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전장연 스티커, 민노총 확성기, 정치인 막말
한국의 응석 집단은 사회에 피해 주고
물의를 일으키고도 부끄러움이 없다
지하철 운행 방해 시위를 벌여온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 새 투쟁 수단을 개발해냈다. 지난주 퇴근길 서울 시청역은 전장연이 붙여 놓은 스티커로 온통 도배질 되어 있었다. 각종 구호가 새겨진 스티커 수백 장이 1·2호선을 잇는 연결 통로 바닥을 가득 메웠다. 급하게 뛰어가다 미끄러지면 어쩌나 싶었다. 삼각지역에선 역장이 “우천 시 승객이 다칠 수 있다”고 제지하자 전장연은 ‘미끄럼 조심’ 경고문을 써주겠다고 조롱하며 빨간색 스프레이를 뿌렸다고 한다. 시민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란 뜻이다.
스티커 시위는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와 상관도 없다. 서울의 모든 지하철역이 교통 약자용 동선을 이미 갖췄거나 곧 갖출 예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장연 스티커엔 이동권 주장이 거의 없다. 대신 전장연과 산하 단체가 주도하는 ‘탈시설’ 사업 예산을 늘리라는 구호로 채워져 있다. 자기들 재정 수입을 늘려줄 사업에 정부가 돈을 더 대라는 것이다. 그들이 내붙인 스티커엔 주차 단속 딱지보다 강력한 접착제가 발라져 있다고 한다. 떼기도 힘들지만 독한 화학 제거제까지 써야 해 청소 노동자들에겐 보통 고역이 아니다. 그러라고 벌인 일일 것이다. 의도적으로 고통 주겠다는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 심술 부리는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본인의 정신 구조를 ‘응석 심리’로 풀어낸 유명한 이론이 있다. 정신 분석가 도이 다케오는 1971년 저서에서 일본 사회 심층에 ‘아마에(甘え)의 구조’가 깔려 있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아마에’는 응석, 어리광이란 뜻이다. 도이는 일본인들이 응석받이 아이처럼 조직·공동체에 대한 ‘분리 불안증’을 갖고 있다고 했다. 기대려는 대상이 과거 천황에서 패전 후 미국, 고도 성장기엔 회사 등으로 바뀌었을 뿐, 거대한 존재에 복속돼 어리광 피우려는 의존적 심리 기제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아마에’는 그러나 남 괴롭히는 응석이 아니다. 일본인은 타인에 민폐 끼치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한국에도 응석 심리로 무장한 미성숙 집단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이들의 응석은 외부를 향해 공격성을 드러내는 가해적 떼 쓰기란 점에서 일본과 다르다. 한국의 응석 집단은 규범을 일탈하고 사회적 손실을 일으켜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수치심은커녕 막무가내 떼 쓰기가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착각하는 유년기 심리에 갇혀 있는 듯하다. 예컨대 민노총이 그렇다.
민노총 보고 조폭 같다는 사람들이 많다. 불법을 서슴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그들의 행태는 조폭을 빼닮았다. 그러나 조폭도 경찰은 무서워한다. 자기 행동이 잘못임을 알기에 나쁜 짓 할 때는 숨어서 한다. 민노총은 공권력을 겁내지 않는다. 경찰이 진 치고 있는 앞에서도 폴리스 라인을 넘고 도로를 점거하고 교통을 마비시킨다. 숨기는커녕 드러내놓고 공공연히 불법과 폭력을 저지른다. 외부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유아처럼, 자기들은 그렇게 해도 용인된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전장연이 스티커로 테러한다면 민노총엔 고성능 확성기가 있다. 집회 때면 필요 이상의 과도한 소음을 뿜어내 고의적으로 주변을 괴롭힌다. 민노총은 책임도 지지 않는다. 조폭은 범죄가 발각되면 감옥에도 가지만 민노총은 불법을 저질러 놓고도 뭐가 문제냐고 한다. 경찰관을 폭행하고 경찰 버스를 불태워도 당당하다. 공장을 멈춰 세워 천문학적 손실을 내놓고 손해 배상을 당하면 노동 탄압이라며 반발한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법을 만들어 손해 배상 책임을 원천 면제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책임감은 성인과 유소년을 가르는 요소다.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 의식이 없다면 미숙한 미성년자 심리와 다를 게 없다.
응석 심리는 자기만의 세상에 갇힌 유아독존의 세계관이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치인도 뒤지지 않는다. 자기애(愛)로 가득 찬 아이처럼 정치인들도 겹겹이 쌓은 특권 뒤에 숨어 무책임의 응석을 계속하고 있다. 범죄 혐의가 있어도 불체포 특권을 누리겠다 하고, 가짜를 지어내고도 면책받겠다고 한다. 광우병·민영화·천안함·세월호 괴담을 퍼트렸던 야당은 이젠 ‘방사능 밥상’ 괴담까지 입에 올리고 있다. 정상적 정당이라면 어느 것 하나만으로도 해산 감이나 그 당은 변변한 사과조차 한 적이 없다. 관심 끌려고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는 소아 병리 증세와 다르지 않다.
여당의 실세 의원이 공무원에게 “어디서 배워 먹은 거야”라고 호통치며 분노의 막말을 쏟아내는 장면은 B급 코미디와도 같았다. 그렇게 유치하기 짝이 없는 소동을 피웠어도 윤리위에 회부조차 되지 않았다. 국회의원은 늘 그러니까. 정치인도, 기득권 노조도, 시민 단체도 원래 그러려니 하고 별문제 자체가 되지 않는 한국적 상황이 더 기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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