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제자들 성장 가장 큰 기쁨"… 인간적인 포용력 담은 회고
14세, 연령제한 없는 콩쿠르서 주목
전문음악원·오케스트라 지원 강조
월간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바이올리니스트 故 김남윤
지난 3월 12일, 음악계의 큰 별이 졌다. 한국 바이올린의 대모인 김남윤이 지병으로 별세했다. '후학 양성에 힘썼다'라는 수식어는 고인을 묘사하는 적확한 표현으로 빛을 발한다. 이 기사는 그녀의 역사를 역사를 '객석'의 글로 써 내려가는 헌화다.
향년 74세. 병상에 누워있을 때도 제자의 콩쿠르 우승 소식에 기뻐했다던 음악계의 정신적 지주를 떠나보내기엔 아직 이른 때였다. 고인의 발인이 있던 지난 15일, 추도식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서초캠퍼스) 앞 광장에서 진행됐다.
스승을 그리워하는, 그 뜻을 한 번 더 마음에 기려보는 이들의 긴 행렬이 이어졌다. 그가 길러낸 제자들은 현재 한국 바이올린계의 큰 줄기를 이룬다. 김현미·양고운·이경선·백주영·유시연과 같은 중견 교수들의 스승이며, 콩쿠르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젊은 연주자들도 그에게서 배웠다. 신지아·클라라 주미 강·장유진·임지영 등이다.
기자는 현장에서 고인을 마음속 깊이 기렸다. '그의 헌신으로 풍요로워진 음악계에서 우리가 누린 혜택은 무엇인가'. 국화꽃 한 송이 대신 '객석'에 담긴 그의 기록들을 들춰보고 그녀의 역사를 공유해 고인의 뜻을 더 널리 알리고자 한다.
◇영재로서의 김남윤
수많은 영재를 배양한 김남윤이지만, 그 또한 단 14세의 천재 소녀로 처음 주목받았다. 제3회 동아음악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소녀는 당시 서울대 재학생이던 김민과 함께 기록을 남긴다. 그는 당시 이화여중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동아일보가 주최한 전국음악경연대회는 '대한민국에 한하되 연령, 학력 등 일체의 제한을 두지 않는'(동아일보 1963년 3월 15일) 콩쿠르였다. 따라서 초·중·고는 물론 대학생들이 한 부분에서 경쟁을 하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대결 중 하나는 1963년(제3회) 이화여중 3학년에 재학 중인 김남윤(14세)과 서울음대생 김민(21세)의 대결일 것이다. 1위 김남윤, 2위 황보엽(16세, 서울예술고), 3위 김민이 입상했다.(객석 2016년6월호)
◇연주자로서의 김남윤
미국에서의 활동 무대를 국내로 옮긴 지 10여 년이 지났을 즈음, 그는 1년에 30회가 넘는 무대에 서며 '무서울 정도의 집념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는' 스승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 1986년 10월, '객석'과의 인터뷰에 남은 그의 기록은 왕성히 활동 중인 30대 연주자로서의 김남윤을 엿볼 수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그가 품고 있던 교육관과 철학이다.
실내악에 대한 강조, 예비학교부터 시작하는 전문 음악원, 대중을 위한 음악 페스티벌, 장학재단까지…. 2023년에 읽자니 미래를 예언이라도 한 듯이 한국 음악계는 그의 바람의 방향과 함께 확장되어 왔다. 앞선 음악가들의 비전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더불어 흥미로운 것은 본지 기자와 인간적이며 소탈한 대화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 점이다. 농담 섞인 첫 질문 "할 말 없습니까"에 자신이 표지에 나와 판매 부수에 지장이 생기겠다는 농담조로 답을 하며 자신이 품고 있는 예술에 대해 말해나간다.
다음은 '객석' 1986년 10월 호 '인간적인 포용력, 자유분방한 표현력'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이다.
김남윤을 만났다. 자주 얼굴을 대하는 그와 인터뷰를 목적으로 만난다는 것이 우습기도 했다. 예의 그 웃음과 유머가 사람을 즐겁게 한다. 인터뷰보다는 많은 농담이 오간다. 그 가운데도 할말을 다한다. 다시 한번 깊은 인간적인 매력을 발견한다. 그와의 인터뷰는 기자로서의 업무가 아니라, 친구로서의 즐거움이다.
- 할 말 없습니까?
"할 말 많지요. 우선 내가 표지에 나와 '객석'의 판매에 지장이 생기게 된 것에 대해 사과부터 드립니다." (그는 웃는다. 이렇게 인터뷰가 진행된다. 그러나 때로는 정색을 하고 진지한 대화도 오간다)
- 실내악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데…
"물론이죠. 얼마 전까지 서울챔버의 악장을 했고, 현재 서울 무지카 트리오의 멤버입니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긴데, 꼭 솔리스트가 되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솔리스트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장학재단을 하나 하고 싶어요. 재질 있는 아이들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그때마다 속이 상해 울고 싶어요. 정말 너무 아까운 경우가 많아요."
