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직원 도우려 갔더니 ‘외벽 청소’ 전담…‘이중노동’ 시달리는 근로지원인

업무 보조 대신 잡무 떠맡기 일쑤
일자리 잃을까 봐 말 못하고 속앓이
사업주, 제도 악용 업무 통째 맡겨
“장애 특성 고려 근무지 연계 필요”

지난해 3월부터 안마원에서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업무를 보조하는 일을 시작한 50대 A씨는 사장 부부의 셔츠와 원피스를 다림질하고 다른 가족의 운동화까지 빨았다. 창틀 청소는 물론이고, 안마원에서 식사 준비를 담당하던 직원이 관두자 밥을 짓고 설거지까지 했다. 가장 견딜 수 없던 일은 건물 외벽 청소였다. 한 번 외벽 걸레질을 하자, 이후 매주 월·수·금을 아예 ‘외벽 청소’ 담당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A씨는 안마원에 고용된 것이 아니다. 안마를 받는 자리 침구를 정리하거나 시각장애인 안마사 이동을 돕는 ‘근로지원인’이었다.

A씨는 “직원들 식사 준비를 돕거나 외부 기관에 다녀오는 심부름을 하는 등 ‘이 일까지 내 일인가’ 싶은 애매한 지점이 많았다”며 “생업이 달려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는 건물 밖에서 외벽을 닦아야 하는 일을 견딜 수 없어 결국 세 달 만에 일을 관뒀다.

장애인 직원이 스스로 하기 어려운 업무를 보조하는 장애인 근로지원인이 업무 외 ‘허드렛일’ 등으로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적잖다. 장애인 직원이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을 보조한다는 근로지원인의 역할을 악용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6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에 따르면 근로지원인 사업은 2010년부터 실시됐다. 장애인 직원을 고용한 사업주의 부담을 완화하고 중증장애인 자립을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근로지원인은 장애인고용공단 산하 수행기관 소속으로 모집부터 관리, 임금 지불까지 수행기관이 맡는다. 여기에 장애인 직원은 시간당 300원씩 이용료를 지급하며 실제 근무하는 사업장은 따로 근로지원인에게 임금을 주지 않는다.

장애인 직원이 근로지원인이 필요하다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지원을 신청하면 선정 관련 절차가 시작된다. 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근로지원인이 필요할 만큼 중증인지 여부는 장애인고용공단이 정해둔 평가 항목에 따라 해당 직원이 부수적인 업무 수행에 얼마나 어려움을 느끼는지 보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근로지원인 제도가 악용된다는 점이다. 장애인 직원 고용보다 근로지원인 배치에 관심이 더 많은 사업장이 많다. 과거 근로지원인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시각장애인 B(29)씨는 “과거 한 회사는 첫 연락부터 근로지원인을 신청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며 “‘가계약서라도 작성하고 근로지원인 먼저 뽑자’는 말까지 들어 장애인 직원 채용으로 근로지원인 고용 효과를 보고 싶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부터 들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장애인 인식 개선을 통해 근로지원인이 필요하지 않아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현재는 장애인 직원은 손이 느려 일이 쌓이니까 아예 업무 한두 개를 통으로 근로지원인에게 맡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장애 특성을 고려해 담당 업무를 할 때는 그로 인한 불편이 없는 일자리가 연계돼야 맞고 약간의 사회와 사업장의 배려가 필요하다”며 “장애인 일자리는 보조인력을 활용하는 방식보다 지속 가능하게 확산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유빈·유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