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들레 아닌 장안개 혹은 장생강을 만날 수도 있었다
기사내용 요약
데뷔 10년 만에 첫 정규 음반 '장들레입니다' 발매
29~30일 벨로주 홍대서 기념 쇼케이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우리는 싱어송라이터 장들레(33·장한나)가 아닌 장안개 혹은 장생강을 만날 수도 있었다.
장들레라는 이름은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민들레에서 따온 이름. 안개·생강도 민들레와 함께 장한나의 싱어송라이터 활동 예명의 후보군에 있었다. 민들레·안개·생강의 공통점은 분명한 '자기 고집'이 있다는 것.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장들레에 대해 네이버문화재단 온스테이지 글에서 "절창은 아니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를 하고, 삶과 사랑의 고민들을 이야기하되 개성 강한 톤 앤 매너를 가졌다"고 봤다.
최근 발매된 장들레의 정규 1집 '장들레입니다' 역시 개인적 감성을 개성적 보컬로 노래해 보편적 감정을 획득한다. 2013년 '제24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팀으로 장려상을 받고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홍대 앞에서 숨은 실력자로 통했다. 믿음직스러운 세션이자 권은비·신화 WDJ·빽가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솜씨 좋은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런 장들레가 데뷔 10년 만에 발매한 첫 솔로 정규 음반에 실린 11곡은 일상의 평범한 나날들을 견디고, 그 삶에 극진하기 위해 뿌리는 민들레 홀씨와 같다. '땅의 별'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노란 민들레의 꽃말은 '일편단심' '감사하는 마음'. 그 꽃말은 이번 장들레의 앨범 열쇳말이자 노랫말이기도 하다. 오는 29~30일 벨로주 홍대에서 이번 음반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 그 말들을 경험할 수 있다. 다음은 최근 홍대 앞에서 만난 장들레와 나눈 일문일답.
-데뷔 10년 만에 내는 첫 정규 음반입니다.
"제가 결혼식은 안 해봤지만 결혼식 하는 느낌이에요. 얼떨떨하고 실감이 안 난다고 해야 할까요. 2021년부터 윤주 언니(듀오 '옥상달빛' 김윤주는 장들레의 절친한 선배이자 소속사 대표다. 최근 두 사람은 협업곡 '눈'을 내놓기도 했다.)를 만나서 와우산 레코드에서 쉬지 않고 지금까지 여덟 개의 싱글을 냈는데 그래서 더 실감이 안 나요. 또 두렵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감사한 분들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더 많이 챙겨드리지 못한 분들에게 죄송하기도 하고… 여러 마음이 있네요."
-첫 정규는 원래 이 시기에 내고자 계획한 건가요?
"처음엔 싱글을 계속 내면서 제 존재를 드러내는 전략을 짰어요. 하하. 그러다 보니 정규 앨범에 들어가는 신곡은 3곡이에요. 조금 부끄럽기도 한데 각자의 (노래) 역사가 있으니까 그 역사를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죠. 꾸준히 내신 싱글의 발자취가 이번 앨범에 담겨져 있으니까요. 트랙 배치 기준이 있었나요? 발매한 싱글 순서대로는 아닌데요.
"타이틀곡인 첫 트랙 '무슨 생각'부터 '모르겠어요'를 거쳐 '사랑받고 싶어서'까지는 제가 경험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리고 제 마음에 대한 관찰이라고 할 수 있죠. '무슨 생각'은 저와 연결되지 않은 타인을 보면서 느낀 걸 썼고 '모르겠어요' '사랑받고 싶어서'는 '나는 좋은 사람일까' 고민하다 결국 '부족한 사람이구라'는 느끼고 거기서 파생된 고통·혼란을 피아노로 풀어낸 것이에요. '유난히 아름다웠던' '무심하게'는 제가 경험했던 이별에 대한 이야기고 '사랑하고 싶어'는 그런 마음을 자연스럽게 써내려간 곡이죠. '우리들의 가능성'과 '가족들에게'는 제가 친구·가족에게 받은 사랑을 풀어낸 곡입니다. '자꾸'와 '그곳'은 우연하게 같은 주제인데요. 제가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전하는 말 같아요. 마지막 트랙 '무지막지하게'는 제 정체성에 대해 노래한 곡이고요."
-'자꾸'와 '그곳'은 연작으로 생각해도 될까요?
"네. '그곳'은 피아노와 스트링으로만 이뤄진 클래시컬한 곡인데요. 피아노를 정말 잘 치고 싶은 욕심이 컸어요. 제가 피아노 전공이 아니고 작곡 전공이라 피아노를 잘 연주하는 분들에 대한 동경이 많은데 감정 표현을 잘 하고 싶은 곡이라 원래 피아노를 다른 분에게 맡길까 생각도 했었죠. 제가 연주하기로 결정한 뒤엔 이 곡을 위해 왼손 강화 연습도 했어요. 왼손으로 밥을 먹는다든지 양치질을 한다든지 글씨를 쓴다든지 했죠. 연습을 심하게 해서 핏줄이 이상해졌는데 그 아픔이 뿌듯하기도 했어요."
-타이틀곡 '무슨 생각'은 어디서 모티브를 얻은 곡인가요?
"동네에서 폐지를 주우시는 어르신을 자주 마주쳐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나오셔서 일을 하시는데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지나가시는 모습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게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더라고요. 평상시에도 도움이 필요한 지인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볼 용기가 없어서 답답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무슨 생각'은 곡을 쓰면서 제일 가사가 많이 바뀐 노래이기도 해요. 맥락들은 거의 비슷한데 윤주 언니랑 같이 쓰면서 어떤 것이 더 마음에 남을까 고민했고 '고통과 씨름'을 했죠. 전 경험했던 일들을 직접 표현하고자 했고 윤주 언니는 좀 더 많은 분들의 공감대를 끌어내고 싶어하셨어요. 저만 아는 지극히 사적인 얘기들, 즉 '옆방에서 자고 있는 언니' 같은 가사의 느낌은 살짝 피해가면 어떻겠냐고 방향성을 제시해주셨죠. 덕분에 더 자연스럽게 써진 거 같아요."