- 우리나라 음악계에 결여된 것이 있다면?
"음악원이 필요합니다. 예비학교부터 시작하는 전문 음악원이 있어야 합니다. 오케스트라에 지원도 있어야 하고…, 또 클래식 음악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도 유치해야 합니다. 연주자나 청중 모두 청바지나 티셔츠 차림으로 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그런 페스티벌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스승으로부터 얻은 가르침을 전하며
1992년 9월호 '객석'은 특집 기사로 '바이올린의 명교수 갈라미언 VS 딜레이'를 마련했다. 교육자로서의 생애와 교수법, 그들이 길러낸 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들, 그리고 한국의 제자들이 말하는 갈라미언과 딜레이가 기사의 순이었다. 김남윤은 스승 이반 갈라미언의 교수법에 대한 회고를 직접 기록했다. 그의 글은 지금 김남윤을 그리워하고 있는 많은 제자의 공감을 자극한다. 이제는 김남윤의 교수법에 대해 제자들이 전수해 나가야 할 차례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객석' 1992년 9월 호에 '나의 스승 갈라미언'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이다.
일찍이 뉴욕 신문은 '나무 탁자도 바이올리니스트로 만들 수 있는 갈라미언 교수법'이란 기사를 특종으로 실은 적이 있다.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줄리어드에 입학한 나는 갈라미언에게 배우기 시작했다. 그에게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바이올린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그의 교수법은 간단명료했다. 그는 결코 어려운 핑거링을 쓰지 않는다 (중략) 아직 어린 나는 선생님의 큰 눈이 무서웠고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던 그 선생님을 마치 서당의 훈장만큼이나 어려워했다. 가끔씩 다정스럽게 웃어줄 때면 손자 녀석이 할아버지 수염을 만지고 놀 듯, 그 품에 안기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다. 러시아 태생인 그는 광활한 대평원을 일궈 옥토로 만드는 소를 말씀하시곤 했다. 단지 앞에 놓인 한 줄의 이랑만을 바라보며 밭을 갈아가는 소는 어느새 무수한 이랑을 만들어 씨앗을 심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앞에 놓인 연습에 열중하다 보면 한 곡 한 곡을 자신의 것으로 터득해 갈 수 있다고 강조하시곤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그것이상 요구하지 않았다. 콩쿨을 준비할 때면 항상 해주시는 말이 있다. "네가 일등을 한다고 너를 더 사랑할 것도 아니고, 실패한다고 해도 너의 실력을 믿으며, 너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나의 사랑하는 제자이다. 등수에 신경 쓰지 말고 집중해서 노력하라"는 것이다.
선생님의 더 많은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귀국해야 했던 안타까움이 나이가 들수록 새삼스러워진다. 내 능력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학생들을 접할 때 가르침과 사랑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이다.
◇김남윤의 바이올린 수업
2010년에 들어오면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3층은 스타 연주자들을 탄생시킨 '김남윤의 레슨실'이 있는 곳이다. 대체 그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의 질문이 늘어가던 시점. 레슨실의 문을 거리낌 없이 '객석'에게 열어준 덕에 지면에는 그의 레슨 한 장면이 남아 있다. 다음은 '객석' 2011년 5월 호 음악 스승 10인을 만나다에 실린 글 일부다.
레슨실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3층 깊숙이 자리해 있었다. 이날 레슨을 받은 이재형은 열아홉 살 대학생으로 지난 2009년 음악원에 영재 입학해 현재 예술사 과정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중략) 김남윤 교수는 제자에게 잔소리가 많다. 어떨 때는 자신의 소리가 스스로도 시끄럽게 느껴질 정도란다. 옷 입는 것은 물론이고 말투와 걸음걸이까지 모든 것에 참견이다. 연주 내내 김남윤 교수는 연주자와 거리를 둔 채 레슨실을 서성였다. 저만치 벽에 기대 서서 제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는가 싶다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기도 했다. 코앞에서 듣는 바이올린의 포르테는 귀가 터질 만큼 강력한데, 그보다 더 큰 소리가 순간 반대쪽 귀를 때린다. "더!" "더 크게 크레센도 해야지! 단 디가디가디다, 단 디가디가디다!" 제자의 포르테를 끌어내기 위해 스승은 더 큰 "포르테!"를 외쳤다. 제자의 "더" 나은 연주를 기대하며, 아담한 레슨실이 마치 큰 정원인 양 걷고 또 뛰는 스승의 모습은, 비록 인상을 쓰고 있음에도 즐거워보였다.
"나는 가르치는 게 참 재미나요. 특히 좀 느린 것 같던 애들이 갑자기 막 피어오를 때 지켜보는 기쁨은 정말 커요. 현수·주미 이후로도 좋은 제자들이 많습니다. 그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기대가 되고, 그래서 재미있어요."
글·정리 월간객석 허서현 기자
사진=한국예술종합학교·객석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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