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가 우선인데 5분을 어떻게 쉬나요" 의료 종사자들 '적정 인력 기준' 마련 촉구

류호 2023. 4. 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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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환자 부축·치료하느라 근골격계 통증 시달려
몸 부서져라 일하지만 환자의 성희롱·폭행은 다반사
"적정 인력 기준, 보건의료인력국가책임제 도입 시급"
의료진이 최신 토모테라피 장비인 ‘래디젝트'를 이용해 방사선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다. 순천향대부천병원 제공

"아이를 보는 엄마들이 방사선사로 일하는 게 쉽지 않아요. 5분 휴식도 안 지켜지는걸요. 저녁과 휴일 보장은 딴 세상 얘기입니다."

6일 한국일보와 만난 방사선사 최모(42)씨는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17년째 근무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그러나 열악한 근무 환경 탓에 그도 여전히 업무가 버겁다. 월요일 출근하면 최씨 책상에 올라온 검사 대기표만 60개가 넘는다. 오전 8시부터 퇴근시간까지 퉁퉁 부은 다리를 부여잡고 종일 촬영 버튼을 눌러야 한다. 옥상에 올라가 커피 한 잔 마실 여유도 없다. 최씨는 "우리끼리 5분 안에 빨리 커피라도 마시고 오자는 의미로 휴식시간을 '프레시'라고 부르는데, 내가 쉴 차례에 환자가 밀려오면 그마저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최씨처럼 방사선사들이 격무에 시달리는 건 인력 기준을 근무 강도가 아닌 '장비 기준'으로 잡기 때문이다. 일부 대형병원은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장치(MRI) 장비 1대당 2명이 배치되는데, 이 정도면 근무 여건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보통 1대당 1명이거나, 최씨가 근무하는 병원처럼 2대당 3명을 배치한다. '기계가 비싸니 쉬지 말고 돌리라'는 의미다.

돌발상황이 생기면 방사선사 한 명이 몸으로 때워야 한다. 방사선사가 임신할 경우 모든 촬영은 다른 방사선사 한 명이 전담한다. 여성 환자의 신체를 남자 방사선사가 촬영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경우 방사선사 한 명이 일일이 부축하며 찍는다. 보조인원이 있어도 힘든 업무인데, 혼자서 하다 보니 목·허리 통증을 달고 산다. 최씨는 "시체를 찍거나 큰 사고로 잘려 나간 팔, 다리를 찍는 경우도 있어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방사선사가 적지 않다"고 했다.


물리치료사들, 휴식 5분도 장비 소독하는 업무 시간

지난 2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체육비전 보고회를 마친 뒤 메디컬 센터를 방문해 물리치료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다. 뉴시스

인력부족으로 살인적인 근무 강도를 소화하는 건 방사선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임상병리사 등 모든 보건의료 종사자가 겪는 어려움이다. 강원의 한 재활병원에서 일하는 물리치료사 최모(38)씨는 벌써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고 있다. 한창 일할 나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의 직업수명은 40대까지다. 여성은 물론 남성 물리치료사도 시큰거리는 뼈마디에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물리치료사가 환자 한 명당 30분을 치료한 뒤 5분의 휴식시간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면서도 "하지만 5분도 편히 쉬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5분이 주어져도 환자가 사용한 물건들을 소독하고 제자리에 갖다 놓는 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화장실도 환자 눈치 보며 가야 한다. 쉬는 시간이 없어 치료 도중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는데, 바로 환자의 컴플레인으로 이어진다. 육체적으로도 힘든데 정신적 고통은 더 심하다. 여성 물리치료사들은 환자들의 성희롱·성추행 위험에 늘 노출돼 있고, 남성 치료사들은 화풀이 대상이 된다. 최씨는 "환자들이 남자 치료사의 뺨을 때리거나 자기 배설물을 던지는 일도 있다"며 "우리한테 욕하는 건 매일 겪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간호사는 1대 5, 간호조무사는 1대 20 인력 기준 둬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국내 보건의료인력 현황. 보건의료노조 제공

보건의료종사자들은 의료 서비스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열악한 근무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직종별 적정 인력 기준(Ratios)' 마련과 '보건의료인력국가책임제' 도입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제51회 보건의 날(7일)'을 맞아 이날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보건복지부가 6개 직종에 대한 인력 실태조사를 진행 중인데, 6월 말까지는 적정 인력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6개 직종에 대한 기준을 마련한 뒤 노정합의에 따라 보건의료인력지원법 대상 20개 직종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간호사의 경우 1대 5(간호사 1인당 환자 수 5명), 간호조무사 1대 20, 장비 1대당 방사선사 2명 배치 등의 인력 기준을 주장하고 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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