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새는 국민연금, 수익률 4%대… 운용사도 세계 100위내 ‘0’

강우석 기자 2023. 4. 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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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K금융, 新글로벌스탠더드로]
투자전쟁 뒤처진 한국금융
글로벌 투자 전쟁에서는 소외되면서 국내에서만 존재감을 발휘하는 ‘우물 안 개구리’. 글로벌 금융 중심지를 꿈꾸지만 실상은 연기금과 민간 자산운용사, 시중은행 모두 세계 수준에 비해 크게 뒤처진 것이 ‘K금융’의 냉정한 현실이다. 기금운용본부를 전북 전주로 옮긴 국민연금은 900조 원이 넘는 운용 자산에도 불구하고 해외 금융사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최고경영자(CEO)가 바뀔 때마다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는 한국의 은행들은 전체 이익의 대부분을 이자이익에 의존하고 있고, 민간 자산운용사는 단 한 곳도 세계 100위 안에 들지 못했다.


전주 이전 국민연금 ‘우물안 개구리’
인력 年 30명 이탈… 전문성 약화
국내 자본시장 부동산-예금 몰려
삼성자산운용 세계 103위 그쳐


“인천공항에서 택시로 이동해도 고속도로에서 3시간을 허비합니다. 오죽하면 한국까지 와서 국민연금을 안 만나는 자산운용사도 있겠어요.”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아시아 본사(홍콩)에서 한국 기관 마케팅을 담당하는 A 씨의 넋두리다. 한국에 출장 올 때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방문하는데, 전북 전주를 오가는 게 막막하다는 얘기다.

한국이 글로벌 ‘투자 전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국민 노후 자산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지리적 한계에 따른 인력 유출과 전문성 부족으로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민간 금융회사들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지 못하고 국내 시장에만 안주하는 모습이다.

● 끝없는 인력 유출…해외에서도 “국민연금 패싱”

국민연금은 운용 자산이 7070억 달러(약 926조 원)로 전 세계에서 큰손 중의 큰손이다. 1조4250억 달러를 굴리는 일본 공적연금(GPIF)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그러나 몸집만 클 뿐 운용 성과는 떨어진다. 국민연금의 최근 10년(2013∼2022년) 수익률은 4.7%로 캐나다 CPPI(10%), 노르웨이 GPFG(6.7%), 일본 GPIF(5.7%) 등 주요 연기금에 비해 저조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전·현직들은 2017년 전주로 이전하며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했다고 평가한다. 양질의 투자처를 발굴하려면 시장과 쉼 없이 소통해야 하는데 지리적인 한계로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을 퇴사한 B 씨(42)는 “해외 금융사 사이에서 ‘NPS(국민연금의 영어 약어) 패싱’이란 말이 돌기도 했다”며 “시중 유동성이 풍부한 시기에 국민연금은 더 이상 금융사들의 최우선 고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고 의사결정기구라 할 수 있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이 결여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위원회는 총 20명인데 이 중 노동조합·사용자 대표, 지역 가입자 대표 등 정부 측 인사만 30%(6명)다. 정부 입김에 취약한 데다 자산 운용을 잘 모르는 비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큰 것이다. 전문성이 뛰어난 운용역들은 국민연금을 계속해서 떠나고 있다. 국민연금이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년) 사이 퇴사한 운용역은 137명이었다. 해마다 30명 가까운 인력이 이탈한 셈이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 이사장은 “전 세계 연기금들이 대체투자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인 만큼 운용 조직을 서울로 복귀시켜 입지 매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민간 운용사들도 존재감 미미

민간 자산운용사들의 성장도 더디기는 마찬가지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풍부한 인력과 자금을 무기로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는 반면 아시아 금융허브를 꿈꾸는 한국의 금융사들은 아직 국내 경쟁에 머물고 있다.

우선 세계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엔 규모가 너무 작다. 글로벌 비영리 연구기관 싱킹 어헤드 인스티튜트가 지난해 발표한 ‘글로벌 500대 자산운용사’에 국내 운용사 9곳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100대 운용사에는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삼성자산운용이 2021년 말 기준 운용자산 2521억 달러로 103위, 미래에셋자산운용은 108위였다.

국내 자산운용사가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 규모에 비해 자본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투자자들이 해외 투자에 소극적인 데다 투자금 대부분이 부동산이나 예·적금 상품에 몰려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금융사들이 다양한 해외 투자 상품을 내놓지 못하는 탓도 있다.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국내 운용사를 대형화하는 한편 해외 진출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블랙록과 같은 글로벌 운용사들은 수십 차례에 걸친 M&A로 몸집을 불렸다”며 “M&A에 인센티브를 주는 지원으로 글로벌 30위권 운용사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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