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냈다, 0%의 기적!…도로공사, 흥국생명 꺾고 챔프전 2번째 우승
MVP엔 ‘최다 32득점’ 캣벨 영예
마지막 5차전 승부까지 이어진 대혈투에 선수들의 플레이는 초반부터 마치 슬로모션을 보는 듯했다. 스파이크를 때리기 위한 점프 타점이 낮아지면서 한 번에 마무리되지 않는 공격에 랠리가 길어졌다. 매 포인트가 체력전이었다.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공이 나올 때마다 답답한 표정을 짓는 순간이 많았다. 세트마다 순간 집중력을 잃으면 4~5점의 리드도 순식간에 따라잡히는 혼전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1승에 걸린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누구도 쉽게 놓으려 하지 않았다.
여자배구 한국도로공사가 역대 챔피언결정전 최장인 158분의 대혈투 끝에 웃었다. V리그 남녀부 챔피언결정전 역사를 통틀어 최초로 2패 뒤 3연승의 ‘역스윕’ 첫 역사를 쓰며, 통산 두 번째 챔피언결정전 정상에 등극했다.
도로공사는 6일 인천삼산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V리그 챔피언결정전(5전3승제) 5차전에서 흥국생명에 세트스코어 3-2(23-25 25-23 25-23 23-25 15-13)로 이겼다. 이로써 도로공사는 2017~2018시즌(통합우승)에 이어 5년 만에 두 번째로 챔피언결정전 정상에 우뚝 섰다.
도로공사의 우승은 V리그에서 이전까지 없었던 기적의 스토리다. 정규리그 3위로 4년 만에 ‘봄 배구’ 무대에 선 도로공사는 플레이오프(PO)에서 예상을 깨고 2위 현대건설을 잡았다. 그리고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체력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1·2차전을 내리 패한 뒤 안방 김천에서 3·4차전을 잡아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더니 ‘적지’에서 열린 5차전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여자배구 챔피언이 5차전 승부 끝에 가려진 것은 이번이 4번째였는데, 먼저 2패한 팀의 챔피언결정전 ‘역스윕’ 우승은 남녀 배구를 통틀어 첫 기록이다. 앞서 ‘2패 뒤 2연승’도 첫 기록이었다. 정규리그 3위 팀의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역대 세 차례뿐인 진기록이다.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은 전날 미팅에서 선수들을 모아놓고 “우리는 이미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올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며 “이제 그 기적이 기록에 남느냐, 팬들의 기억에 잠시 남느냐는 5차전에 달렸다”고 마지막 투지를 주문했다.
도로공사 선수들은 이날도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12-18까지 뒤지던 1세트를 20-20 동점을 만들고도 내준 도로공사는 2세트 17-12로 앞서다 동점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23-23에서 박정아의 공격으로 세트포인트를 잡은 뒤 배유나가 김미연의 공격을 블로킹하며 승부의 균형을 맞췄다. 승부처였던 3세트에서는 19-23으로 뒤져 패색이 짙었지만 상대 범실 3개에 캐서린 벨의 공격을 묶어 연속 6득점, 짜릿한 뒤집기에 성공했다.
4세트에 마무리하지 못하며 접어든 마지막 5세트. 도로공사는 13-12에서 두 번의 비디오 판독 끝에 상대 터치아웃을 잡아낸 뒤 14-13에서 박정아가 길었던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도로공사 캣벨은 경기 뒤 기자단 투표에서 17표를 받아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4차전에서도 양 팀 최다 30점을 올린 캣벨은 이날도 해결사로 나서며 32점을 올렸다. 캣벨은 지난 시즌 흥국생명에서 뛴 선수다.
지난 시즌 6위에서 시즌 중 감독 경질 논란 등 악재를 극복하면서 정규리그 1위에 올라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한 흥국생명은 올 시즌 최다 관중 6125명(시즌 7번째 매진) 앞에서 4번째 통합우승을 노렸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V리그에 복귀한 ‘배구 여제’ 김연경의 14년 만의 V리그 챔피언결정전 정상 꿈도 무산됐다. 김연경은 올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선수(FA)가 되면서 잔류, 이적, 은퇴 가능성으로 거취가 주목되고 있다.
인천 |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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