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가락처럼 무너진 ‘정자교’… ‘같은 공법’ 교량, 분당에만 16개 더 있다

오상도 2023. 4. 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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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기 신도시에 산재

“다리의 노후화를 떠나 설계와 시공, 안전진단에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

2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성남 분당신도시의 ‘정자교’가 철근·콘크리트의 접합력에 의존한 프리 스트레스 콘크리트(PSC) 슬래브 공법으로 시공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같은 공법이 적용된 1기 신도시의 다른 노후 교량들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성남을 비롯한 경기도의 교량 10곳 중 2곳이 30년 이상 경과한 노후 교량으로 파악되면서 인근 지방자치단체들은 긴급점검에 나서고 있다.

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교가 안전 문제로 전면 통제되고 있다. 수내교 보행로가 구불구불하게 휘어진 모습이 보인다. 성남=최상수 기자
◆ 道·市 아닌 분당구가 관리…컨트롤타워 부재

6일 경기도와 성남시 등에 따르면 정자교처럼 분당신도시 조성과 함께 탄천에 설치된 교량은 모두 19개로, 모두 1993년 이전에 준공됐다. 성남시는 이 중 정자교를 비롯해 17개 다리에 PSC 슬래브 공법이 적용됐다고 밝혔다. 

이 공법은 철근과 콘크리트를 완전히 일치시켜 접합도를 높이는 것으로, 반포·행주대교 등 대형 교량에 널리 쓰였다. 하지만 분당을 비롯한 1기 신도시에선 중소형 교량에 적용되면서 설계·시공 과정에서 왜곡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해당 교량들의 시공관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맡았으나, 이후 유지·보수는 관할 구청이 담당하면서 부실 점검 의혹도 도마 위에 올랐다.

수내교 하단을 상수도관이 지나고 있다. 이 상수도관이 준공 당시 설계에 반영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분당에선 슬래브 공법이 아파트 발코니를 붙이는 데 사용되는 캔틸레버 구조와 혼용돼 교량들에 적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캔틸레버 방식은 한쪽을 고정해 반대 측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행교가 다리 중심에 매달리게 된다.

이 같은 방식이 적용된 분당의 교량들은 6개월 만에 이뤄지는 정기안전점검과 2년에 한 차례 치러지는 정밀안전점검에서 모두 ‘양호’(B등급), ‘보통’(C등급)을 받았다. 이번에 붕괴된 정자교도 2021년 5월 정밀점검에선 C등급을 받았으나, 바닥 판 보수 등만 거쳐 B등급이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정자교의 경우 캔틸레버 방식에 치중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구조 관점에선 고정되는 쪽에 반발력이 작용해 안전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경시 성남시 분당구 불정교 측면에 단차가 발생하면서 튀어나온 콘크리트 구조물. 불정교는 안전점검을 위해 전면 통제된 상태다.
현재 정자교의 붕괴 원인은 설계, 시공 외에 안전진단 등으로 압축된다. 1993년 설계 당시 예상된 강도에 비해 오가는 차량과 보행자가 늘면서 피로가 누적됐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보행로 쪽에 설치된 가로등이 하중 부담을 키우고, 다리에 단차가 발생해 빗물이 고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복부에 양각부를 설치한 슬래브 공법이 중소형 다리에 적용됐을 때 불거질 수 있는 문제로 거론된다. 통행이 제한된 정자교 인근 불정교와 수내교에도 같은 공법이 적용됐는데 곳곳이 휘거나 단차가 발생하는 등 육안으로도 문제점이 쉽게 발견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인장력을 준 강선에 콘크리트를 타설해 굳힌 뒤 강선 양 끝을 벗겨 콘크리트에 압축력을 부담시키는 이 방식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최근에는 정밀점검 이후 보행로 부분에 무게를 받칠 수 있는 기둥을 보강하거나, 아예 시공단계부터 보행로에 별도 안전장치를 달기도 한다. 

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불정교가 안전 문제로 전면 통제되고 있다. 불정교는 전날 육안 점검 중 보행로 침하 현상이 확인됐다. 성남=최상수 기자
◆ “공법 자체에 문제없어…부실 진단·시공 의혹”

조 교수는 공법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다. 이를 해석해 설계에 반영하거나 시공한 업체들이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그는 “무너진 교량의 단면을 보면 철근이 본체에 붙어있고 보행로 쪽 시멘트는 다 떨어져 나갔다”며 “슬래브 공법이 제대로 적용됐다면 이럴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2021년 정밀안전점검에서 (관할 분당구청이) 제대로 돈을 썼는지, 어떤 방식을 활용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5일 보행교가 무너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교.
통상 정밀점검은 서류나 육안뿐 아니라 하중을 실은 덤프트럭 등을 다리 위에서 이리저리 옮기며 해야 하는데, 다리마다 수천만원의 비용이 든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세계일보 취재 결과, 당시 분당구는 정밀점검을 받은 관내 20개 다리에 모두 1억6977만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 다리마다 불과 800만원 남짓 지출한 것이다. 조 교수는 “(교량별로) 수백만원의 돈만 썼다면 페이퍼에 의존한 부실 진단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가 난 정자교는 길이 108m, 폭은 25m로 1993년 6월 준공됐다. 당시 설계는 삼우기술단이 맡았고, 시공은 광주고속이 했다. 삼우기술단은 사장교인 올림픽대교와 서해대교를 국내 처음으로 설계했지만 1995년 자금난으로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고속은 건설 부문이 금호건설로 사명을 바꿔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분당신도시 일부 교량을 통제한다는 내용의 성남시 현수막.
성남에선 비슷한 사고가 처음은 아니다. 2018년 분당구 야탑동의 야탑10교가 폭염에 교량에 균열이 생기고 배관이 터지며 교각이 기울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명피해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1993년 시공을 맡았던 A사는 철근 자재를 부실하게 사용했다는 책임을 물고 4000만원의 과징금을 물었다.

불안감은 확산하고 있다. 분당과 같은 1기 신도시인 안양 평촌신도시에는 학의천을 중심으로 비산인도교, 내비산교, 수촌교, 학운교 등 4개 교량이 설치됐는데 모두 1993년 평촌신도시 조성 때 건설됐다. 고양 일산신도시에도 하천과 도로 등에 설치된 교량 중 30년이 넘은 교량이 18개에 달하며 B, C 등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경찰, 7일 합동감식…중대시민재해 적용 검토

한편, 경찰은 정자교 붕괴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7일 현장 감식에 착수한다. 경기남부경찰청 정자교 붕괴 사고 수사 전담팀이 주축이 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와 과학수사자문위원 등 22명이 참여한다. 합동감식팀은 교량 붕괴 원인을 찾기 위해 무너져 내린 교량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고, 정밀 감정이 필요한 잔해를 수집할 계획이다.

지난 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교 난간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 소방 대원 등 관계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뉴시스
또 교량 설계 및 시공상에 하자가 없었는지 확인하고, 그간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아울러 성남시가 붕괴 원인으로 추정한 교량 하부의 상수도관 파열과 관련, 파열 지점에 대해서도 조사할 예정이다.

수사 전담팀은 이번 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의 첫 적용사례가 될지도 검토하고 있다. 적용 요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 혐의 적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대시민재해는 불특정 시민들이 피해자가 됐을 경우로 경찰이 수사를 담당한다.

앞서 5일 오전 9시45분쯤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서 탄천을 가로지르는 교량인 정자교의 양쪽 보행로 중 한쪽 보행로가 무너져 이곳을 지나던 30대 여성 1명이 숨지고, 30대 남성 1명이 다쳤다.

성남=글·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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