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마스크 분리공포증후군` 한국인들, 자유가 불편

이규화 2023. 4. 7. 02: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버스 승객 90% 이상 마스크 착용
공기 질 좋은 공원에서도 절반 이상 착용
감염 위험 감소했는데 착용은 비이성적
주어진 자유가 오히려 불편하다고 생각
책임 따르는 자유 회피하면 발전은 요원

"한국인들은 마스크 분리공포증후군에 걸렸다." 최근 한국을 찾은 캐나다 지인의 말이다. 외국인(일부 아시아 국가를 제외하고)이 한국에 와 보고 놀라는 일 중 하나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이다. 코로나19 엔데믹으로 접어든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온통 마스크, 마스크, 마스크다.

지난 3월 20일 실질적으로 마지막 남은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까지 해제됐으나 여전히 시민 80~90% 이상이 마스크를 착용 중이다. 의무 해제 이후 3월 말 짙은 미세먼지 농도로 인해 마스크 착용 필요성은 있었으나 공기 질이 좋았던 이달 4, 5, 6일도 대중교통 차량 내에서 대다수 시민들은 마스크를 쓴 모습이었다. 심지어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쓴 비율이 절반이 넘는다.

이유는 있다. 여전히 감염 위험이 있다는 걱정 때문에 계속 착용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감염위험이 현저히 감소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고, 이 때문에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마스크 착용을 계속 고집하는 비이성적 모습을 보인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지난 3년 가까이 써왔으니 단순 습관적 관성 탓으로 돌리는 것이 낫다. 또 남이 쓰니까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절대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하나같이 같은 행동패턴을 보이는 것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회심리학적 접근을 한다.

◇자유보다 속박에서 더 편안함 느껴

자유와 자율이 주어졌는데도 이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eedom)에서 자유 속에서보다 구속당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 심리로 해석한다. 자유를 구속보다 더 두려워해 도피하려는 경향을 띨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인간에겐 선택의 폭이 확대됐을 때 오히려 불안을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고 상정한다. 이 아이디어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후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계속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

고대 이후 중세, 근대를 거쳐 인간은 자유를 위해 투쟁해왔다. 그러나 막상 자유가 주어지니 불안하다. 20세기 들어 나치즘이나 파시즘 등에 의탁하는 증상을 보였다. 마스크 탈피를 못하는 현상이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에 의탁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겠지만, 현대 한국인들에게도 자유를 부담스러워 하는 성향이 아주 없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프롬의 시각으로 현대 한국인들이 왜 '마스크 분리공포증후군'에 걸려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지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사회·심리학적 관점

프롬은 민주 사회의 개인은 자율성에 따르는 선택과 책임에 압도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데, 개인도 마스크를 벗었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어쩌나 하는 책임의 중압감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마스크 의무 해제는 자신의 결정이 아닌 당국의 결정으로 받아들여져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불안과 또는 규제에 대한 욕구로 이어진다. 차라리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는 것이 속편하다고 생각하는 데에 이르게 된다.

사회적 규범과 압력도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프롬의 견지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팬데믹 기간 동안 마스크 착용은 많은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졌고 예의바르고 바람직한 행동이었다.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면서 자신이 사회 집단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줬다. 때문에 동질감 또는 동화감이 마스크를 계속 쓰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또 가능성은 낮지만 계속 마스크를 착용하는 행위가 바이러스에 취약한 우리 사회 노약자에 대한 연대 또는 배려의 표시일 수도 있다. 일종의 착한아이 신드롬이다.

결론적으로 자유가 주어졌을 때 개인의 심리에 뿌리 깊게 자리한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든다는 프롬의 설명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자유에 직면해 선택의 고민과 책임의 중압감을 벗어나 기존 속박에 안주하는 순응적 인간형이 되는 것이다.

◇주어진 자유보다는 쟁취한 자유

전반적으로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된 후에도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는 행동은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요인의 복합적 상호 작용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 프롬에 따르면 불안과 자기만족이 개인으로 하여금 지침이나 규제, 심지어 구속을 찾게 만든다. 세계에서 한국인이 유독 마스크 착용을 고집하는 이유는 한국인의 집단주의적 유전형질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지만, 그 어느 사회보다도 경쟁과 변화가 극심한 상황에서 리스크를 최소화 하려는 본능의 발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마스크 분리공포증후군'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자유와 자율, 개성을 외려 피하려는 집단 심리는 일찍이 20세기 전반에 권위주의 파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를 낳은 사실을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규제와 속박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과 선택의 고민을 대신해주는 전체주의 독재에서 느끼는 '탈책임'은 결국 같은 것이다. 그래서 자유는 밖에서 주어질 때보다 투쟁해 쟁취할 때 더 짜릿하고 값지다. 책임이 따르는 자유를 회피하면 사회와 국가 발전은 더디 온다. 논설실장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