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사진 보도자료 내고 '의문의 건설노조'로 발표하는 경찰

김예리 기자 2023. 4. 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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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건설노조와 무관한 사건, "건설노조" 뭉뚱그려 발표하는 경찰 보도 이유 있다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지난해 말부터 이른바 '건설현장 폭력행위(건폭)' 기획수사에 나선 경찰이 수시로 단속 상황을 발표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은 경찰의 '건폭 수사' 대언론 방침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과 무관한 사건도 민주노총 산하 노조의 약칭인 '건설노조'로 통칭하거나 노조를 빙자한 사건도 건설노조와 연결시키며 실제 노조 활동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5일 성명을 내고 “'조폭'들이 건설 관련 노조를 만들어 건설현장에서 억대 돈을 뜯어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그런데 이들이 어떤 노조 소속인지에 대한 정확한 보도내용은 찾을 수 없다”며 "경찰은 왜 정확한 소속을 밝히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앞서 같은 날 보도자료를 내고 수도권 지역 폭력조직원 3명을 포함한 6명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공갈) 등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을 “경인지역 건설노조” 소속으로 소개하며 “노조 부본부장 조직폭력배 A씨, 법률국장 조직폭력배 B씨, 차장 조직폭력배 C씨, 부본부장 D씨, 총괄조직국장 E씨, 사무국장 F씨 등 총 6명을 구속했다”고 했다. 경찰은 “폭력조직 2개 파가 실질적으로 주도”해 갈취를 벌였으며 이들이 “'상대 노조를 정리해 주겠다'며 조직폭력배 행태인 보호비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갈취한 혐의도 받는다”고 밝혔다.

▲경기남부경찰청이 언론에 제공한 공동공갈 혐의 피의자들의 사진.

연합뉴스 등 뉴스통신사를 비롯해 다수 언론이 36건의 보도를 내놨다. 그러나 경찰이 조합명을 비공개 처리할 것을 요구하면서, 언론사들은 이들을 “경인지역 건설노조” “전국 단위 노조인 모 건설노조” 등 이름으로 보도했다.

경찰은 피의자들이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연합노동조합연맹 한국건설노동조합'이라 적은 현수막과 함께 찍은 사진 등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를 제공했지만, 보도자료에서 익명 처리를 요구했다.

경찰이 건설현장 수사 관련 발표를 하면서 '건설노조' 키워드만을 강조한 건 처음이 아니다. 경찰은 지난 3월9일 건설현장 특별단속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도 구속인원이나 수사 중인 자에 대한 명확한 소속을 밝히길 거부했다. 당시 기자들이 기자들이 단속 대상자 소속을 '양대 노총'으로만 발표하는 이유를 묻자 경찰은 “특정 단체 지칭해 인원이나 통계 알려주는 게 약간 오해의 소지도 있어서”라고 밝혔다.

일부 언론은 수사 결과를 보도하며 구속된 폭력조직 피의자를 사건과 무관한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과 연결 지어 보도하기도 했다. 연합뉴스TV는 <노조 간부활동 조직폭력배 구속…전임비 등 갈취> 리포트에서 피의자의 전·현 소속과 무관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제호가 담긴 사진을 수 차례 내보냈다가 비판을 받자 삭제했다.

건설노조는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은 경찰의 이런 (조합명 비공개 요구) 보도지침 행위가 건설현장의 모든 불법행위에 건설관련 노조 중 가장 규모가 큰 민주노총 건설노조를 엮기 위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건설노조는 “조폭이 개입된 노조나 조합원이 없는 유사 노조의 불법행위에 의도적으로 정확한 소속을 밝히지 않고 '건설노조'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면서, 보도를 접한 국민들이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의도적인 보도지침을 중단하고, 수사 내용을 공개하려면 정확한 소속명을 공개하라”고 밝혔다.

경찰은 조합명 익명 처리를 요구한 이유에 대해 익명이 원칙이라고 답변했다. 경기남부청 강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노조 가운데 일부 지부이기에 실명이 나가면 그 노조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다 타격을 입지 않는가”라고 했다.

경찰은 이들이 소속됐다고 밝힌 노조가 상급단체에서 제명된 상태라고도 했다. “현재 (해당 노조가 상급단체에서) 탈퇴제명됐다는 것이 유력하다. 노조 명이 확인된 게 아니다”라며 “(피의자) 개개인의 탈퇴나 제명 여부도 확실치 않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경찰이 배포한 노조명 현수막 사진이 찍힌 시점은 2022년 7월이다. 한국노총 연합노련은 한국건설노동조합을 2021년 9월 제명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피의자들은 연합노련이 제명한 뒤 현수막을 걸고 사진을 찍은 셈이다.

▲장옥기 민주노총 건설노조 위원장이 6일 '건설노조 탄압대응 100인 변호인단 발족'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경기남부청 강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건설노조의 용어 사용에 대한 의문 제기에 “(수사 대상을 건설노조로 뭉뚱그리려는 의도가) 절대 아니다”라며 “이들의 진술도 그렇고 다른 노조 관계자들도 이들이 탈퇴 내지는 제명 당했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준태 민주노총 건설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제명이 됐는데도 특정 노조 이름을 쓰고 다닌다면 도용의 문제이니 익명화를 이해할 수 있지만, 노조의 다른 조합원을 보호하기 위해 익명화한다는 것은 공감하기 어렵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수사를 받거나 구속되는 사안에는 민주노총 소속이라고 바로 밝히고 보도하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장옥기 민주노총 건설노조 위원장은 6일 '건설노조 탄압대응 100인 변호인단 발족' 기자회견에서도 “정부와 경찰이 건설현장 폭력행위란 이름 하에 기획수사에 나섰는데, 건설노조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발표해 건설노조라는 이름이 부정을 저지르는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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