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의 그.래.도] ‘자유 돼지’ 새벽이의 새집을 찾아서

한겨레 2023. 4. 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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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의 그.래.도]영인에겐 유기견보호소에서 데려온 강아지 우주가, 나현에겐 공장에 버려졌던 고양이 단추가 있다. 우주와 단추는 영인과 나현에게 같은 동물로서 연대감을 깨웠다. 연결은 커졌다. 그들은 이전 세계로 돌아갈 수 없었다. 문화예술 쪽에서 일했던 30대 초반 무모의 관심은 인권, 페미니즘, 동물권 등으로 넓어졌다.
2019년 7월 경기도 화성시 한 종돈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이가 2020년 5월25일 새 삶터인 ‘새벽이생추어리’에 도착해 진흙 목욕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소민 | 자유기고가

지난해 7월9일 돼지 새벽이가 세살이 됐다.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그때까지 살아남았다. 돼지는 보통 6개월이면 도축된다. 중학생 아들이 있는 산책(활동명)은 새벽이가 좋아하는 감자를 으깨 생일 케이크를 만들었다. 블루베리로 숫자 3을 썼다. 새벽 5시 ‘새벽이생추어리’에 어스름이 걷힐 무렵, 산책이 케이크를 건네자 새벽이는 1초 만에 먹어치웠다. 새벽이가 어디에서 네살 생일을 맞이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른다. 올해 안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

새벽이는 ‘훔친’ 돼지다. 2019년 동물해방직접행동(DxE) 활동가들이 한 종돈장에 잠입했다. 스톨(번식틀)에 갇힌 엄마돼지들은 고개만 간신히 돌렸다. 강제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 사산율이 높아지면 도축당한다. 한쪽엔 사산된 아기돼지들이 쌓여 있었다. 생후 2주 된 새벽이는 이미 꼬리와 이빨이 잘리고 고환이 뜯겨나갔다. 종돈장 주인은 이들을 신고하지 않았다. 또래보다 작은 새벽이는 사료값이 더 들기 전에 죽였을 테다.

새벽이는 이제 입 양쪽에 위협적인 엄니가 자라난 거구다. 보듬이들(새벽이생추어리에선 시혜적 의미를 품은 자원봉사자 대신 보듬이라 부른다)은 새벽이와 함께 생명을 상품으로 다루는 폭력에 대항해 투쟁한다. 새벽이뿐 아니라 자신도 상품이 아니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활동가 향기는 아기돼지 새벽이가 살 곳을 찾아다니며 한국이 ‘거대한 무덤’이라는 걸 깨달았다. 전염병 위험을 피하려면 농가나 도살장, 살처분 매몰지가 없는 곳을 찾아야 했는데 쉽지 않았다.

수도권 한 땅 주인의 호의로 생크추어리 터가 생기자 동지들이 모였다. 아르바이트를 두세개씩 뛰며 자기 돈과 정성을 갈아 넣어 새벽이가 살 땅을 다졌다. 100리터짜리 마대 8포대도 모자랄 만큼 쓰레기가 나왔다. 2020년 5월 새벽이는 생크추어리에 입주하자마자 진흙 목욕을 했다. 2021년 2월엔 실험용으로 안락사당할 뻔한 돼지 잔디가 들어왔다. 보듬이들은 돌아가며 잔디와 새벽이 식사를 챙기고 똥을 치운다.

새벽이와 잔디는 다시 살 곳을 찾아야 한다. 땅 주인에게 사정이 생겼다. 새벽이생추어리 근처까지 전염병이 퍼지진 않았지만, 위험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1일 경기 포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해 돼지 1만9618명이 살처분됐다. 수도권은 안전하지 않고 너무 비싸다. 공장식 축산이 계속되는 한 이 땅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 ‘새집’을 찾아 답사를 다니는 활동가 영인, 나현, 무모는 마음이 급하다. “비인간동물로 살아가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남쪽으로 많이 내려가게 될 거 같아요.”(영인)

영인, 나현, 무모는 새벽이와 함께 남쪽으로 가서 살 생각이다. 20대 중반인 영인은 수도권에서 나고 자랐다. “처음엔 좀 억울했어요. 서울에 있어야 실패하지 않는 삶이란 환상이 있잖아요. 그런데 시골에 가보니 덜 착취하고 살며 더 치열하게 동물해방 운동을 할 수 있겠더라고요. 지금은 감사해요.”

영인에겐 유기견보호소에서 데려온 강아지 우주가, 나현에겐 공장에 버려졌던 고양이 단추가 있다. 우주와 단추는 영인과 나현에게 같은 동물로서 연대감을 깨웠다. 연결은 커졌다. 그들은 이전 세계로 돌아갈 수 없었다. 문화예술 쪽에서 일했던 30대 초반 무모의 관심은 인권, 페미니즘, 동물권 등으로 넓어졌다. “저는 ‘와이 낫’이라고 생각해요. 안 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기존 방식을 따르면 단절된 채로 괴로워하며 사는 거잖아요. 이 체제를 유지하는 데 최소한 나는 일조하고 싶지 않아요.”

그들에겐 서로가 노후 대책이다. “돈 많이 벌어도 관계가 단절되면 계속 불안한 거 같아요.”(나현) 이들은 새벽이가 더는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미래에 더 많은 사람 포함 동물들이 모일 수 있는 새벽이의 새집을 찾으려 한다.

2020년 가을 새벽이를 처음 만난 날, 노을 속으로 새벽이가 달렸다. 나는 돼지가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천국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누구에게도 가격표가 붙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이런 풍경이 한국에서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안다. 새벽이와 친구들은 꽃을 심고 쓰레기를 파내 그런 ‘해방구’를 다시 만들 거다. 새벽이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해방구 말이다.

(새벽이 이사 후원은 box.donus.org/box/dawnsanctuary/moving_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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