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광어냐 넙치냐
<양철북>으로 유명한 소설가 귄터 그라스의 작품 중에 <넙치>가 있다. 이 종이 우리나라의 넙치와 같은 종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당대의 많은 사람들은 넙치가 광어와 같은 어종이라는 걸 모른다. 두 호칭이 모두 표준어인데 광어만 유독 쓰이기 때문이다. 민중 언어로는 넙치라는 말이 원래 더 폭넓게 쓰였는데, 광어가 대세가 된 것은 1980년대 양식 보급 때문이다. 광어가 널리 양식에 성공하면서 시중에 팔릴 때 광어라고 표기됐다. 그 과정을 잘 알 수 없는데, 아마도 광어라고 한자어로 표기해야 더 고급 어종으로 대우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양식 광어는 회 대중화의 신호탄이 되었다.
서울에서도 예전부터 회를 먹었지만 요릿집이나 일식집에서 전문적으로 팔렸고, 시중의 대폿집에서도 제철에 나오는 여러 해산물을 간혹 회로 먹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 동네 대폿집에서 조개회와 밴댕이회(표준어는 반지)를 내는 걸 먹어본 적이 있다.
1970년대 말~1980년대의 서울지역 회는 의외로 민물 회가 주도한 시대였다. 향어와 역돔이라는 이름의 외래 어종이었다. 각각 이스라엘잉어, 틸라피아가 원래 명칭이다.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고 팔기 좋도록 개명을 한 셈이었다. 특히 역돔이라는 이름은 걸작(?)이 아닐 수 없다. 돔은 고급 생선인데, 틸라피아의 육색이 참돔과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틸라피아는 민물 생선이고 돔과 관련이 없다. 이들 민물 생선은 양식장에서 길렀는데 잘 먹어서 살이 올랐고 기르기 쉬웠다고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바다 생선이 더해졌는데 붕장어였다. 산지(주로 남해안)에서 잡혀 서울로 왔다. 생명력이 강해 수조에 담겨서도 오래 살아남았고, 값이 싼 데다 활어로 팔 수 있어 인기였다.
횟집의 역사를 바꾼 건 광어 양식의 성공과 대중화였다. 성격이 온순하고 살이 잘 오르며, 회를 쳤을 때 먹을 수 있는 살 부분이 월등히 많아서 이른바 수율이 좋은 생선이었다. 광어는 우럭에 비해 두 배가량 횟감이 더 나온다. 서울지역은 광어 덕에 활어 붐이 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어와 짝을 이루는 우럭도 대량으로 풀리면서 회가 대중음식의 일종이 되었다. 산소통이 부착된 수송차량(속칭 물차), 활어 회 수조 제작, 여기에 회 전문 요리사를 묶어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된 건 광어 덕이었다. 1980년대 들어 광어회 중심으로 활어 포를 뜨는 기술자의 영역이 새로 생겨났다. 일제강점기의 유산인 일식 요리 기술은 ‘日食’이라고 하는 식당에서 도제관계로 전수되다 광어회의 유행으로 ‘일식집, 횟집’이라는 두 가지 직업 영역으로 나뉘게 되었을 정도로 양식 광어의 출하는 큰 파장을 불러왔다.
자연산 광어는 서해안에서 주로 잡힌다. 봄에는 산란을 위해 해안으로 더 붙어와서 어획량이 늘어난다. 자연산 광어가 활어 아닌 선어로 시중에 많이 나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양식 광어는 1㎏까지 기르는 데 1년 가까이 걸려 효율상 크게 기르지 않는다. 봄에 만나는 대형 광어는 대개 자연산이다. 자연산은 양식보다 기름진 맛이 덜하다. 하지만 자연산을 싸게 먹어볼 수 있는 게 바로 지금 철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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