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66)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교통로…삼일빌딩은 그곳의 애환을 알고 있다

기자 2023. 4.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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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고가도로(1971년)(왼), 2023년 청계천로(오). 셀수스 협동조합제공

위 사진은 1971년 서울 청계천로의 모습이다. 버스와 택시가 다니는 지상도로가 있고, 그 위로 시원하게 뻗은 고가도로가 보인다. 그리고 고가도로 오른쪽에는 검은 빌딩이 홀로 우뚝하다. ‘청계천로’이지만 물길은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개천(開川)’이라 불린 청계천은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모든 물이 모여, 서울 도심 한가운데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관통하며 흐르는 하천이다.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나고 평시에는 더러운 물이 괴어 불결했던 청계천의 관리는 조선시대에도 매우 중대한 문제였다. 일제강점기에 ‘맑은 내’라는 청계천의 이름을 얻었으나, 여전히 관리가 쉽지 않았던 이 하천은 1958년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된다. 갈수록 증가하던 시내의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개 공사에 착수한 것이다. 교통 문제 해결이라는 미명의 이면에는 한국전쟁 이후 더 늘어난 천변에 늘어선 판잣집을 정리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1961년 복개 공사가 끝나자, 하천 위로 너비 50m의 도로가 생겼으며, 주변으로 아파트와 상점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1967년에는 청계천로 위로 한국 최초의 고가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해, 1971년 충무로 세종호텔 부근부터 동대문구 용두동에 이르는 5.6㎞의 공사를 마쳤다. 이 도로는 처음에 ‘서울시 고가고속도로’라고 불리다가, ‘삼일고가도로’, 다시 ‘청계고가로’로 이름이 바뀌었다. 삼일고가도로라는 명칭은 1971년 사진의 높은 건물인 삼일빌딩에서 유래하였다. 1970년 완공된 31층의 삼일빌딩은 한동안 서울의 랜드마크였다. 도심에서 마장동까지 신호를 전혀 받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삼일고가로는 박정희 대통령이 외국사절들과 워커힐로 곧장 달려가기 위해 건설했다는 설도 있으나, 대통령 행차는 그때나 지금이나 논스톱이니 믿기 어렵다.

2000년대 이후 청계고가로의 노후화로 안전 문제가 제기되면서, 2002년 취임한 이명박 서울시장은 고가로의 철거와 함께 복개 도로까지 뜯어내는 청계천 복원사업을 시행하였다. 2023년의 사진에는 복원된 청계천 변의 산책로를 사람들이 걷고 있고, 그 양옆으로 2차선 도로가 만들어져 있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란 명성은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지만, 다른 건물에 가려 머리만 보이는 삼일빌딩은 여전히 건재하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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