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확률→삼산의 기적' 도로공사, 김연경의 흥국생명 꺾었다... V리그 새 역사 [인천 현장리뷰]

[스타뉴스 인천=안호근 기자]

도로공사 선수들이 6일 챔프전 5차전에서 득점 후 기뻐하고 있다. /사진=KOVO

[인천=안호근 스타뉴스 기자]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말했지만 김천 한국도로공사는 동화를 썼다. 공은 둥글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스포츠 격언들이 왜 존재하는 지를 2023년 몸소 보여줬다.

김종민 감독이 이끄는 한국도로공사는 6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흥국생명과 도드람 2022~2023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5전 3승제) 5차전에서 세트스코어 3-2(22-25, 25-23, 25-23, 23-25, 15-13) 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역대 1,2차전을 모두 승리한 팀은 5차례 모두 정상에 올랐다. 도로공사의 우승 확률은 0%. 그러나 안방에서 2연승을 거두고 올라온 도로공사는 6125명, 매진을 이룬 적진에서 V리그에 길이 남을 새 역사를 써냈다. 정규리그 1위 3차례에 이어 챔프전 우승 2회 기록을 쓴 도로공사다. 여자부에서 정규리그 3위팀이 챔프전의 주인공이 된 건 여자부 3번째, 남녀부를 통틀어도 통산 5번째에 불과한 기록이다.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는 전체 31표 중 17표를 얻은 캣벨이 차지했다. 캣벨은 블로킹 3득점 포함 32점, 공격성공률 45.45%를 기록했다. 이날 각각 23점과 18점을 올린 박정아와 배유나는 7표씩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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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vs 도로공사 챔프전 3차전 라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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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은 김연경과 옐레나, 김미연 양 날개에 세터 이원정과 미들블로커 김나희와 이주아를 선발로 내보냈다. 반면 한국도로공사는 박정아와 문정원, 캣벨로 공격진을 꾸렸고 미들블로커에 배유나와 정대영 쌍벽, 세터로 이원정을 투입했다. 여기에 양 팀 리베로 김해란과 임명옥이 수비시에 코트를 누볐다.

양 팀 모두 자신감이 넘쳤다. 원정에서 뼈아픈 2패를 떠안았지만 홈코트는 달랐다. 흥국생명은 챔피언결정전 2경기 포함 안방에서 도로공사와 5번 만나 패한 적이 없었다. 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은 "곤란하고 어려운 질문을 자꾸 받는다. 이기던 상황에서도 따라잡히면서 많은 게 변한다"면서도 "배구는 매일이 새롭고 흰 종이위에 모든 걸 채울 수 있다. 오늘은 새로운 걸 써내려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1,2차전을 모두 내준 뒤 "실력에서 졌다"고 좌절했던 김종민 감독이지만 선수들의 컨디션이 살아나며 홈에서 2연승을 거둔 뒤 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김 감독은 흥국생명 공격진에 대비한 맞춤 로테이션을 가동할 것이냐는 질문에 "우린 바꿔도 장단점이 있다. 저쪽은 바꿔서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오늘은 김연경 위주로 해서 공격 많이 할 것이다. 거기에 방어를 어떻게 맞추느냐가 관건인데 거기에 맞추면 공격력이 더 떨어진다. 일단 한 번 해보고 (경기) 안에서 상황을 판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배유나(가운데)가 득점 후 감격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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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명승부, 옐레나-김연경 vs 배유나-캣벨-박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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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미 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1세트 "벌써부터 힘들어보인다"며 "1세트가 중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선수들의 발은 무거워보였다. 양 팀 모두 감기 증상으로 인해 컨디션 난조를 겪었고 매 경기 혈투를 치르며 체력적 부담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부상을 달고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도 적지 않았다.

선수들은 힘든 만큼 더욱 집중력을 높였다. 옐레나의 맹폭 속 앞서가던 흥국생명은 신예 이예은의 서브 공격을 기점으로 19-13에서 리시브 라인이 흔들리며 20-20 동점을 허용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흥국생명은 김나희의 블로킹에 이어 옐레나가 오픈 공격 기회를 살리며 다시 2점 앞서갔다. 도로공사가 한 점 따라 붙자 옐레나는 다시 한 번 강력한 스파이크로와 서브에이스로 세트 포인트를 만들었다. 백어택 기회에서 범실을 저질렀지만 자신의 실수를 곧바로 강력한 한 방으로 만회했다. 1세트에만 홀로 11점, 공격성공률 57.89%로 도로공사를 맹폭했다.

