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은 약속, 의료법은 ‘국민 지지’…윤 대통령, 또 거부권?…현실은 ‘글쎄’
”‘50만명’ 조직력 강한 간호사
내년 총선 앞두고 부담 작용
의료법은 ‘성범죄 옹호’ 우려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은 양곡관리법에 이어 본회의에 직회부된 두 법안을 야당 단독으로라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두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윤 대통령이 양곡관리법만큼 쉽게 거부권 행사를 결정하지는 못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대선 선거운동 때 간호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한 점, 간호사들의 조직력이 강한 점, 연이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 등이 배경으로 꼽힌다. 의료법 개정안은 여론의 지지가 높다.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은 지난달 23일 본회의에서 본회의 부의 안건이 가결된 후 언제든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은 오는 13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자는 입장이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투표하자고 할 것이다. 국민의힘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국회의장의 결정이 변수”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회 과반 의석(169석)으로 본회의 표결만 이뤄지면 여당이 반대해도 자력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
간호법 제정안은 현 의료법에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2조)로 정의된 간호사의 권한 및 책임을 넓히고 독립적인 체계로 만든 것이다. 간호사들은 고령화 시대에 부모돌봄, 노인돌봄의 관점에서 간호법의 독립적인 제정 필요성을 역설하고 민주당도 이에 공감하고 있다.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인이 금고 이상 형을 받으면 실형이나 집행유예 기간 이상의 일정 기간 동안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이다. 범죄를 저질러도 계속 의사를 할 수 있는 현재의 문제를 바꾸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윤 대통령이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쉽지 않은 이유는 대선 후보 시절 구두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대한간호협회를 찾아 “간호법 제정이라는 숙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선 공약은 아니었지만 공개 석상 발언이라 책임이 실릴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간호법을 거부해 무산시키면 대통령의 약속 파기라는 반발이 불 보듯 훤하다.
더구나 간호사들은 전국에 약 50만명(2023년 기준)인데 간호대학 시절부터 끈끈한 조직력으로 뭉친 것으로 유명하다. 여당 입장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거부권 행사로 이 정도 규모의 조직을 적으로 돌리는 선택을 하긴 쉽지 않다. 간호사 출신인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도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간호법 제정안에 적극 찬성해 여당 내 단일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의료법의 경우 찬반이 팽팽했던 양곡관리법과 달리 국민 지지가 높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진료행위를 옹호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간호법·의료법은 본회의 표결을 앞둔 현재까지도 정부·여당에서 윤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실제 법안들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정부·여당은 이 법안들의 문제점을 부각하면서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최종 판단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오는 13일에 바로 표결에 부치지 않고 여야 합의를 시도할 수 있다. 양곡관리법 때처럼 의장이 중재안을 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간호법 제정에 대해 여야의 입장 차가 뚜렷해 합의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여당은 의료계 여러 직역을 통합해 의료법을 두는 현 법체계에서 간호법을 따로 두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간호사 권리가 커져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등 소수 직역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간호법은 간호사를 위한 법이 아니라 ‘간호’라는 돌봄 행위를 규정해 기존 법체계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민주당에서는 의사들이 정말 반대하는 것은 간호법이 아니라 면허 정지를 규정한 의료법이라는 말도 나온다. 국민의힘이 7일, 민주당이 이달 말 새 원내대표를 뽑는 지도부 교체기라서 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되기도 어렵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대통령이 재의요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재의요구권 행사를 유도해 여론몰이 하려는 정파적 포퓰리즘 법안에 어찌 서명할 수 있겠나”라며 “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본회의에서 일방적으로 법안을 상정해 통과시키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미덥·윤승민 기자 zor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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