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곽상도 아들 50억, '이 법'으로 감췄다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가 시행된 지 30년이 됐다. 그동안 공직자의 도덕성을 검증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맹점과 허점,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뉴스타파는 권력자들이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감추고 쌓아온 재산의 비밀을 들춰내는 <히든머니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또한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와 정보공개 제도의 혁신을 위해 5개 시민단체와 협업을 진행 중이다. - 편집자 주
지난 2월, 이른바 ‘곽상도 부자유별’ 판결이 나왔다. 곽상도 전 의원이 아들의 퇴직금 명목으로 대장동 업자들로부터 뇌물 50억 원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50억 원이 사회 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하다”면서도 “아들이 결혼해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해 “아버지에 대한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공분은 당연했다. ‘권력층 뇌물의 합법화’, ‘검사와 판사가 보증하는 뇌물의 새 지평’이라는 지적과 함께, 검사 출신인 곽상도를 검찰이 봐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판결이 나온 원인에 검찰의 부실한 수사가 있다.
하지만 ‘부자유별 판결’의 뿌리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인데, 30년 동안 국회가 없애지 못한 독소조항과 깊숙하게 착근돼 있다.
올해 1월, 뉴스타파는 ‘정영학 녹취록’ 전문을 공개했다. 녹취록에는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기자와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업자들이 ‘아들을 통해 곽상도의 몫 50억 원을 주면 괜찮다’는 취지의 대화가 곳곳에서 등장한다.
대장동 업자 녹취록 속 50억 클럽과 곽상도, 그리고 ‘부자유별’
뉴스타파가 입수한 대장동 업자들의 대화 녹취록과 녹음파일에는 곽상도의 아들이 받은 50억 원이 어떤 성격의 돈인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나온다.
여기서 ‘그 사람들’과 ‘50개’가 가리키는 것. 일명 ‘50억 클럽’이다. 곽상도 등 최고위급 공직자들이 권력을 동원해 대장동 사업의 위협 요소를 없애주고 50억 원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대장동 업자들은 이후 이른바 ‘탈이 나지 않게’ 곽상도에게 50억 원을 줄 방책을 짜낸다. 그러다 나온 게 곽상도의 아들을 통해 돈을 전달하는 것이다.
2020년 4월에 이어 같은 해 10월에도 비슷한 취지의 대화가 이어진다. 왜 아들을 통해 돈을 전달하면 법망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대장동 업자들이 곽상도의 아들을 통해 돈을 주면 안전하다는, 그러니까 ‘부자유별’을 생각해냈을 때, 곽상도의 신분은 현직 국회의원이었다.
국회의원은 공직자윤리법 4조 1항에 따라 본인, 배우자, 직계존속인 부모와 직계비속인 자녀의 재산을 공개해야 한다. 대장동 업자들이 50억 원을 곽상도의 아들에게 주더라도 국회 공보를 통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장동 업자들은 아들을 통해서 돈을 주면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공직자윤리법 12조 4항에 규정된 고지거부 제도 때문이다.
고지거부는 공직자로부터 부양받지 않는 부모와 자녀가 재산의 등록 자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독립생계 등의 사유를 제시하면 공직자의 부모, 자녀가 재산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악용할 경우, 뇌물을 자신의 자녀를 통해 받은 뒤 고지거부하면 수수 사실을 감출 수 있다. 고지거부 제도가 공직자윤리법의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회의원 시절 곽상도는 2016년, 2017년까지 아들의 재산을 공개했다. 대신 2018년부터는 ‘고지거부’라는 네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2018년 말부터 대장동 개발사업의 수익이 나오기 시작했다.
만약 대장동 개발 비리가 세간의 주목을 받지 않아 50억 클럽의 실체 역시 알려지지 않았다면, 곽상도의 아들이 50억 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대장동 업자들의 바람처럼 고지거부라는 합법적 장막 뒤에 지금껏 감춰져 있었을지 모른다.
이처럼 고지거부제도는 ‘공직자와 그 가족의 재산을 투명하게 공개해 부정부패를 척결한다’는 공직자윤리법의 취지에 어긋난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국회가 공직자윤리법에서 12조 4항을 삭제하면 된다.
하지만 곽상도 ‘부자유별’ 판결이 나왔는데도 국회는 조용하다. 고지거부를 없애겠다고 나선 의원들을 찾기 어렵다.
공직자윤리법 ‘대개혁의 원년’ 1993년에도 고지거부제도는 ‘존치’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과 배우자는 물론, 부친, 아들의 재산까지 모두 공개했다. 이후 4급 이상 공무원에게 재산 등록을 강제하고, 1급 이상은 공개를 의무화했다.
