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에 제3국 통해 기쁨 드러낸 중국, 불안감 드러낸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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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가 6일 공개한 1992년 외교문서에는 한-중 수교를 둘러싼 주변국의 반응과 평가가 담겨 있다.
특히 중국은 대외적으로 한-중 수교가 역내 평화를 위한 결정이라고 강조했으나, 제3국을 통해서는 '한-대만 단교'를 큰 성과로 여기며 기쁨을 감추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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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가 6일 공개한 1992년 외교문서에는 한-중 수교를 둘러싼 주변국의 반응과 평가가 담겨 있다. 특히 중국은 대외적으로 한-중 수교가 역내 평화를 위한 결정이라고 강조했으나, 제3국을 통해서는 ‘한-대만 단교’를 큰 성과로 여기며 기쁨을 감추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후카다 하지메 일본 사회당 의원은 1992년 9월3일 주일본 한국대사관 참사관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 공산당 간부들은 공식 석상에서는 한중 수교에 대해 발언을 자제하고 태연한 척했으나, 식사나 주연 석상에서는 한국과 대만과의 단교에 크게 특히 기뻐하고 ‘한국이 대단한 정치적 결단을 해주었다. 이로써 한국에 큰 빚을 지게 됐다’고 실토했다”고 전했다. 한-중 수교 체결 당시 중국을 방문했던 일본 후카다 의원은 당시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한-대만 단교가 금번 한중 수교의 가장 큰 성과임을 솔직히 인정했다”고 중국 내부 분위기를 주일본 한국 대사관 쪽에 전했다.
반면 한-중 수교가 현실로 다가온다는 것을 직감한 대만은 다양한 경로로 한-중 수교가 불러올 파장에 대해 경고하고 이를 늦추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이등휘 대만총통은 1992년 1월 김종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 “아시아에 남아있는 공산주의 세 나라(중국·북한·베트남)는 시간문제이지 저절로 넘어질 것이 확실하므로 대륙(중국을 지칭)과의 관계 개선에 속도를 늦춰 신중히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대만의 우려대로 한국과 중국은 그해 8월24일 수교했고, 한국은 수교 직전 대만에 단교 방침을 통보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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