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5. 고양 ‘포마자동차디자인미술관’
“다가올 미래에 먹고 살아야할 창의력의 양식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디자인이라 믿는다. 디자인이 나라를 살찌게 한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싶어 미술관을 세웠다.” ‘디자인국부론’을 굳게 믿고 이를 실재로 입증한 사람이 설립한 특별한 미술관이 경기도에 있다. 고양시 덕양구 향동에 위치한 포마자동차디자인미술관(관장 박종서)은 대한민국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자동차디자인미술관으로 2016년에 1종 미술관으로 등록됐다. 포마(FOMA, Form Of Motors and Arts)의 설립자 박종서 관장은 한국 1세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한국 자동차 디자인의 산증인이다. 미술관 입구부터 마당과 로비도 자동차와 관련된 작은 전시장이다.
■ 자연에서 찾아낸 미학
자동차디자인미술관 로비에 곤충표본이 전시된 까닭이 궁금하다. 비치한 돋보기로 자세히 살펴보니 풍뎅이의 몸통이 자동차를 닮았다. 그렇다. 독일의 명차 폭스바겐도 딱정벌레를 모델로 디자인했다. 그런데 ‘갑옷’은 자동차’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자동차의 금속 가공기술은 중세시대 갑옷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더욱 호기심이 발동한다. 벽 위에 수시로 색깔이 변하는 카멜레온 모형이 있다. 신비로운 자연의 색상에 감탄하며 지하에 마련된 주 전시실로 향한다. 널따란 주 전시실은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공간 구성과 바닥에서 천정으로 이어진 전시물의 배치가 인상적이다. “전시실은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어떻게 자동차 디자인으로 연결되는지 그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자연의 비례, 황금분할은 자연이 이미 이루어 놓은 조화이지요.” 멕시코 연안에 사는 앵무조개를 반으로 잘라 크게 확대하여 3D로 출력한 조형물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1.618이라는 비례를 실현하고 있는 자연물이다. “이러한 자연의 질서를 알았을 때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지요.”
■ 카멜레온과 딱정벌레
자동차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어느 인터뷰에서 같은 질문을 받은 박 관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생명이 없는 물건이나 기계에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이야깃거리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나의 디자인 철학이다.” 천장에 매달린 특이한 조형물이 또 있다. 호랑가시나무 잎과 가오리 모형이다. 이처럼 전시물의 상당 부분이 자연이다. 박 관장이 디자인한 ‘티뷰론’은 돌고래의 선을 착안해 탄생한 것이다. 훌륭한 디자인이란 자연에서 비롯돼야 한다고 믿고 있는 박 관장은 자연의 색깔, 형태, 냄새, 촉감을 느끼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곤충표본이 왜 전시실 입구에 놓여 있었는지 분명히 알겠다. 박 관장은 아반떼와 티뷰론, 싼타페, HCD-1 콘셉트카를 디자인할 때도 곤충의 선과 색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가장 아름답고 기능적인 디자인은 자연의 미와 정서적으로 부합할 때 나온다.”
설계도를 철사를 이용해 입체적으로 만든 자동차 모형, 자동차 차체를 제작하는 전통 장인들의 작업장 ‘카로체리아’도 전시돼 있다. 유럽에서 아직도 옛날 방식으로 자동차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전시된 페라리는 1930년대의 모델이지만, 시속 335㎞를 달렸다고 한다. 당시 독일의 바우하우스 조형론의 주 이론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이다. 페라리 모델에서 장식은 물론 불필요한 것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 1992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선보인 우리나라 최초의 컨셉카가 눈에 들어온다. 박 관장이 돌고래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작품이다. 현대 소나타BIW 모델은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조형적 요소와 엔지니어가 설계하는 기계적 요소가 어떻게 만나는지 확인시켜 준다. 첨단의 디자인과 성능을 보여주는 페라리 곁에 대장장이가 사용하던 망치가 전시돼 있다. 망치로 두드려 만드는 과정을 상상해본다. 스마트폰이 일상으로 굳어진 첨단의 디지털시대에 쇠망치를 바라볼 어린 관람객들의 시선이 궁금하다.