-평소 '나는 좋은 사람일까?'라는 고민이 음악을 만들면서 풀리나요? 그런 고민을 하고 나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든지요.
"아니요. 여전히 저는 부족한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이고 싶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상대방의 진심도 잘 모르겠고 진짜 잘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따듯한 노래를 만들고 싶어하는 거 같아요. 같이 울고 같이 웃을 수 노래요."
-들레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됐나요?
"2019년 첫 솔로 싱글 때부터 사용했는데, 민들레에서 따왔어요. 제가 민들레를 너무 좋아해요. 하수구에서도 피고 콘크리트 벽에서도 피죠. 피지 않을 거 같은 데서 피어나는 '질긴 생명력'이 부러웠어요. '나도 저렇게 작고 연약하지만 강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오래 해왔어요. 그간 찍어 놓은 사진들을 봤는데 노란 민들레 그리고 홀씨 사진이 그렇게 많더라고요. 또 안개도 좋아하고 생강도 좋아해요. 그들처럼 살고 싶어서요. 장미꽃을 선물할 때 안개꽃이 장미를 감싸고 있잖아요. 전 장미꽃보다 안개꽃이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주위를 감싸고 따듯하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어릴 땐 사탕 바구니에서 생강맛 사탕만 안 먹었어요. 그 때는 싫어하는 음식이 생강이었죠. 그런데 커서 제일 좋아하는 차가 생강차예요. 생강 라떼도 정말 좋아해요. 먹다 보니 절 더 건강하게 해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사람을 건강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생강이 좋아졌죠. 또 맛도 고집 있고 타협이 없잖아요. 사람들 의식하지 않고 제가 생각하는 그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강에 투영됐죠. 그래서 장들레뿐 아니라 장안개, 장생강도 활동명 후보군에 있었어요. 장들레라는 이름은 친구가 골라줬어요. 그 친구가 이진아 씨(안테나 소속 싱어송라이터로 이번 장들레의 음반 수록곡 '사랑받고 싶어서'를 피처링했다)예요."
-여러 작업을 하시는 만큼 솔로 작업과 다른 장르를 작업할 때 장안개, 장생강의 이름을 사용하시는 건 어때요? 일종의 부캐처럼요.
"전자음악, 힙합 등의 트랙을 작업하고 싶을 때 그러고 싶어요. 현재 장들레라는 이름을 그냥 사용하긴 하는데 사실 생각해놓은 활동명은 있어요. 닥터 제이요. 장들레의 스펠링을 함축해서 모은 건데요. '권지용→지드래곤→지디'처럼 들레장이 DR.J이 되는 거예요. 진짜 이 이름으로 활동을 할까 고민 중이에요. 하하."
-와우산 레코드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썬더릴리(Sun the Lily·최혜리) 씨는 절친한 가요계 후배죠? 협업곡 '예삐(YEPPI)'도 좋았어요.
"윤주 언니가 '둘째 동생'을 데리고 오면서 시작된 우정의 관계예요. 제가 너무 사랑하는 동생이고 저 역시 썬더릴리 씨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있어요. 같은 부분에서 배 찢어지게 웃고 같은 부분에서 화를 내고 그런 포인트가 비슷하다 보니,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할 정도예요. 너무 신기해요. 심지어 음악 작업도 통해서 너무 재밌게 했어요. 작업을 계속 같이 하고 싶어요. 제 인생에서 그런 사람을 처음 만나 봐서 신기해요."
-들레 씨에게 와우산 레코드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장들레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고 혼자 2년을 보냈어요. 제가 미적 감각이 별로 없거든요. '좋으면 좋은 거'라는 생각에 태블릿으로 그린 그림으로 싱글 커버를 해 음원을 내기도 했어요. 그런데 회사가 있으니까 디테일한 부분을 같이 고민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저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 같이 고민해줄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제 짐이 덜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죄송하기도 해요. 짐을 같이 메주시는 거니까요. 회사에 더 도움이 되고 싶어 열심히 부지런히 하고 싶어요."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중학교 때까지 클래식을 띄엄띄엄 배웠는데 악보를 보고 치는 것에 흥미가 적었어요. 그 악보로 다른 모티브를 만들어서 치는 게 재밌었죠. 고등학교 때 실용음악이라는 걸 친구들 통해 알게 됐고 쭉 하게 된 거죠. 부모님이 음악을 좋아하셨어요. '사이먼 앤 가펑클' 같은 팀은 아빠 때문에 알게 됐죠.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 입상을 했는데) 유재하님은 너무 좋아했어요. 실용음악 레슨을 받을 때 유재하님의 노래를 듣고 청음 실력을 길렀는데 처음엔 숙제여서 듣다가 나중엔 너무 좋아하게 됐어요. 그래서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 꼭 나가고 싶었어요."
-세션으로 작곡가로 유명하지만 본인 이름으로 첫 앨범을 낸 만큼 고민이 많았을 거 같고, 부담도 컸을 거 같아요.
"제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어요. 음악적인 작업이 제일 안 됐던 때가 이번 정규 음반을 준비하면서였어요. 부담감이 무의식적으로 있었나 봐요. 답답함이 생겼고 심리적으로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죠. 감사하게도 결국 제 디딤돌이 됐는데 '좀 더 재밌게 작업을 해볼 걸' 후회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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