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에 퍼진 마약 포비아... “길거리 음료 금지” 안내문 붙었다
“마약 예비 수요층 만든단 말 들어”
부모들 “애들 무방비 노출 무섭다”
6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재수학원 1층 벽에는 “집중력 향상 음료 받지 마세요! 마약 음료입니다”라는 문구와 음료병의 사진이 있는 A2용지 크기의 포스터 10장이 붙어 있었다. 지난 3일 대치동 학원가에서 한 일당이 학생들에게 마약이 섞인 음료를 마시게 한 일이 알려지자, 학원 측에서 관련 내용을 담은 포스터 50여 장을 엘리베이터와 식당, 강의실 등 학원 곳곳에 붙였다고 한다. 이 학원 수강생 강모(21)씨는 “학생들 사이에서 집중력 강화 등을 위한 각성제나 ADHD 치료제 등을 복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같은 상황에서 의심 없이 받아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무섭다”고 했다.
대치동 학원가에 ‘마약 주의보’가 퍼지고 있다. 5~6일 집중력 향상에 좋은 음료라고 속여 학생들에게 필로폰이 든 음료를 먹인 일당은 일부 검거됐지만, 학부모들 사이에선 “아이들이 마약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날 오전 대치동에서 만난 언주중 3학년 김모(15)군은 “학원 상가 근처에서 일주일에 1~2번 정도 우유 시음회 하는 것을 봤는데, 그때는 문제가 된 음료는 아니었다”고 했다. 김씨가 다니는 학원은 마약 음료 사태가 터진 뒤인 지난 5일 오후 학부모, 학생 전체에게 “물&음료(텀블러이용) 꼭! 개인준비 부탁드리고, 절대! 길거리 음료 먹지 않게 주의 부탁드려요”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중3 딸의 어머니 김모(43)씨는 “근처 영어 학원을 매일같이 오가는 우리 딸이 그 음료를 마셨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며 “아이를 학교와 학원에 보낼 때도 아이가 마약을 먹을까봐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 아니냐”고 했다. 강남구청 인근에 사는 김모(52)씨는 “초등생 딸에게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 자리에서 먹으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해 충격을 받았다”며 “대학생 아들도, 공부를 하고 있다 보니 집중력에 좋다고 하면 무심코 먹었을 것이다. 너무 무섭다”고 했다.
대치동에 사는 학부모 박모(45)씨는 강남 학원가에서 ‘마약 유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박씨는 “작년에 이미 학원 홍보 전단지와 함께 마약 성분이 든 사탕을 함께 나눠준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마약 조직이 사탕, 음료수에 마약을 섞어 학생들에게 광범위하게 뿌려 ‘마약 예비 수요층’을 만든다고 한다는 말도 있다”고 말했다.
인근 학교들은 급하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휘문중 교감은 “5일 오후 교내 방송을 통해 학생들에게 주의하라는 내용을 전파했고, 아침 조회시간에도 학급 담임들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줄 것을 당부했다”며 “관련 내용을 담은 가정통신문도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라고 했다. 대명중 관계자 역시 “학교 차원에서 약물 오남용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언주중 역시 “학원가 학생에게 마약음료수 건넨 사건 관련 범죄예방을 위한 안내문” 제목의 공문을 학부모들에게 보냈다. 공문에는 “학생들은 정체가 불분명한 음료의 시음행사에 참여하지 말고, ‘메가ADHD’ 상표가 붙은 음료, 기억력이 좋아지는 음료수 등을 절대 마시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랍니다. 학부모님들께서는 학생들이 이러한 음료를 먹는 일이 없도록 자녀들을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문제의 음료수 사진이 함께 담겼다.
다행히 음료를 마신 학생 6명에게는 건강 이상, 중독 증세 등의 문제는 없다고 한다. 이범진 아주대 약대 교수는 “필로폰은 아주 강한 마약이지만, 섭취량과 횟수가 적은 만큼 어지러움 등 일시적 부작용을 제외하면 학생들의 건강에 큰 지장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 역시 “피해 학생들은 문제의 음료를 한 모금 먹고 뱉는 등 소량 섭취했기에 건강에 큰 이상은 없는 상황”이라며 “중독 우려도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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