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칼럼] 식민지 근대화(?), 그 폭력의 역사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서양문명의 유행은 막을 방도가 없다. 일본은 문명화를 받아들여 아시아에서 새로운 축을 마련했다. 그 이념이 ‘탈아’(脫亞)다. 근대화를 거부하는 중국과 조선은 서양이 압박하는 가운데 독립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일본은 이웃과 헤어져 서양 열강과 함께 움직이자.”
19세기 일본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의 말이다. 이는 탈아입구(脫亞入歐)론, 즉 일본이 아시아를 탈피해 유럽으로 진입한다는 부국강병론의 뿌리다. 말이 좋아 부국강병이지, 실은 서양 제국주의처럼 아시아의 머리가 되자는, 자본주의 식민지론의 기초다.
12세기 말부터 약 700년 지속한 일본의 막부(가마쿠라, 무로마치, 에도)는 무사가 주도하는 봉건주의(사농공상 신분제)의 핵심이었다. 1850년대 일본은 안으로 수탈과 억압에 반발하는 농민 봉기로, 밖에선 ‘개항이냐 전쟁이냐’는 미국 페리 제독(군함 4척)의 압박이라는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일본의 최종 선택은 화혼양재(和魂洋才), 즉 천황 중심의 일본 정신과 서양 과학기술을 결합해 아시아 최강자로 등극한다는 것!
1880년대 후쿠자와의 ‘탈아론’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강자동일시 전략이었다.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서양 열강(화란·영국·미국·러시아·프랑스)과는 불평등조약을 감수하되, “미개국” 조선, 중국 등을 삼키려 했다. 그는 (봉건제 타파와 인간해방을 주창한)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두고 “조선 인민은 소와 말, 돼지나 개와 같다”고 했으며, 청일전쟁 땐 “중국인은 장구벌레, 개돼지, 거지, 오합산적”이라 했다. 세상을 야만과 문명, 미개와 개화의 이분법으로 보는 이 시각은 재빨리 상인과 사업가로 변신한 신흥 자산가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었다.
그의 후예 오카쿠라 가쿠조(아호 덴신, 1863~1913)는 일본이 조선·중국을 병합, 아시아를 지배해야 한다고 봤다. 최근 논란이 된 그의 “용기는 생명의 열쇠”라는 미사여구도 실은 침략과 약탈의 선동! 후발 제국주의 일본이 서양 열강과 겨루며 아시아를 점령하려면 인륜과 양심을 배반할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 제국주의 생명을 위해 타자 생명을 짓밟는 만용이었다.
사실, 왜구의 노략질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남명 조식의 국정비판서 ‘을묘사직소’(1555년)에도 잘 나오듯 “왜구가 우리나라 남해안 일대를 침탈하는 일”이 잦았다. 영웅 이순신이 활약한 1592년 임진왜란, 1597년 정유재란도 그 연장선!
하지만 19세기 일본의 조선 침략은 이전과 질적으로 달랐다. 이젠 자본주의 과학기술로 무장한 식민지 개척! 1868년 메이지유신을 개시한 일본은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조약을 통해 조선에 개항(부산·원산·인천 등)을 강요했다. 일본 상품의 조선 진출!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한일합방은 그 연장선! 일제는 조선의 쌀, 콩 등을 헐값에 매입, 일본 노동자 임금을 억제했다. 동양척식회사는 토지조사 사업으로 근대적 토지소유권을 확립하며 빈농을 토지에서 내쫓았다. 생산수단을 잃은 농민들은 소작인, 유랑·걸식하거나 노동자가 됐다. 1945년까지 만주로 이주한 농민만 총 150만!
일본 기업인과 부자들은 조선에 진출해 금융과 상공업으로 자본을 축적했다. 일제는 효율적 수탈을 위해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 등 철로와 전주~군산 간 ‘신작로’ 등을 강제노역으로 깔았다. 특히 1930년대 이후 전쟁을 위해 영화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감독, 2017)에 나오듯 조선 여성들을 성노예로, 영화 <군함도>(류승완 감독, 2017)처럼 조선 남성들을 사도탄광, 군수공장, 총알부대로 강제동원했다.
