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꼬부랑’은 사라지고 ‘선진국 할머니들’로

강경희 논설위원 2023. 4. 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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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남자 동창생이 최근 손자 본 60대 여자 동창에게 “이제 할머니 됐네”라고 불렀다가 호되게 타박을 맞았다. “나를 할머니라 부를 자격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이야. 내 손자.” 실제 요즘 초등생 할머니들 중에는 도저히 할머니로 볼 수 없는 외모의 소유자들이 많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학부모를 “ΟΟ 어머니” 또는 “ΟΟ 할머니”로 부르는 것 자체가 금기라고 한다. 학부모회에 참석한 여성이 늦둥이를 낳은 엄마인지, 손자를 일찍 얻은 젊은 할머니인지 판단하기 힘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할머니라는 호칭이 어색한 ‘새로운 할머니’들이 부쩍 늘어났다. 자전거 타는 여성의 날씬한 뒷모습만 보고 젊은 여성인 줄 알았는데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사람도 많다.

▶고령의 한국 여성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와 이미지가 ‘꼬부랑 할머니’였다. 동요로도 불렸고 동화책의 단골 소재였다. ‘머리는 하얗고, 주름은 자글자글하고, 허리는 꼬부라지고, 나처럼 꼬부랑꼬부랑 걷고 말이야.’ 동화 ‘꼬부랑 할머니는 어디 갔을까’를 쓴 작가 유영소는 “늙고 구부러진 꼬부랑 할머니는 얼마 후의 제 모습이기도 할 테니까요”라고 했다. 그 말은 틀린 것 같다.

▶국가기술표준원이 70~84세 고령인구를 측정했더니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2.8%에 불과했다. 칠순 넘어도 10명 중 8명(83.4%)은 허리도 굽지 않고 꼿꼿한 체형이었다. 그 덕에 20년 새 고령층의 평균 키가 3㎝ 가까이 커졌다. 꼬부랑 할머니의 굽은 허리는 밭일하느라 쪼그려 앉고, 허리 구부려 무리한 자세로 오랫동안 일하고 생활한 것 때문에 생긴 척추 질환이다. 남성보다 여성에게 흔했는데, 도시에서 침대나 소파 생활을 하고 소득 수준이 높아져 운동과 건강관리를 잘하며 의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꼬부랑 할머니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할머니가 되는 앞으로는 변화가 더 클 것이다. 베이비부머 712만명은 75%가 고등학교 이상 교육을 받았다. 한국에서 여자도 대학에 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된 첫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 중 많은 여성이 취직해 사회 생활을 했다. 본인 유학이든, 남편을 따라서든 해외 경험을 한 여성도 매우 많다. 재산도 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이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미국, 유럽 여행할 때 본 멋진 선진국 할머니들이 한국에도 흔해지게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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