그런데 1993년 제도 첫 시행 때부터 고지거부 단서 조항이 들어갔다. 당시에도 폐지 주장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고지거부 대상에서 ‘배우자’를 제외하는 수준에 그쳤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확인해보니, 의원들은 ‘사생활 보호’라는 이유를 들어 자신의 부모, 자녀의 재산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렇게 (고지거부 제도를) 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생활의 보호이고 또 하나는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구하는 사태에 미리 입법부로서 대응한 것입니다.
- 박상천 국회정치관계법심의특별위원회 위원(국회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1993. 5. 20.)
당시 언론도 공직자윤리법의 최대 독소조항인 고지거부를 비판했다.
(고지거부는) 명의 이전 등을 통한 재산 은닉 방법으로 사용될 소지가 다분하며 이로 인해 재산공개의 명분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시민단체 등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 '고지거부' 내세워 등록누락, 과다재산 은닉 의혹 (연합뉴스, 1993. 9. 6.)
이후 지난 30년 동안 바뀐 건 없었다. 국회의원들은 2006년 딱 한 번 고지거부 제도를 고쳤다.
2006년 12월,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됐다. ‘피부양자가 아닌 자는 자신의 재산등록사항의 고지를 거부할 수 있으며’였던 법조문에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허가를 받아’라는 문구를 새로 추가했다.
이로써 공직자가 통보만 하면 끝이었던 고지거부가 허가제로 바꿨다. 폐지는 이뤄지지 않았다.
개정 목적은 ‘고지거부 제도를 악용한 재산 축소 및 은닉 가능성 예방’이었지만, 당시에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재산등록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경우에 한해서 심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서 하도록 하자라고 예외 조항을 두었는데요. 저는 '이 예외 조항이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정말로 부득이한 경우에만 예외가 허용될 수 있을 것인가'가 상당히 의문스럽습니다.
- 이영순 의원 (제253회 제1차 행정자치위원회, 2005. 4. 18.)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통보제에서 허가제로 변경해 고지거부를 강화했다면, 고지거부하는 공직자 수가 줄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정기공개 공직자 재산 데이터를 기준으로 2006년 4.23%, 2007년 6.58%였던 고지거부 공직자의 비율은 개정법이 처음 적용된 2008년에 30.99%로 5배 가까이 늘었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4.08%, 2007년 9.52%에서 2008년에는 32.55%가 됐다. 전체 공직자의 고지거부 비율인 30.99%보다 높았다.
허가제로 바뀐 뒤부터 고지거부 비율이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뭘까.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개정 법률이 시행되면 바뀐 내용을 각 기관에 고지하는데 이 과정에서 고지거부 제도가 홍보됐고, 이에 따라 거부자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고지거부 심사, 허가 절차가 형식적이고 허술하다는 것이다.
‘허점투성이’ 고지거부 허가 시스템... 외부 감시도 불가한 ‘성역’
고지거부 제도는 공직자가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직계 가족의 소득 기준 요건 충족 등을 증빙하는 서류를 제출하면 별도의 추가 검증 없이 허가가 나온다. 서면 심사만 하고 고지 거부자의 실제 소득 여부 등을 확인하는 현장 조사는 진행하지 않는다.
현장 조사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도 심각하지만, 서류 심사를 제대로 하는지 외부에서 감시할 방법이 전무하다는 것도 문제다. 지금까지 심사 결과가 외부에 공개된 적은 없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에 국회의원들이 제출한 고지거부 허가신청서의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거부당했다. 국회는 ‘해당 정보에 포함돼 있는 성명·주민등록번호 등이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사유를 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의원 시절인 2018년, 2019년부터 두 딸이 독립 생계를 꾸리고 있다며 재산 공개를 거부했다. 그런데 지난해 그의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사유를 거짓으로 꾸며 고지거부를 허가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추 장관이 허술한 고지거부 제도를 악용해 두 자녀의 재산을 감춘 게 아니냐는 의혹을 샀지만, 끝내 고지거부 허가와 관련된 심사 자료가 공개되지 않아 추가 검증은 이뤄지지 못했다. (관련 기사: 추경호, 딸 '독립 생계'라더니…수상한 '고지 거부')
고지거부 제도의 악용 가능성... 알고도 안 바꾸는 국회의 ‘직무유기’
국회의원들은 고지거부제도의 허점과 악용 가능성을 잘 알고 있다. 11년 전인 2012년 이상민 의원 등이 발의했던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취지는 이랬다.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재산을 공개하려는 것은 그만큼 공직자들의 사회적 책무가 크기 때문인데, 존비속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는 행위는 그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으로 공직자의 청렴도를 높이기 위해서 고지거부제도를 폐지하려는 것임.’
