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생활] ‘소음’이 된 누군가의 목소리

박지영 2023. 4. 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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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기자생활]

김용균씨 사망사건과 관련한 2심 재판이 열린 2월9일 오후 대전지법 앞에서 1심보다 후퇴한 재판 결과에 김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중대재해없는 세상 만들기’ 대전운동본부 회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박지영 | 이슈팀 기자

“이렇게 소리 지르고 나면 속이 풀려요.”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노동자대회 집회 현장. 여느 집회·시위 취재와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의 발언을 노트북으로 옮기느라 바쁘던 내게 옆에 앉아 있던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불쑥 말을 꺼냈다. 무대 앞 도로 바닥에 쪼그려 앉은 취재기자들 사이에서 조금 떨리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투쟁’이란 단어를 연신 외치던 그였다.

“매번 산업재해 유족들 손을 잡아주려고 달려갈 때마다 용균이가 생각나서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었어요.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마음대로 소리 지르면서 울지도 못하고…. 뭔가 분출하고 싶은데 여건이 안 되니까요. 여기 와서 노래도 따라 부르고 구호도 외치면 ‘그래도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구나’ 위로를 받아요.”

이날 김 이사장은 여느 취재기자들처럼 부지런히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스마트폰에 집회 현장을 담았다. ‘혼자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들 때마다 집회 참가자들의 얼굴을 찍은 사진을 꺼내 보며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다시 힘을 얻는다는 설명이었다.

이날 김 이사장과 노동자 1만3천여명이 거리로 나와 “일하다 더는 죽을 수 없다”고 외쳤다. 노동자들은 10여초간 두번씩 호루라기를 불고 비상 사이렌, 차량 경적도 울렸다.

이에 경찰은 ‘집회 소음을 엄격하게 단속하겠다’고 나섰다. 이날 경찰은 처음으로 소음측정 전광판 차량 1대를 서울대 어린이병원 입구에 배치했다. 경찰은 시민들의 소음 민원이 늘어나고 있다며 “집회 참가자들도 소음 기준을 넘었다는 상황을 인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소음측정 전광판 차량을 설치한 이유를 설명했다. 경찰은 일주일여 뒤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연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민중공동행동, 촛불전환행동, 택배노조, 민주노총 등 5개 단체 주최자 5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소음기준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집회 현장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시끄러울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런 ‘소음’이 나오고 경찰 수사 대상에 오르기까지 정부 책임은 없을까. 노동자대회부터 그렇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 이후 4년 만에 간신히 도입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된 지 1년여 만에 위기를 맞았다. 지난 1월 고용노동부는 산재 사고 관련 처벌 대상과 수위 등 제재 방식 개선, 처벌 요건 명확화 방안 등을 논의하겠다며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티에프(TF)’를 만들었다. 노동계에서는 처벌 대상과 요건은 훨씬 까다롭게 하고 처벌 수위는 크게 낮추려는 의도라며 반발한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주 최대 69시간’ 노동시간 개편 방안을 두고도 노동자들은 “죽을 때까지 일하게 하는 악법”이라고 규탄한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귀담아듣기보다 그 목소리에 불법 딱지를 붙이고 처벌하는 것. 집회 소음 민원을 해결할 구실도 있겠다, ‘소리’가 나온 근본 원인과 관련한 정부 책임은 입에 올리지 않으며 누군가의 입을 닫게 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 건 아닐까.

올해 경찰청은 ‘집회 현장 법질서 확립’을 주요 과제로 정하고 2021년 4명이던 집회 현장 관리 경찰관 특진 인원을 올해는 15명으로 4배 가까이 대폭 늘렸다고 한다. 소음측정 전광판 차량도 “향후 종합적으로 분석해 계속 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면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집회 현장에서 ‘시끄럽게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노동자들이 더욱 늘어날 것만 같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건 누군가의 외침만 자의적으로 소음으로 치부된다는 점이다.

“선거 때는 자기들 ‘뽑아달라’고 엄청 크게 외치잖아요. 그건 시민들에게 피해주는 게 아닐까요? (그에 반해) 이건 노동자들 먹고사는 문제잖아요.” 집회 현장을 벗어나 기사를 마감한 뒤에도 거리에서 나눴던 김 이사장과의 대화가 한동안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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