“식산흥업의 길을 열고 부원을 개척해 민력의 함양을 기도해 조선인으로 하여금 문명의 혜택을 입게 한다”(1908년 동양척식회사)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완전한 사기’였다! 미군정과 전쟁, 독재는 그 연장선! 바로 이 폭력과 기만이 한국 자본주의 성장의 토대다.
이것이 한반도에서 펼쳐진 제국주의, 식민주의, 근대화, 자본의 진상이다. 자본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요, 피·땀·눈물의 역사다! 제국·식민지 불문, 남녀 노동자, 농민, 공동체와 자연이 자본의 폭력에 노출됐다. 가치증식 욕망은 무한하되, 인간·자연의 회복탄력성은 유한하다. 세계자본은 무한축적을 원하나, (마름을 제외한) 민중은 불행하다. 또 세계의 바다나 땅은 방사능 오염수, 미세플라스틱, 산업폐기물, 농약, 미세먼지에 오염된다. 이른바 ‘근대화’ 또는 ‘국익’ 논리는 자본에 의한 폭력과 파괴를 감추는 투구요, 관계의 문제를 통계로 치환하는 물신주의일 뿐!
한편 과거의 폭력과 착취, 수탈에 대한 진지한 사과 없인 용서나 화해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104회 3·1절 기념식’에서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고 했다. 또 3월 중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화합(?)주’까지 나눈 뒤 용산 국무회의에서 “이제 한·일 양국 정부는 각자 자신을 돌아보며 한-일 관계의 정상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각자 스스로 제거해 나가”자 했다. 양국 협력을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의 ‘한-일 경제안보대화’ 출범, 한·일 경제계가 조성하는 ‘한-일 미래파트너십 기금’, 일본 소재·부품·장비 업체의 한국 진출, 한·일 군사정보 협력 강화 등이 언급됐다. 이 모두 미국-일본-한국의 자본을 위한 노력들! 여기엔 사람을 위한 노력, 특히 성노예 문제를 피해자 입장에서 풀려는 의지나 자본의 돈벌이용 전쟁을 막으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즉, 한·미·일 정부는 (참된 ‘보편가치’인) 반전평화를 통해 민초의 행복을 돌볼 책무를 적극 외면한다.
더는 ‘무엇이 우리에게 이득인가?’가 돼서는 안 된다. “개돼지”가 아닌 인간답게 살려면 ‘어떻게 살 것인가?’여야 한다. ‘잘 산다는 것’은 돈이 아닌 관계의 문제다! 이것이 기후위기, 전쟁위기, 경제위기에 고통받는 모두에게 시급한 소통과 연대의 철학이자, 파국을 예방할 공생의 열쇠다. 강자동일시 심리로 약육강식 논리에 사로잡힌 한, 자본의 폭력이 낳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순 없다. 초국적 탈자본 생명연대가 민초에 필요한 “용기”다.
16세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온갖 수모를 겪고 돌아가신 남쪽 할머니의 눈물겨운 유언을 기억한다. “나는 이제 늙고 병들어 어찌할 수가 없어. 너희들이 내 대신 나서주라!” 역사적, 사회적 진실투쟁을 결코 멈출 수 없는 이유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무너진 정자교…성남시장 ‘중대시민재해’ 1호로 입건되나
- “패딩 괜히 넣었나”…비 그친 주말, 영하권 꽃샘추위
- 한국 건설 역사의 영원한 오점, 평당 1만1천원 ‘시민아파트’
- 무엇이 진보당을 ‘민주당 텃밭’ 전주에 뿌리내리게 했나
- ‘학폭 배상’ 허사 만들고…연락두절 권경애 변호사 로펌 탈퇴
- 윤 대통령, 고교생 마약 음료수 사건에 “조직 뿌리 뽑아라”
- ‘권경애 불출석’ 배상금 날린 피해자…소송비용까지 물어낼 판
- 전두환 ‘4·13 호헌’ 설득하자 미국은 “왜 이 시점에”
- 땅에 닿는 순간 꽁꽁…‘얼음비’ 내린 퀘벡 곳곳 정전 [포토]
- 비밀문서 속 ‘모가디슈 남북 공관원 탈출’, 영화와는 반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