현행 고지거부 제도가 자리잡은 2006년 이후 고지거부를 없애거나 허가 요건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며 발의된 개정법률안은 지금까지 모두 10건이다.
그러나 단 한 건도 국회 본회의장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안 발의 때마다 상당수 의원은 ‘사생활 보호’를 내세워 고지거부 제도의 유지를 옹호했다.
제가 국회의원들 재산등록과 관련한 윤리위원회 위원을 해봤습니다. 했는데 실제로 소위 고지거부자 문제가 매우 복잡합니다. 직계존속의 경우 ‘네가 국회의원 하는데 왜 내가 재산을 공개하느냐’, 또 자식들도 ‘아버지가 국회의원 하면 했지 왜 내 재산을 공개하느냐’
- 이재창 의원(250회 13차 행정자치위원회, 2004. 12. 2.)
사생활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이런 고지거부 제도가 만들어져 있고, 또 이것이 보면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또 경제 자유, 연좌제 이런 것과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봅니다.
- 유기준 의원(253회 1차 행정자치위원회, 2005. 4. 18.)
그 다음에 고지거부 문제라든지 부동산 문제라든지 이런 여러 가지 것은 대한민국 헌법의 사유재산제, 기본권하고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손을 댈 때는 결코 졸속으로 해서는 안 된다.
- 김기춘 의원(253회 2차 행정자치위원회, 2005. 4. 21.)
심지어 전두환 시절과 마찬가지로 공직자의 배우자까지 고지거부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 최용규 의원: 좋습니다. 그러면 배우자가 등록 거부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되지요?
□ 오영교 행정자치부장관: 배우자는 등록 거부를 못합니다.
■ 최용규 의원: 왜 못하지요? 부부의 재산관계가 별산제인데, 부인 재산은 명백하게...
□ 오영교 행정자치부장관: 고지 거부의 대상자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 최용규 의원: 아니, 부인 재산은 남편이 자기 맘대로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법제가 명백하게 별산제인데 별산제하에서 어떻게, 내가 의원 됐으니까 너 등록해라, 이것은 말이 안 되지요.
- 253회 5차 법제사법위원회, 2005. 4. 25.
김영삼 대통령이 1993년 2월 취임 이후 첫 국무회의에서 ‘공직자 재산 공개’를 선언하며 했던 발언이다. “명예가 아닌 부를 택하려면, 공직을 떠나라.”
또다시 발의된 고지거부제도 개정법안... 이번에도 폐기될까
2021년, LH 직원들이 신도시 개발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기를 벌여온 사실이 폭로됐다. 투기 수법 중 하나가 고지거부가 가능한 가족 명의로 토지를 매입해 감추는 것이었다.
그해 3월, 국회에서 또다시 ‘직계존속·직계비속에 대한 고지거부 조항을 삭제함’을 골자로 하는 고지거부 제도 폐지 법안이 발의됐다. 개정 제안서에는 ‘최근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건으로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상당히 저하된 상황임. 현행 재산등록제도 및 재산공개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함으로써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것임’이라고 적혀 있다.
이 법안.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내년 4월 안에 통과될까? 뉴스타파가 집계한 고지거부 국회의원의 비율을 보면, 전망은 밝지 않다.
독립생계 등을 사유로 가족의 재산 고지를 거부한 국회의원의 비율은 2006년 이후 꾸준히 늘어나는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2022년 정기재산공개 때부터는 40%대를 돌파했다. 국회의원 10명 중 4명이 고지거부를 이용해 가족의 재산을 비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정기 공개된 재산 내역을 기준으로 자녀 또는 부모 재산의 고지거부를 한 국회의원은 모두 127명(42.90%)이다. 이들 중 고지거부 제도의 폐지, 강화를 목적으로 발의된 역대 법안에 한 번이라도 서명한 적 있는 의원은 단 12명(김승원, 맹성규, 박광온, 안민석, 윤호중, 이원욱, 이종배, 이철규, 이탄희, 전용기, 정성호, 정우택)뿐이다.
고지거부의 존폐 권한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고지거부의 이해관계에 쐐기처럼 깊이 박혀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사라졌어야 할 공직자윤리법 12조 4항, ‘고지거부’는 지금껏 살아남아 대장동 업자들의 범죄 모의로까지 이어졌다.
이대로 존치돼야 가족의 재산을 감출 수 있는, 이 같은 국회의원의 사사로운 이해관계가 대한민국 입법 시스템을 멈춰 세웠고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를 망가뜨리고 있다.
뉴스타파 임선응 ise@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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