■ 디자인은 이야기를 입히는 일
기술 바탕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경쟁력 갖춰 세계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을까? 미술관에 전시된 자동차 모형들은 새로운 마케팅을 개척한 일등공신들이다. 싼타페, 봉고, 쏘나타, 포터, 아반떼, 스쿠퍼, 티뷰론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 박종서 관장의 손을 거친 것이다. “자동차 디자인은 혼자가 아니라 팀이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능한 디자이너가 더욱 요구되고 있습니다.” 미래의 디자이너들이 연구하는 공방의 풍경이 궁금하다. 마침 공방에서는 십여 명의 청년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펄떡이는 심장처럼 열기가 가득한 공방은 미래의 자동차디자이너들이 탄생하는 현장이다. “디자인은 결코 한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 낼 수 없어요. 창의적 생각에 대한 철저한 나눔의 과정입니다. 시대적 가치의 결정체인 디자인은 홀로 화폭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순수예술의 고민과는 차별되지요. 디자인은 다양한 생각과 물리적 과정을 통해 원석과 같은 첫 생각은 여러 차례의 갈고 닦음을 통해 비로소 그 빛을 드러냅니다. 디자이너의 고뇌가 담긴 과정들엔 많은 이야기들이 담기게 됩니다. 창의의 세계에 남겨진 이야기, 빛나는 결과물을 낳기 위한 과정의 이야기를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포마자동차디자인미술관은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외국의 경우에도 자동차의 수집하는 박물관은 있지만 디자인을 속속들이 파헤쳐 보여주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미술관은 없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박 관장은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에 지친 청소년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가슴 아파한다. “우리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자동차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풍부한 영감을 얻어가길 바랍니다.” 박 관장은 영국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s)에서 수학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수석으로 학업을 마치고 35년간 현대기아 자동차연구소 수석 부사장으로서 대한민국 자동차 디자인 분야의 초석을 마련한다. 퇴사 후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장, 대한민국산업디자인 협회장, 대한민국 브랜드 학회장을 역임하며 디자인부국론을 전파해왔다.
■ 미래 디자이너들 꿈이 영그는 곳
미래의 디자이너를 꿈꾸는 초 중 고교생을 위한 ‘포마 아카데미 주니어’나 진로체험 프로그램 ‘나는 디자이너다’는 향후 디자이너로의 진로를 희망하는 미래의 디자이너를 위한 체험 프로그램이다. ‘포마아카데미’는 창의적 직업, 진로를 희망하는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1년 동안 함께 꿈을 꾸고 함께 꿈을 만드는 체계적인 과정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친구와 협력하며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입시미술을 목표로 하거나 일회성 스펙 쌓기를 지양한다. 본인 스스로 강한 열정과 참가의지를 지닌 청소년만 참가 가능하단다. 포마자동차디자인미술관이 현재 포니정재단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포니정 디자인 아카데미’도 주목된다. 포니 자동차 탄생 50주년(2025년)을 앞두고 미래 시대에 걸맞은 디자인 혁신 인재 양성을 위한 프로젝트다. 현재 대학부 12명, 고교부 7명이 아카데미 인재로 교육을 받고 있다.
공예, 예술, 디자인 부문에 관심과 열정을 지닌 청소년과 청년이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데, 지원자가 제출해야 하는 과제부터 신선하다. 나의 가장 뛰어난 재능이나 재주 세 가지를 소개하기. 지금까지 살면서 자기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행함으로써 타인에게 도움을 주었던 활동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느낀 것이나 변화된 것을 설명하기.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자연, 현상, 사물은 무엇인지 설명하기.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혁신가, 디자이너들 중 한 사람을 선정하고 만일 그 사람에게 질문을 한다면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질문을 작성해 보기 등이다. 신록이 꽃보다 아름다운 4월, 포마자동차디자인미술관에서 디자인 부국을 향한 위대한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김영호 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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