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시급하다

2023. 4. 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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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가상자산 범죄 피해액 5조
투자자 보호장치 전무… 신뢰 바닥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시장이 여러 악재로 인하여 가격이 급락하고 거래량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크립토윈터’(시장침체)가 한동안 지속됐다. 지난해 5월 한국산 가상자산 ‘테라·루나’ 사건을 변곡점으로 가상자산 시장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미 달러화 약세와 예금자산의 불확실성 고조로 투자자들의 위험회피도가 높아져 예금 등에 투자했던 자금이 가상자산 시장으로 유입되어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데다 지난달 서울 강남에서 발생한 여성 납치·살인 사건이 피해자의 가상자산을 노린 계획범죄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회는 부랴부랴 가상자산과 관련한 심사소위를 처음으로 열었다. 2021년 5월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이 ‘가상자산업법’을 처음 발의한 지 22개월 만이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
가상자산의 규제는 2017년 9월 ICO(가상자산공개) 전면 금지를 시작으로 2020년 3월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을 통한 가상자산 사업자의 신고제 등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특정금융정보법은 자금세탁방지와 테러 자금 조달 방지 의무를 금융기관 등에 부여하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시행령에서 내부자 및 특수 관계인 거래금지만 성문화되어 있을 뿐 투자자 보호 장치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시장질서 교란 행위, 불공정거래 행위, 시세 조종 행위,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 등의 규제는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물론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으로 가상자산을 제도권으로 진출시켰다는 데는 의미가 있다. 기존의 회색지대에 있던 가상자산 산업을 특정금융정보법을 통하여 제도권으로 편입시켜 자금세탁방지의무와 테러 자금 조달 금지 등의 의무를 부과한 것은 고무적이나 투자자 보호 내용이 전무하여 투자자들은 여러 불공정행위와 시세 조종 행위, 불법행위 등에 노출되어 있다. 가상자산 발행인과 가상자산거래소, 투자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 문제로 발생하는 손실은 모두 투자자의 몫으로 되어 버렸다. 그 누구도 투자자가 입은 피해에 대한 사과나 책임을 지는 경우가 없이 오직 모든 투자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가 져야 한다는 고전적인 계약 이론에 국한되어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국민 8명 중 1명이 가상자산을 거래했고 최근 5년간 국내 가상자산 관련 범죄 피해액은 4조7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테라·루나’ 사건과 FTX 사건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까지 포함한다면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시장에서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해외에서 검거되면서 제2의 ‘테라·루나’ 사태를 막기 위해 디지털자산 투자자보호법 제정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현재의 법률로는 테라폼랩스의 대표를 국내로 송환하여도 내부자거래나 시세 조종 행위 혐의에 대해 자본시장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다툼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에 관한 근거법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테라·루나 사건’의 피해자들은 권 대표를 관련 법이 미비한 국내가 아니라 미국으로 보내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상자산 및 디지털자산 산업의 육성과 활성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최소한 안전장치 마련을 통하여 가상자산 시장의 신뢰성을 회복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투자자 보호를 중심으로 입법적 불비를 해소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등 법적 규제를 통하여 가상자산 시장의 불공정행위를 사전에 차단해야 할 것이다. 현재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 관련 법안 등 18개의 법안이 발의되었다. 그러나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국제적 논의 동향과 글로벌 기준 마련을 기다리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필요 최소한의 투자자 보호 체계를 마련하고 투자자 보호를 중심으로 규제 공백 상태를 줄이고 정보 비대칭 문제의 해소와 최소한 안전장치 마련과 거래 질서 확립을 통하여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거래하며 보호받을 수 있도록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조속히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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