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왈의 아트톡] ‘임기중력’ 뚫은 발레스타 강수진
엊그제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의 연임 소식이 있었다. 네 번째 연임이다. 국립예술단체장으로 처음이라는데, 굳이 국립예술단체장으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풍토에서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 전국 각지의 사례를 다 따져봐도 처음이 아닐까 한다. 같은 예술 현장 종사자로서 무척 반갑고 고맙고, 축하할 일이다.
한국에서 문화예술단체장(기관장) 임기는 대개 3년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직속)기관이 이 정도다. 물론 제도상, 강 단장의 경우처럼 몇 차례 연임도 가능하게는 돼 있다. 지역의 사정은 이만 못하다. 지역문화재단 등 지자체 문화예술기관장은 임기 2년짜리도 많다. 여기도 규정을 ‘2+@’로 해놓고 연임 가능성을 열어놓고는 있지만, 단임 천장을 뚫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좀 극단적인 사례지만 지자체 2년 케이스를 더 들여다보자. 열심히 잘해서 성과를 내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되는 일도 아닌, 괴롭히는 변수가 너무나 많다. 성과라! 과연 임기 2년 기관장이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봐도 이건 무리한 기대다. 첫해 1년 겨우 적응하고 나면 이듬해 마무리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기관장(기관) 경영평가라는 게 있다. 성과에 따라 약간의 보상이 따른다. 물론 못하면 손해 볼 일도 있다. 2년짜리 기관장이다 보니, 그 성과 평가가 좀 우스운 꼴이 될 때도 있다. 첫해는 이전 기관장의 성과로 평가받고, 이듬해 그 기관장의 성과는 다음 기관장의 몫이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정작 당해 임기 기관장의 평가는 없다는 얘기다. 과장된 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실상이 그렇다.
문화예술기관장의 임기와 관련해 그동안 적잖은 논의와 주장이 우리 문화예술계 내에서 있었다. 문서상 규정돼 있는 연임 가능성은 제쳐두고, 2년이든 심지어 3년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짧다는 게 중론이었다. 이럴 때 좀 길게 하자는 뒷받침 근거로 외국 사례를 들곤 한다. 문화예술 선진국인 유럽과 미국, 심지어 아시아에서도 문화예술기관장을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오래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럴 때 ‘성과’는 그 장기집권이라는 훈장을 빛나게 하는 증표가 된다. 느긋하게 오래 좀 맡겨서 드러난 성과로 평가하는 선순환의 메커니즘이 인정되는 사회구조가 부럽기는 한 것이다.
구습에 갇혀 있는 우리 문화예술계의 관행과 정책상의 이러저러한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강수진 단장의 네 번째 연임은 분명 놀라운 성취다. 우선은 세계적인 예술가(발레리나)에서 문화행정가로 변신해 성공을 일군 강 단장의 치열한 노력과 성과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다. 여기에 기적 같은 선례를 만든 정책 당국자의 용단도 간과할 수는 없겠다. 결과적으로는, 장차 우리 문화예술계의 밝은 미래를 위해 좋은 변화의 메시지거나 징조일지도 모르겠다.
원래 발레는 중력과의 싸움이다. 그 싸움에서 승자가 된 예술이다. 여느 공연예술이 지상에 굳건히 발을 딛고 중력의 자장 속에서 나와 세상을 드러내고자 할 때, 발레는 지상의 공중을 향했다. 무용수들은 인고의 고통을 참고 발끝을 곧추세워 날기를 꿈꿨다. 그리하여 획득한 신비와 동경의 아우라야말로 참을 수 없는 발레의 매력이다.
예술 밖 사회에서 지상의 중력 중엔, 기관장의 임기 같은 어쩌면 사소한 일도 있다. 겨우 2∼3년 주어지는 그 거부할 수 없는 중력 아래서 우리나라 문화예술기관장들이 펼치고 싶은 도약의 꿈은 한낱 ‘이카루스의 날개’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냥 주눅들게 하던 그 한계를 강수진이 뚫었다. 그 거대한 중력을 무릅쓴 발레리나의 저력이란 과연 이런 것인가 보다.
연초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던 강 단장과 점심 겸 환담을 한 적이 있다. 엊그제 인터뷰에서의 본인 말대로, 그때 많이 지쳐 보였다. 세계적인 명문 발레단(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성장하면서 배운 엄정함과 국내에서 부닥치는 관행과의 고단한 싸움이 원인 같았다. 그 고난의 십자가를 다시 짊어진 강 단장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길 빈다.
정재왈 예술경영가·연세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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