형으로 따내어 화면 바깥쪽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돌은 저처럼 우아하고 통쾌하게 계속 떠있을 수 있다. 결국 작업 과정의 진중함과 고단함이 이토록 멋진 ‘불가능한 가벼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 나는 역시 옛날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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