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노동운동가 출신…부부가 ‘울산 진보 교육’ 명맥
고 노옥희 전 교육감의 남편
대학 졸업 20년 만에 교단 서
“질문이 꽃피는 교실 꿈꿨다”
62% 득표, 보수 후보에 압승
지난 5일 치러진 울산시교육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천창수 교육감(65)은 진보 교육감 재탄생이란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는 보수 진영의 김주홍 후보와 맞대결한 결과 큰 표차로 당선됐다.
울산은 1997년 말 광역시 승격 이후 2017년까지 모두 보수 진영에서 교육감이 나왔다. 고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은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울산의 최초 진보·여성 교육감이었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면서 울산 진보교육의 뿌리를 다졌다.
천 교육감은 노옥희 전 교육감의 배우자이다. 부부가 제8~10대 교육감에 잇따라 당선된 것도 특이한 점이다. 천 교육감은 민주화운동과 노동 활동가에 이어 19년간 평교사로 일해온 뒤 교육감 자리에 올랐다.
그는 경남 김해에서 가난한 농부 슬하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부산고와 서울대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그가 거친 가시밭길을 걷게 된 것은 1978년 유신독재 반대 유인물을 배포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면서다. 그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영등포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했고, 대학에서 제적 처분까지 받았다.
천 교육감은 1980년 유신정권이 무너진 뒤 복학했지만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교직 발령을 받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위반, 전두환 정권의 5·17 계엄령 위반 전력 때문이었다. 생계유지를 위해 직업훈련원 원생을 선택했다.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1983년 현대중전기에 입사했다.
천 교육감은 이곳에서 현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향후 아내가 된 노 전 교육감을 만났다. 당시 울산에서 고교 수학 교사로 재직했던 노 전 교육감은 작업 중 손목이 잘리는 산재를 당하고도 보상을 받지 못한 제자의 노동실태를 조사하고 있었다. 노 전 교육감은 노동자 권리에 대해 천 교육감과 즐겨 토론했고, 이는 천 교육감이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고 한다.
천 교육감은 1988년 노동조합 결성 후 파업을 장기적으로 이어가면서 결국 회사에서도 해고됐다. 그는 이듬해 노 전 교육감과 결혼했다. 천 교육감은 “신문 배달 등으로 어렵게 생활했지만, 노 전 교육감은 한 번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불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꿈에도 그리던’ 교단에 오른 것은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 만인 2002년이었다. 천 교육감은 서울 신림고교에 1년 근무하고, 이듬해 가족이 있는 울산으로 전출해 19년간 평교사로 지냈다.
그는 “수업을 할 땐 ‘질문이 꽃피는 교실’을 꿈꿨다”며 “수업이 끝나면 반드시 수업일지를 썼고, 그렇게 쌓인 일지가 19년 교직생활 동안 1만2000회가 넘는다”고 말했다.
천 교육감은 학교 밖에서도 아이들을 만났다. 그는 2009년부터 2020년까지 청소년 독서모임 ‘날개’와 역사기행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는 “스스로 커리큘럼을 기획하는 자율적인 모임이 되도록 유도했다”며 “아이들이 경쟁할 필요 없이 서로의 성장을 도우면서 우정을 쌓는 자리였다”고 회고했다.
천 교육감은 2021년 평교사로 퇴임한 뒤에도 교육거버넌스, 학교공간, 교육복지 등 학교 교육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꾸준히 연구했다.
백승목 기자 smbae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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