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40] 비운의 국명 ‘중화민국’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2023. 4. 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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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중국(中國)’이라는 명칭은 20세기 초반까지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었다. 신해혁명 후 중화민국이 성립하자 일본은 1913년 각의 결정을 통해 (조약문과 국서를 제외하고) ‘지나국(支那國)’을 통칭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支那(일어 발음 ‘시나’)는 한(漢)·당(唐)·명(明)·청(淸) 등 왕조·정권을 뛰어넘어 통사적인 의미의 중국을 칭하는 용어로 에도시대부터 사용되던 지리적 명칭이었다.

당초 중국인들에게 특별한 위화감이 있는 명칭이 아니었으나, 중국이라는 이름이 자리를 잡고 ‘국권회복운동’이 거세지면서 국명 문제가 불거진다. 국민당 정부는 지나 명칭에 멸시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불쾌감을 표하는 한편, 모든 문서에서 ‘중화민국’을 사용해 줄 것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으나, 일본은 쉽사리 응하지 않았다. 일본은 일본대로 ‘중화(中華)’라는 용어에 거부감이 있었다.

1930년 10월 일본은 새로운 각의 결정을 통해 공식 용어로 중화민국만을 사용하도록 지침을 변경한다. 이때 결정을 주도한 이가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郎) 외무대신이다. 전문 외교관 출신으로 대표적인 국제파 각료인 시데하라는 당시 일본의 이권 보호와 국제사회의 이해(利害)를 양립시키는 유연한 ‘협조 외교’를 기조로 삼았고, 가급적 중국과 마찰을 피하려는 그의 지론이 국명을 둘러싼 논의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륙을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수교 조건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걸면서 국제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이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륙의 공산당 정권은 제3국이 ‘타이완(臺灣)’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도 민감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중화민국 또는 타이완으로 불리고 싶은 입장에서는 이민족보다 동족으로부터 더욱 혹독한 이름 탄압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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