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연금개혁으로 파국을 막아낼 것인가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은 우리 연금개혁에 주는 섬뜩한 경고장 같다. 지구와의 충돌이 예상되는 혜성의 존재를 우연히 발견한 별 볼 일 없는 과학자, 그들은 온갖 노력으로 정치지도자와 언론에 그 치명적 심각성을 알린다.
그러나 정작 정치지도자와 언론은 사안의 중대성을 외면하고, 진지하게 해법을 모색하기보다는 위기상황조차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가볍게 이용한다. 그 결과는 모두의 파국이다. 세상은 고개를 들어 다가오는 위험을 직시하는 그룹과 고개를 들지 않고 위험을 외면하는 그룹으로 나뉜다. 결국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최고 의사결정 권한을 정치적 이득, 기업 이익에 사용하는 정치지도자는 파국의 주범이고, 시민의 알 권리에 충실하게 복무하지 않고 정치지도자가 올바른 결정을 하도록 압박하지 못한 언론은 파국의 종범이라 할 수 있다.
<돈 룩 업>은 우리에게 고통을 요구하는 연금개혁이지만, 외면하지 말고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금개혁 어젠다를 잠시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언론 주목거리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연금 전문가 집단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진 않다. 일각에서 연금은 다단계 폰지사기라며 불신을 부추겨 세대 연대 기반을 훼손하기도 한다. 다른 일각에선 정해진 미래인 인구구조에 근거한 재정추계 결과인데도 전망치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고 지속 가능성에 대한 위기는 공포감 조성이라고 호도한다. 영화는 정치지도자, 언론, 전문가, 시민들이 위험 경고를 정면으로 마주해 대응함으로써 파국을 면하는 해피엔드로 만들기를 권고하고 있다.
연금보험료율 인상 빨리 시작해야
지난 3월 말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가 확정·발표됐다. 저출생과 고령화의 심화, 경기둔화의 영향, 그리고 연금개혁의 지연으로 재정전망은 2018년 ‘제4차 재정추계 결과’에 비해 악화됐다. 재정수지 적자 시점이 2042년에서 2041년으로, 기금 고갈 시점이 2057년에서 2055년으로 각각 앞당겨졌다. 기금 소진 이후 그해 연금급여 지출을 그해 연금보험료로 조달하기 위한 부과방식 비용률은 2060년 기준 26.8%에서 29.8%로 3%포인트 높아졌고, 2080년 34.9%로 정점을 찍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평균소득자 40년 가입 기준 40%인 상황에서 보험료율을 30% 넘게 부담하는 것은 ‘낸 것보다 덜 받는’ 구조가 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왜 국민연금은 1998년, 2007년 두 차례 개혁에도 불구하고 지속 가능성에 ‘빨간 경고등’이 켜진 것일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초저출생 및 초고령화로 인한 인구절벽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현세대의 너무 낮은 연금보험료율 부담으로 인해 미래세대로 과도하게 부담이 전가되는 불균형한 연금의 수급·부담 구조 때문이다. 4차 재정추계 때 2022년 출산율은 1.24명으로 전망했으나 실제 출산율은 0.78명으로 낮아졌으며, 연금제도 가입자 대비 수급자인 제도부양비는 2023년 24.0에서 2050년 95.6, 2080년 143.1까지 높아졌다. 경제활동자 4명이 노령연금 수급자 1명을 부양하는 구조에서 1명이 1명을 부양하는 구조가 되고, 심지어 1명이 1.4명을 부양하는 구조가 된다는 의미이다.
연금은 세대 간 적절한 자원 배분을 통해 노령층의 소득 안정을 조율하는 장치이고, 연금개혁은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해 세대 간 자원 배분의 균형추를 맞추는 작업이다. 거대한 인구절벽이 빚어내는 미래세대 부담의 불공평한 쏠림을 연금개혁으로 재조정하는 것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한 핵심과제가 바로 보험료율 인상이다. 40~50대 중장년의 1세당 인구수는 80만~90만명대이지만, 20대 미만은 20만~40만명대이다. 인구가 많은 중장년층이 연금수급 세대로 넘어가기 전에 연금 부담에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금보험료율 인상을 가능한 한 빠르게 시작해야 하는 이유이다.
연금보험료율 인상은 정치적으로 매우 부담스러운 과제이다. 모두가 달가워하지 않는 인기 없는 정책이다. 그러나 현세대의 보험료율 인상은 미래세대에게 부당하게 쏟아질 부담을 덜어주어 국민연금을 지속 가능하게 보장할 수 있는 필수적 해법이다. 보험료율 인상을 우리 자녀, 손자녀들도 안심하고 연금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부모, 조부모의 세대 공생 실천이라고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해주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우리 자녀들에게 지속 가능한 지구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불편한 삶을 감수하며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으로 ‘연금개혁은 부모세대의 세대 공생 실천’이라는 정치적 비전을 설득시키며 역사적 사명감으로 관철해내야 한다.
‘우리들의 연금 이야기’가 돼야
또한 궁극적으로 연금개혁은 모든 세대에 걸쳐, 모든 계층에 걸쳐, 남녀 모두가 노후소득을 안심하고 보장받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연금 혜택에서 배제된 사람들, 연금 가입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연금개혁에서 잊지 않아야 한다.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빈곤 노인들,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들, 취약한 플랫폼 노동자들, 연금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영세 자영업자들, 실업을 반복하는 불안정 노동자들, 가족 돌봄노동에 묶여 연금에 가입되지 못한 많은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당신들의 연금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연금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연금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때 연금개혁은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기초연금 등 다층연금체계를 통해 실질적인 기본 보장이 이루어지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제 국회 연금특위는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 다층연금체계를 포함한 구조개혁으로 논의를 확대했고,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10월 재정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개선 대안을 보고할 것이다. 모쪼록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연금개혁을 정치적 비전으로 설정하고 누가 더 책임 있는 정치집단인지를 보여주는 선의의 경쟁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지혜를 모아 진정성 있는 결단으로 파국을 피할 것인가? 뻔히 다가오는 파국을 외면하고 얄팍하게 자기 이익에 이용만 할 것인가?
석재은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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