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은 ‘물’… 아시아 최대 미술축제 ‘광주비엔날레’ 막 오르다

김신성 2023. 4. 7.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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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까지 ‘94일간 대장정’ 돌입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주제
저항·생태·환경·탈식민주의 등 메시지
연대와 사유·포용 포괄하는 작품 공개
고이즈미 메이로 ‘삶의 극장’
광주 소재 고려인 마을 다룬 설치 영상
일제 강점기 강제 이주당한 역사 조명
앨런 마이컬슨 ‘패총’
굴 껍데기 쌓인 패각 더미 스크린 삼아
산업화로 오염된 뉴욕 인근 강 보여줘

영혼을 위로하는 몸 사위 같기도 하고, 한복 입은 소녀가 지나가기도 한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형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서구형 얼굴 모습의 청소년들이 한창 토론을 벌이고 있다. 다섯 개의 영상이 어우러져 동시에 투영되는 탓이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활동하는 고이즈미 메이로의 신작 ‘삶의 극장’(2023)이다. 고려극장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광주 고려인 마을의 현재와 과거를 다룬다. 1932년 설립된 카자흐스탄의 고려극장은 중앙아시아 한국 이주민인 ‘고려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이즈미 메이로의 신작 ‘삶의 극장’(2023).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의 역사를 추적하는 작품에 광주 고려인 마을의 청소년 15명이 직접 참여했다. 광주비엔날레 제공
영상 퍼포먼스 작가 고이즈미는 권력의 역학을 다루며 정치적, 심리적 통제에 주목해왔다. 섬세하게 짜인 정서적 경험을 통해 작가 자신과 퍼포머들, 그리고 참여 관객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활용해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탐구한다.

광주에 있는 고려인 마을의 청소년 15명이 직접 작품에 참여했다. 고려극장의 기록 사진들을 바탕으로 워크숍을 갖고 연극적 장면들을 연출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사회에 적응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극작가 니콜라이 예브레이노프에 따르면, 인간은 ‘연극 본능’-일상 의례와 역할놀이를 통해 변형을 꾀하는 본능이 있다. 각자 당면한 현실을 배경으로 기록사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 변화 방법 찾기 연습을 목표로 삼았다. 이들의 조선인 증조부모들은 단지 농사를 잘 짓는다는 이유만으로도 강제 이주당했다. 그들의 후손들은 러시아 말을 쓴다. 작가는 이 모든 게 일제 강점기에 시작된 일이라고 말한다.

굴 껍데기가 잔뜩 쌓인 패각 더미를 스크린 삼아 그 위로 영상이 흐른다. 굴 껍데기는 미국 뉴욕 인근 그랜드강 주변이 원래 물이 풍부한 곳이었다는 사실과 이곳의 선주민들이 자연과 균형을 이루고 살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반면 영상은 해양오염이 심각해진 현재 모습을 보여준다. 400년 전, 네덜란드인들이 맨해튼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오래된 패총들이 이 지역을 뒤덮고 있었다.

앨런 마이컬슨의 작품 ‘패총’(2021). 뉴욕 인근 그랜드강 일대의 모호크 인디언들은 자연과 균형을 이루고 살았다.
복합 매체 작가 앨런 마이컬슨의 작품 ‘패총’(2021)이다. 그는 억압된 역사의 회복이나 선주민과 자연에 가해진 식민주의를 주제로 작업한다. 산업화 때문에 급격하게 변화한 뉴타운강과 고와누스 운하를 따라가며 영상을 촬영했다.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 일환으로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바 있다. 식당에서 나온 굴껍데기를 굴 암초로 재활용하거나 양식굴을 뉴욕항 물밑에 가라앉게 해, 물을 정화하고 해양서식지를 복원하며 침식과 폭풍의 피해를 방지하는 프로젝트였다.
이번 광주에서는 대한민국 굴양식지로 유명한 통영의 굴 패각을 사용했다. 전시 후 굴 패각들은 통영으로 되돌아가 현지 재활용 교육프로그램에 활용될 예정이다.
앙헬리카 세레 ‘내 두 번째 피부에 말의 씨앗을 뿌리다’(2023). 관객이 주위를 돌며 그 질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전통 직조 방식으로 짰다. 250 × 700 cm.
아시아 최대 미술축제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6일 개막식을 갖고 7월 9일까지 94일간 대장정에 돌입했다. 세계 각국 79명의 작가가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주제 아래 저항, 해체, 생태, 환경, 탈식민주의 등 ‘힘찬’ 메시지를 던지는가 하면 연대와 사유, 포용, 회복의 ‘부드러운’ 장을 마련해 동시대 예술을 실천한다. 원로와 신진, 여성, 원주민 등 다종다양한 스펙트럼의 작가들이 다층적이면서도 평등한 시선을 발산한다.
에드가 칼렐 ‘고대지식 형태의 메아리’(2023). 마야족의 세계관을 조명하면서 조상들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차린 의례의 흔적.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외 국립광주박물관, 무각사,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예술공간 집 등에서도 관객을 반긴다.

맨 처음 만나는 작품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블레베즈웨 시와니가 꾸민 ‘바침’이다. 제1전시실 전체를 할애할 만큼 비중을 두었다. 흙과 잔디를 실제 깔고 조성한 데 이어 밧줄을 내려 달아 숲을 형성했다.

작가는 “우리 몸과 정신이 어떻게 땅과 물에 결부되어 있으며, 이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길러지는지를 깨닫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선주민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다. 식물을 해치지 않으면서 필요한 것을 얻는 방식을 체득한 그들의 지혜와 전통을 잇는다. 지금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의 관계 회복이기 때문이다.
엄정순 작가가 철판, 양모, 천을 사용해 시각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만든 ‘코 없는 코끼리’(2023). 300 × 274 × 307㎝.
엄정순의 설치작품 ‘코 없는 코끼리’(2023)는 관객들이 조형물을 만져보고 느껴보도록 제작해 놓았다. 시각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 세웠다. 기형과 원형 사이를 넘나드는 형태를 통해 세상을 인지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제안한다. 철 파이프 골조 위에 130개의 섬유 조각으로 외피를 감쌌다.
베티 머플러는 ‘나라를 치유하다’(2019) 등 후대를 위해 생활의 지혜를 담은 그림들을 그린다.
호주의 존경받는 원로 여성 작가 베티 머플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돌보는 방법에 관해 질문한다. 삶의 지식을 나누어주는 그림을 그린다. 어느 곳에 샘이 솟고, 어디에 약효가 있는 식물이 있는지 후대를 위한 생활의 지혜를 담은 그림들이다. 1950년대 호주 남부에서 반복 자행된 영국의 핵실험으로 후유증을 겪고 있는 피찬차차라 부족의 영토와 사람들을 치유한다.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된 캔디스 린의 ‘리튬공장의 섹스 악마들’(2023)도 인상적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리튬 배터리 생산 기업이 있는 곳이자 한때 다량의 도자기를 생산해낸 장소다. ‘악마’는 우리가 대량 생산해내는 제품에서 발생하는 악영향이 아닐까.

광주=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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