2세트 중반까지 12-12로 팽팽히 맞섰지만 이후 도로공사 쪽으로 급격히 분위기가 기울었다. 미들블로커 배유나가 결정적인 오픈 공격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이어 캣벨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옐레나의 퀵오픈을 블로킹으로 저지하더니 연속 오픈 공격을 성공시켰다. 다시 배유나 오픈 공격으로 19-14, 점수 차를 벌렸다. 김연경을 앞세운 맹폭에 20-20 동점을 허용했으나 박정아까지 득점 행진에 가담했고 세트포인트에서 배유나가 김미연의 오픈 공격을 블로킹으로 잡아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1세트 3점에 그쳤던 미들블로커 배유나가 가장 많은
8점, 공격성공률 58.33%로 빛났다.

관중들에게 응원을 유도하고 있는 캣벨. /사진=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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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긴장감-떨어진 체력, 범실로 주고 받은 3,4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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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트엔 옐레나, 2세트엔 김연경이 분전했다면 3세트 둘 모두 고른 활약을 보였다.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흥국생명은 초반부터 앞서갔다. 18-14에서 문정원의 오픈 공격, 정대영의 블로킹에 연이어 실점하며 쫓겼지만 김연경이 오픈 찬스에서 배유나와 박정아의 쌍벽을 앞에 두고도 연이어 같은 코스로 예리한 대각 공격을 펼치며 21-17로 점수 차를 벌렸다.

그러나 이후 급격히 흔들렸다. 이주아의 서브 범실, 김연경의 시간차 아웃, 옐레나의 퀵오픈이 라인을 벗어났고 결국 역전에 성공한 도로공사가 캣벨의 퀵오픈 공격으로 대역전극을 이뤄냈다. 도로공사는 무섭게 기세를 타며 캣벨과 박정아 쌍포의 힘을 앞세워 '기적의 역전 우승'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흥국생명은 범실 8개를 저지르며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고갔다.

9-6까지 앞서가던 흥국생명은 이번에도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흔들리는 김미연 대신 4세트 김다은이 나섰다. 범실이 속출했고 캣벨과 박정아의 강력한 한 방을 막기에는 어딘가 힘이 부쳐보였다.

그럼에도 6000여 관중 앞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옐레나가 높은 집중력을 보였고 경기 막판까지 치열하게 치고 받았다. 23-23. 김연경이 날아올랐고 캣벨과 배유나가 세운 장벽을 뚫어냈다. 옐레나의 오픈 공격이 승부를 5세트로 몰고 갔다. 이번엔 9개의 범실을 저지른 도로공사가 무너졌다.

경기를 끝낸 박정아. /사진=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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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5세트, '믿고 보는' 캣벨-그리고 끝내주는 '클러치박' 박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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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도로공사가 좋았다. 박정아의 서브에이스로 기분 좋게 열었다. 팽팽한 흐름 속 '클러치박' 박정아가 퀵오픈과 오픈 공격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세트 막판은 확실한 득점루트 김연경과 캣벨의 대결 구도가 펼쳐졌다. 김연경과 캣벨이 득점을 주고 받는 식이었다.

도로공사가 13-10으로 앞서갔다. 챔피언포인트는 단 2점. 그럼에도 끝까지 승부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옐레나의 오픈 공격이 연이어 성공하며 단 한 점 차까지 좁혀졌다. 박정아의 회심의 대각 공격이 라인을 벗어난 것으로 판명됐지만 도로공사가 블로커 터치 아웃에 대한 비디오판독을 재차 요청하며 14-12. 챔피언포인트 상황에서 이주아의 블로킹이 성공했지만 결국 '클러치박' 박정아의 화끈한 한 방으로 챔피언은 도로공사가 됐다.

이날 경기는 역대 챔피언결정전 중 최장시간인 158분 동안 펼쳐졌다. 종전 기록은 2018년 3월 23일 한국도로공사와 화성 IBK기업은행의 139분이었다.

인천=안호근 기자 oranc317@mtsta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