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예민해진 '사람과 사람 사이'  [삶과 문화]

2023. 4. 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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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운 두레와 품앗이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두레가 농경사회에서 마을 단위의 공동 노동 풍습이었다면, 품앗이는 비교적 단순한 작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얻기 위해 가족 단위로 이뤄졌다고 배웠다.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필요할 땐 대가 없이 기꺼이 서로의 가족을 돌보아주던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이웃에 사는 가족이 어떤 사람들인지 관심 없고, 그래서 그들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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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CJ E&M 제공

어릴 적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운 두레와 품앗이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두레가 농경사회에서 마을 단위의 공동 노동 풍습이었다면, 품앗이는 비교적 단순한 작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얻기 위해 가족 단위로 이뤄졌다고 배웠다. 일손이 부족할 때 이웃에게 청해 도움을 받고, 나중에 그 이웃이 필요로 할 때 품을 되돌려주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품삯 대신 노동을 맞교환하는 형태였지만, 반드시 갚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많았다는 점에서 한국인 특유의 상부상조 전통과 이웃 간의 정(情)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도시를 중심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이런 전통을 운운하는 것이 다소 뜬금없이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먼 친척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이 더 가족 같았던 시절은 우리에게도 분명 있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쌍문동 이웃들의 모습은 청년층이 보기에는 그저 재미있는 드라마였을지 모르지만, 중장년층에게는 그 시절 우리가 겪었던 삶의 단면이었기에 절로 추억이 소환되는 가슴 따뜻한 감동이 있었다. 이웃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돌봐주고, 이웃 사람에게 우리 집을 믿고 맡길 수 있었던 그 시절에는 부모들끼리도 서로 형님 동생이라 불렀고, 아이들끼리도 형제지간처럼 자랐다.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필요할 땐 대가 없이 기꺼이 서로의 가족을 돌보아주던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정말 드라마 제목처럼 불러도 대답 없는, 되돌릴 길 없는 먼 과거 속 이야기일까.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은 어떤가. 마을 풍경은 멋지고 세련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거칠고 예민하다. 이웃에 사는 가족이 어떤 사람들인지 관심 없고, 그래서 그들이 누군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눈 맞추고 대화하는 일도 드물다. 아무 문제가 없다면 다행이지만, 층간소음이나 반려동물 혹은 아이 문제로 또는 이사나 공사 때문에 대면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면, 그제야 서로 불편한 관심이 시작된다. 아무런 관심 없던 사이지만, 문제가 생기면 그때부터 필요 이상으로 부정적인 관심이 이어진다. 조심하고 경계하느라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내 집인데도 집안에서 편안히 쉴 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웃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는 말이 '웃픈' 현실인 이유는 그 말을 하는 우리 자신도 상대방에게는 바로 그 '잘 만나야 하는 이웃'이 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대상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씁쓸하다.

마을 혹은 가족 단위로 이뤄지던 상부상조의 전통과 이웃 간의 정(情)은 위기의 순간 빛을 발하는 큰 힘이 있다. 온갖 환난 속에서 반만년을 이어온 우리의 역사가 곧 증거이다. 알고 있다. 시대가 변했고 그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변했다. '누군가의 관심'이 곧 '불필요한 간섭'이 되는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그렇기에 온정적인 인간관계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아이가 성장해 이 사회를 이끌어갈 미래를 상상하면 걱정스럽다. 이익과 손해를 계산해 관계 맺는 경험이 전부인 채 어른이 된다면, 우리의 후속 세대들이 살아갈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될까. 먼 과거에 그랬듯이, 지금도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도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해 주는 최고의 안전망은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정미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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