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사라지면 생태계도 위협… RNA 기반 유전병 치료 새 길” [세계로 뛰는 중소기업]

김범수 2023. 4. 7.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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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치료제 전문기업 ‘제놀루션’ 김기옥 대표
유충서 발견 바이러스성 낭충봉아부패병
감염 땐 번데기가 되지 못하고 녹아내려
치료제 ‘허니가드-R액’ 임상 완료 공시
내성 없고 유발 바이러스만 선택적 억제
무분별 화학 농약 사용 되레 생태계 훼손
더 나아가 인류 건강에도 악영향 불가피
코로나 발발로 핵산추출기 40개국에 판매
동물용 유전자 치료제 개발 연구도 박차
“꿀벌이 사라지면 우리가 먹는 작물 수확량이 40% 줄어듭니다. 하지만 꿀벌의 유전적인 병에 대한 치료제는 전무한 상황입니다.”

서울 강서구 마곡에 위치한 유전자 치료제 전문기업 제놀루션 김기옥 대표는 지난달 27일 제놀루션이 진행하는 메인 프로젝트인 꿀벌의 낭충봉아부패병 유전자 치료제 ‘허니가드-R액’ 연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낭충봉아부패병은 꿀벌 유충에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이 병에 걸린 유충은 번데기가 되지 못하고 녹아내려 죽게 된다.

특히 이 병은 꿀벌을 멸종에 이르게 할 정도로 꿀벌 생태계에 치명적인 병으로 알려지면서 국가가 지정한 제2종 가축전염병으로 분류됐다. 2010년 이 바이러스가 창궐해 전국에 40만개였던 벌통 수가 현재 10만여개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이번에 개발해 임상에 성공한 꿀벌 치료제는 리보핵산(RNA) 기반의 유전자 치료제”라며 “그동안 과거 농작물 분야에서 RNA 기술을 활용한 유전자 변형작물은 있었지만, 그린바이오분야에서 통틀어 RNA 치료제는 세계에서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설명하는 RNA 기반 치료제는 꿀벌을 통해 나오는 낭충봉아부패병 유전 정보를 분석해 이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저격’하는 원리다. 꿀벌이 이 치료제가 들어있는 설탕물을 먹으면 꿀벌 몸속에 있는 낭충봉아부패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를 선택적으로 억제한다. 이 과정에서 꿀벌에 유익한 균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치료제는 농림축산검역본부의 세균질병과의 연구개발 과제로 개발됐다. 김 대표는 “기존에 곤충 치료제는 존재했으나 크게 보면 항생제 기반으로 유익한 균에 영향을 줄뿐더러 내성이 생겨 장기적으로 병에 더 취약하게 되고 생태계에도 영향을 준다. 또한 바이러스에 작용하는 약제는 그동안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꿀벌이 생태계와 먹거리에 주는 영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식물은 꿀벌 등의 도움에 의한 ‘수분’ 활동을 통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단 하나의 꿀벌 종이 사라져도 생태계에 교란이 발생하는 구조라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김 대표와 임직원의 노력은 결실을 맺고 있다. 제놀루션은 지난달 13일 개발한 RNA 기반 유전자 치료제 임상을 완료했다고 공시했다. 제놀루션에 따르면 임상에서 이 치료제를 투여받은 꿀벌 유충과 벌통에서 미투여군 대비 유의미한 유충의 치사율 감소와 꿀벌에서의 바이러스 분자수 감소를 확인했다. 또한 약물의 안전성과 관련, 심각한 부작용이나 꿀벌의 생리에 문제를 주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임상결과를 토대로 품목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며, 최종적으로 품목허가가 이루어지면 국내 토종벌 사육 정상화와 생태 안정화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 최초 동물용 RNA 치료제다 보니 허가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예상하기 힘들지만, 양봉농가와 생태계 보호를 고려한다면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을 것으로 김 대표는 예상했다.

김 대표는 꿀벌 낭충봉아부패병 치료제에서 더 나아가 친환경 농약에 대한 필요성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 중 먹거리 위협이 있다. 오늘날 먹거리 생산량이 감소하는데 외부 질병이나 균에 의한 것이 많다”며 “그럼에도 이를 대처할 방법이 화학 농약을 쓸 수밖에 없는 게 오늘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무분별한 화학 농약 사용은 생태계를 훼손하고 더 나아가 인류에게도 건강상 문제를 일으킨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친환경 농약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기존의 화학농약은 작물에 유익한 균도 죽일뿐더러 바이러스 질병에 대해선 유의미한 치료제는 없다”며 “하지만 RNA 기반의 친환경 농약은 유해균과 바이러스 질병에 대한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선택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제놀루션이 10~20년 후에 꾸는 꿈은 건강한 먹거리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제놀루션을 설립한 연도는 2006년이다. 당시 RNA간섭(RNAi) 관련 연구가 노벨생리학·의학상을 받는 등 관심사가 커진 상황이었다. 김 대표는 이 기술을 기반으로 항암제, 항바이러스 신약개발 사업에 뛰어들면서 제놀루션을 설립했다.

하지만 신약개발은 녹록지 않았다. 김 대표는 “신약을 개발하려면 보통 6~7년이 소요되는데 그 기간 동안 수익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 구조”라며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 투자자본만 100억원 이상 소진됐다”고 토로했다.

신약개발이라는 거대한 과제 앞에 쓴맛을 본 김 대표가 눈을 돌린 것은 RNA를 추출하는 장비와 시약 개발 사업이었다. 김 대표는 “기존에는 사람이 수작업을 통해 추출해야 하는데 기계를 통해 자동화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 국가 과제를 받아 2012년쯤 자동화 진단장치(핵산추출기)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RNA 기반 자동화 핵산추출기는 뒤늦게 빛을 봤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수많은 사람이 신속하게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만 했다. 제놀루션이 개발한 자동화 핵산추출기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꼭 필요한 제품이었다. 특히 정확도와 신속함 두 가지를 갖춘 추출기는 전 세계에서도 제놀루션이 유일무이했다.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에만 40개 이상의 국가에 1300여대의 핵산추출기를 판매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코로나 여파로 수많은 사람이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 와중에 제놀루션의 제품이 코로나 안정화에 기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때의 성과로 제놀루션이 창립할 때의 목표, 신약 개발을 다시 꿈꿀 수 있었다. 그 시작이 상대적으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곤충과 식물 분야 친환경 신약”이라고 말했다.
제약·바이오기업 제놀루션 김기옥 대표가 지난 3월 27일 서울 강서구 마곡 사옥 옥상에서 RNA 기반 낭충봉아부패병 유전자 치료제 ‘허니가드-R액’을 설명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제놀루션의 포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재 제놀루션 연구소는 2개의 실과 4개의 팀으로 구성돼 있다. 연구소에 약 45명이 근무하고 있고, 이들 중 70%가량이 석·박사 인력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한 고급인력을 늘려 동물용 유전자 치료제와 친환경 농약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제놀루션은 큰 기업이 아닌 벤처기업입니다. 누구나 가지 않은 길이지만 가야만 하는 역할을 제놀루션이 하고 싶습니다”며 “외롭고 힘든 길이지만 국가와 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주시면 힘이 될 듯합니다”고 말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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