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마흔, 왜 우울하고 허무할까?

2023. 4. 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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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시간 축을 놓고 행복 수준을 그래프로 그려 보면 U자 곡선이 된다.

마흔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바로 우울과 허무다.

마흔 이후의 삶은 우울과 허무를 끌어안고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마흔의 우울과 허무는 남겨진 시간 속에서 "내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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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명예 얻으려 아등바등 살았나” 허탈감
가혹한 현실 인정해야 삶 긍정할 수 있어
인생이라는 시간 축을 놓고 행복 수준을 그래프로 그려 보면 U자 곡선이 된다. 해맑던 어린 시절을 지나 나이가 들수록 행복 수준은 떨어지고 마흔 언저리에서 바닥을 친다. 그러다 오십이 되면서 완만하게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행복은 대체로 인생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찾아온다.

마흔에 우울해지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마흔쯤 되면 누구나 허무 때문에 몸서리친다. 목청 높여 “나는 행복하다”고 소리치는 사람도 그 속내를 보면 상처와 고통이 할퀴고 간 생채기가 마음 곳곳에 박혀 있게 마련이다. 중년의 위기가 남자의 전유물도 아니다. 여자도 똑같은 혼란을 겪는다.

마흔쯤 되면 완벽하진 않아도 직장과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룬다. 이십대보단 돈도 더 번다. 이력서를 잔뜩 써 보내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십대처럼 밤늦도록 학원을 돌아다닐 필요도 없다. 결혼하고 아이가 있다면 안정된 울타리까지 갖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안정된 것 같아도 마흔은 여전히 불안하다.

간절히 원했던 것을 손에 쥐어도 불현듯 ‘고작 이걸 얻으려고 아등바등 살았나’라는 허탈감이 밀려든다. 돈과 명예 같은 세속적 가치를 여전히 원하지만 그걸 맛봐도 생각만큼 기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슈퍼카를 타고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아도 실존적인 우울과 허무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설상가상 어린 시절의 상처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자신을 괴롭힌다. 이제 와 보상받을 수도 없다. “부모가 사랑해주지 않아서, 학창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내가 불행한 거야”라며 과거를 붙들고 억지 부려 봐야 품위만 잃을 뿐이다.

마흔은 상실의 시간이다. 결혼에서 낭만은 사라진다. 사랑하는 가족이 곁을 떠나고 우정도 퇴색한다. 헌신했던 직장에서 끝내 밀려나고 말 것이다. 야망은 힘을 잃고, 자존감은 무너진다. 이루지 못한 꿈을 떠나보내고 과거의 성공도 놓아주어야 할 때다. 지금껏 내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모래처럼 손바닥에서 빠져나간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막을 수가 없다.

상실은 우울을 몰고 온다. 상실 뒤엔 허무가 남는다. 마흔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바로 우울과 허무다. 마흔 이후의 삶은 우울과 허무를 끌어안고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중년이 괴로운 것은 상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말라”는 충고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가혹한 현실을 밑바닥까지 인정한 뒤에야 비로소 삶을 긍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흔의 우울과 허무는 남겨진 시간 속에서 “내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찾아온다. 유행을 좇고 맹목적으로 세상에 순응하던 태도를 버리라고 촉구한다. 나는 여전히 나이지만 다르게 선택하고 행동하면서 마흔 이후에는 또 다른 내가 되어 간다. 비록 한 번뿐인 삶이지만, 마흔을 통과하면서 두 가지 버전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문제에는 선명한 해법이나 단순한 원리가 없다. 수학의 정석 같은 매뉴얼도 없다. 누군가가 유튜브에 나와 “마흔이여, 내 말을 따라 살아라”고 하면 손사래 치며 거부해라. 마흔의 마음공부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정한 나를 완성해나가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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