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한국 과거사기관 교류로 평화·인권·민주화 굳건히”
“한국의 과거사 해결 과정과 방법을 배우고 싶어 방문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제주4·3의 해결 과정이 우리와 비슷해 국가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추념 행사를 어떻게 치르는지 직접 보고 배우고 싶어 찾게 됐습니다. 4·3 추념식에 유족들이 많이 참석한 것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지난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5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장에서 만난 몽골 국가회복관리위원회 살단 오돈투야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돈투야 위원장은 현재 몽골 국회 부의장이다. 오돈투야 위원장 일행은 이날 추념식에 참석한 뒤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위원회 주최의 ‘몽골 근현대사 비극: 국가폭력의 희생과 회복의 이야기’ 특별사진전 개막식을 가졌다.
오돈투야 위원장은 “몽골에서도 1921년부터 약 70년 동안 국가폭력 사례가 많았지만 금기시됐었다. 32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폭력이나 대숙청과 관련해서는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시기였다”며 “1989년 민주혁명이 성공한 뒤 위원회 설립 논의가 본격화됐고, 1990년 12월 대통령이 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운동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몽골에서는 1921년 사회주의혁명 이후 사유 재산권 금지, 귀족계급과 불교사원 탄압, 유목민들의 강제 집단화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한 인권 유린이 자행됐다. 1922년 국무총리를 비롯한 민족주의적 성향의 지도자 15명을 총살한 것을 시작으로 관료와 정당 지도자, 귀족과 일부 부족들을 ‘반혁명 세력’으로 낙인 찍고 스탈린과 코민테른에 순응하지 않은 인사들을 탄압했다.
또 1937년에는 몽골 내 특별권한위원회를 설립해 1939년까지 2만5824명을 재판에 넘겨 이 가운데 2만474명을 처형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이로 인해 몽골 사회는 목축인과 독립혁명군 지도자, 과학자, 기술자, 정치가 등의 엘리트 지식인들이 한꺼번에 숙청되는 등 큰 손실을 입었다. 당시 몽골 정부는 1911년 청국으로부터 독립혁명에 기여하고, 몽골의 정치와 사회, 경제, 교육과 의료 등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승려집단이 사회주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자 불교와 승려들을 ‘봉건 영주’로 지목해 강력하게 탄압하기도 했다.
특히 1935년 일본군이 몽골의 동부 경계를 급습한 사건을 계기로 승려들을 일본 간첩으로 조작한 일본 간첩단 사건(1937~1940)이 발생하면서 1만7천여명에 이르는 승려가 학살당하는 대숙청이 일어났다.
몽골 1921년부터 국가폭력·대숙청에
인구 10%인 10만여명 학살 등 피해
민주혁명 뒤 위원회 구성해 진상규명
2만7천명 복권·2만명 보상 등 진행
한국 해결법 배우려 4·3추념식 방문
“유족들 많이 참석한 것 보고 감동”
제주서 ‘몽골 근현대사 비극’ 사진전
국가회복관리위원회 설립 초기에는 법률적 근거 미비로 조사 결과와 희생자에 대한 공식 인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몽골 국회는 1998년 1월 ‘정치적 탄압 희생자들에 대한 복권 및 보상법’(희생자 복권·보상법)을 제정해 위원회가 수행한 진실규명 결과를 토대로 한 법원 판결을 통해 희생자로 공식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몽골은 법 제정 뒤 여러 차례 법률 개정을 통해 희생자들에 대한 복권과 보상, 추념 행사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오돈투야 위원장은 “정치적 박해자에 대한 자료가 불투명한 부분이 많고 자료의 한계로 제대로 연구하고 진상을 밝혀내는 데 한계가 있다. 당시 몽골 인구의 10분의 1인 10만여명 정도를 피해자로 추정한다”며 “위원회의 활동은 크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후세대를 위한 기념사업 등 3대 사업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심 재판을 통한 무죄 선고 및 복권과 보상금 지급은 제주4·3 희생자에 대한 절차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위원회에 따르면, 몽골 내 과거사 사건의 피해자로 추정되는 3만1460명 가운데 현재 2만7323명의 희생자가 법원에서 재심 재판을 통해 복권됐다. 또 1998년 희생자 복권·보상법 제정 이후 1만8360명의 피해자나 그 자녀 등 가족에게 보상금(한화 630억원)이 지급됐지만, 보상금이 미미하다는 지적에 따라 2018년 이 법을 개정해 1만9754명에게 3600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이와 함께 국가폭력을 경고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1997년 수도 울란바토르에 기념물을 세운 것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229개의 각종 기념물을 구축했다.
몽골에서는 해마다 9월10일을 ‘정치적 희생자 추모의 날’로 정해 대숙청이나 희생자 명예회복 등과 관련한 강연회, 세미나 등을 열고 학교에서는 과거사 교육활동을 한다.
오돈투야 위원장은 제주4·3평화재단 등 한국 내 과거사 관련 기관과 교류를 희망한다며 미래세대 교육을 강조했다.
“현재 몽골의 진상규명이나 피해보상, 명예회복은 85% 정도는 달성됐다고 봅니다. 남은 과제는 후세대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이나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불행했던 과거사의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교육하고 영화 제작, 인쇄물 발행, 문화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미래세대 교육을 통해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를 더 공고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무너진 정자교…성남시장 ‘중대시민재해’ 1호로 입건되나
- “패딩 괜히 넣었나”…비 그친 주말, 영하권 꽃샘추위
- 한국 건설 역사의 영원한 오점, 평당 1만1천원 ‘시민아파트’
- 무엇이 진보당을 ‘민주당 텃밭’ 전주에 뿌리내리게 했나
- ‘학폭 배상’ 허사 만들고…연락두절 권경애 변호사 로펌 탈퇴
- 윤 대통령, 고교생 마약 음료수 사건에 “조직 뿌리 뽑아라”
- ‘권경애 불출석’ 배상금 날린 피해자…소송비용까지 물어낼 판
- 전두환 ‘4·13 호헌’ 설득하자 미국은 “왜 이 시점에”
- 땅에 닿는 순간 꽁꽁…‘얼음비’ 내린 퀘벡 곳곳 정전 [포토]
- 비밀문서 속 ‘모가디슈 남북 공관원 탈출’, 영화와는 반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