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1호 판결은 ‘유죄’... 판사 “대표 책임만 묻는 건 가혹”
산업 현장의 중대 사고에 대해 원청 업체 최고경영자(CEO)와 임원까지 최소 1년 이상 감옥에 보낼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돼 원청 업체 경영자가 처음으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4단독 김동원 판사는 6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건설사 온유파트너스의 대표이사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경기도의 한 요양 병원 공사를 맡은 온유파트너스는 공사 일부를 하청했고, 하청 업체 근로자 B씨는 지난해 5월 공사 현장 5층에서 추락해 숨졌다. 사고 지점에는 안전 난간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중대 재해 예방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A씨를 기소했다.
김 판사는 “회사가 안전대 부착, 작업 계획서 작성 등 안전 보건 규칙상 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가 추락사했다”며 “피고인들이 업무상 의무 중 일부만 이행했더라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다만 건설 노동자 사이에 만연한 안전 난간 임의적 철거 등의 관행도 사망 사고 원인이 됐을 수 있다”며 “이 책임을 모두 피고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다소 가혹하다”고 말했다. 또 유족에게 사과와 함께 위로금을 지불하고, 유족이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중대재해법은 산업 현장에서 한 명이라도 사망하거나 2명 이상이 중상을 입으면 경영자를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법이다. 대기업은 물론 내년부터는 근로자가 5명 이상 있는 모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적용받는다. 이 법은 사업주의 의무를 추상적이고 포괄적으로 규정해 기업인을 과도하게 처벌한다는 논란을 낳았다.
이날 판결에 경총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은 안전사고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현장 책임자보다 경영자를 더 무겁게 처벌하는 법인 데다 최소 형량(징역 1년 이상)이 너무 무겁다”며 “기업이 항상 ‘사법적 부담’을 안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산재 예방이라는 입법 취지보다 CEO를 강력히 처벌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노총은 “법원이 집행유예라는 관대한 처벌을 내렸다”며 ‘솜방망이’ 적용이라고 비판했다. 근로자 사망 사건을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해도 집행유예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번 1심 판결은 지난해 1월 시행한 중대재해법을 처음 적용한 사례다. 이 사건 외에도 현재 사업주·경영자가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 13건 더 진행 중이다.
중대재해법을 비판하는 측에선 이 법이 경영자의 안전 조치 의무를 불명확하게 규정해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고 주장한다. 한 기업인은 “산업 안전 조치를 기업 차원에서 강화해도 중대 사고가 나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며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했다. 법이 규정한 의무를 다했음을 입증해 면책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경영자 등에게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예산을 확보해야 하고,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갖추며, 재해 발생 시에는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라는 것인데 구체성이 떨어진다. 경영계 측은 “산업 재해를 줄여야 한다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다른 형사 처벌과 형평이 맞지 않고 법 규정이 모호해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현장 안전 조치가 미흡해 하청 업체 근로자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 하청보다 원청 업체가, 현장 책임자보다 원청 업체 대표가 더 강한 처벌을 받았다. 원청 업체는 법인 벌금 3000만원, 대표이사 징역 1년 6개월(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지만, 하청 업체는 법인 벌금 1000만원, 안전 관리자 벌금 500만원에 처해졌다. 근로자 50인 미만 업체에 대한 중대재해법은 2024년부터 적용하기 때문에 하청 업체 대표이사는 이번에 중대재해법이 규정한 처벌은 피했다.
중대재해법 처벌 규정이 ‘징역 1년 이상’인 것도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식으로 징역형을 내리도록 한 범죄는 살인이나 아동 학대 치사 정도다. 근로자를 죽거나 다치게 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기업인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안전 조치 미흡이란 ‘과실’이 있는 기업인을 ‘고의’를 갖고 다치게 한 범죄 수준으로 처벌하는 셈이다.
중대재해법은 매년 800명 이상이 산업재해로 숨지는 상황에서 기업에 대한 처벌 강화를 통해 산업 안전 수준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작 산업재해를 줄이는 효과는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 중대재해법을 적용한 지난해 사업장에서 중대 재해로 숨진 사람은 256명이었다. 법 시행 전인 2021년의 248명보다 8명 많았다. 지난해 주무 부처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중대재해법 적용 사업장에서 중대 재해가 늘어나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처벌보다 산업재해 예방 우수 사업장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노조 측은 “법을 시행한 지 1년 2개월이 지나서야 첫 번째 1심 선고가 나왔다”며 “사망 사고인데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면 이 법의 존재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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