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병훈 칼럼] 시대착오적 양곡관리법에 미래는 없다

2023. 4. 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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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해당 법안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양곡관리법은 쌀 등 주식의 재료가 되는 양곡의 수급을 조절해 적정 가격을 유지하고자 1948년부터 도입되었다.

주식의 국내 생산을 높여 식량안보를 강화하고 농가에는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도입 목적이었다. 최근 논란이 된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쌀 가격이 전년 대비 5~8% 이상 떨어지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양곡관리법 도입 취지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변화다.

이런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우려가 커진 것은 식량안보와 농가 소득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우선 식습관의 변화로 쌀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쌀 소비량은 매년 평균 2.1%씩 감소했으나 쌀 생산량은 0.6%씩 줄어들어 쌀 소비의 감소율이 생산의 감소율을 3배 이상 웃돈다. 이렇게 쌀 소비가 감소한 동안 밀 소비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농림축산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9㎏인데 밀 소비량은 36.9㎏에 달한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이렇게 변화한 환경에서 식량안보와 농가 소득 보장이라는 도입 취지를 오히려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첫째, 정부의 쌀 초과 생산량 매입은 쌀 생산 감소 속도를 낮춰 장기적으로 쌀값을 더 크게 하락시킨다. 정부가 매년 쌀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해 창고에 보관하면, 시장에서 쌀의 공급량이 감소하므로 단기적으로 쌀 가격의 하락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쌀값이 추세적으로 하락하는 근본적 원인은 쌀 소비가 생산보다 빠르게 감소한다는 데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해 쌀값 하락을 막아주면 농민들이 쌀 생산을 줄일 필요가 없어져 쌀 생산량 감소를 더디게 한다. 이는 향후 쌀 초과 공급량을 증가시켜 쌀 가격 하락 압력을 키울 뿐이다.

둘째,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농민들이 다른 작물을 재배할 유인을 줄인다. 국내 밀 소비가 크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밀의 생산량은 매우 낮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식량 중 국내에서 생산되는 비율인 식량 자급률은 2021년 기준 쌀은 84.6%에 달하지만, 밀은 1.1%에 불과하다. 정부의 쌀 초과 생산량 의무 매입은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의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므로 이들이 쌀 대신 밀을 재배할 유인을 줄인다. 이는 제2의 주식인 밀의 국내 생산 증가를 막아 밀의 식량 자급률을 낮추기 때문에 오히려 식량안보에 해가 된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재정 낭비를 초래해 농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추정에 따르면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2022년부터 2030년까지 쌀 초과 생산량을 연평균 46만8000톤 증가시킨다.

이렇게 초과 생산된 쌀을 시장으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연평균 1조443억원의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초과생산으로 정부가 매입한 쌀의 연간 보관비용과 금융비용만 쌀 1만톤 당 14억 5400만원에 달한다. 보통 쌀을 3년 정도 비축했다가 판매하는데, 이 기간 동안 쌀의 질이 저하되는 것으로 인한 추가 손실을 포함하면 막대한 재정이 낭비되는 것이다. 이를 스마트팜 시설 확대 및 기술 개발, 밀 국내 생산 증가를 통한 식량 자급률 제고 등에 투자한다면 향후 농민 소득 증가와 식량안보 강화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 국내 농업 발전을 위해 정부는 초과 생산된 쌀의 의무 매입에 재정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식량안보와 직결된 밀 산업 육성, 스마트팜 기술 개발 등에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밀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쌀 대신 밀, 콩 같은 전략작물을 재배하면 지원하는 보조금인 전략작물직불금 인상이 필요하다.

현재 쌀 대신 밀을 재배하면 재배 면적(㏊) 당 50만~250만원을 지급하는데 이를 충분히 인상해 농민들이 쌀 대신 밀을 재배할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고령 농민 비중이 60% 이상인 점을 감안해 현재 60% 이하인 밀 농사의 기계화율을 90% 이상인 쌀 농사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 농기계 구입비 지원 및 교육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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