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녀’ 꼬리표 18년만에… 커밀라 英왕비 공식 칭호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3. 4. 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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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3세 대관식 초청장에 ‘퀸’ 표기
다음 달 6일 열릴 국왕의 대관식을 앞두고 4일(현지 시각) 영국 왕실이 공개한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커밀라 왕비 사진. /AFP 연합뉴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불륜녀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왕가의 왕비로. 오는 5월 6일 영국 찰스 3세의 대관식을 통해 정식 ‘왕비’ 칭호를 쓰게 된 커밀라 파커 볼스(75)의 이야기다. 영국 왕실은 5일(현지 시각) 찰스 3세의 대관식 초청장을 공개하며 커밀라 왕비의 칭호를 기존의 ‘Queen Consort’에서 단순하게 ‘Queen’으로 표기했다. 둘 다 왕비라는 뜻이지만, ‘배우자(Consort)’라는 말을 떼면서 격(格)을 높였다.

커밀라 왕비는 찰스 3세가 지난해 9월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콘월 공작 부인’으로 불렸다. 찰스 3세의 오랜 내연녀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결혼 생활을 파탄 낸 ‘주범’이라는 꼬리표 때문이다. 그는 2005년 당시 찰스 왕세자와 재혼한 뒤 “왕세자빈(Princess of Wales)은 오직 다이애나뿐”이라는 거센 여론에 밀려 낮은 급의 호칭을 쓸 수밖에 없었다. 콘월 공작은 찰스 3세의 왕세자 시절 작위 중 하나다. 그만큼 커밀라에 대한 영국 국민의 비호감이 대단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왕실의 주요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치르는 세인트 조지 예배당이 아닌, 윈저성 근처의 공회당에서 조용히 치러져야 했다.

시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영영 왕비로 불리지 못할 뻔도 했다. 그는 당초 찰스 왕세자가 왕으로 즉위해도 왕비보다 낮은 ‘대공비(大公妃·Princess Consort)’의 칭호를 쓰기로 정해져 있었다. 이를 놓고 찰스 왕세자의 불만이 대단했다. 그는 “내가 왕이 되면 커밀라를 왕비라고 부르겠다”고 공언해 여론의 큰 반발을 샀다. 보다 못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해 2월 재위 70주년 기념 성명에서 “찰스 왕세자가 즉위하면 커밀라가 왕비로 불리는 것이 내 소원”이라고 해 반대 여론을 잠재웠다. 여왕은 이 발표 이후 7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을 위한 여왕의 ‘마지막 선물’이었던 셈이다.

커밀라는 재혼 후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려 노력했다. 왕실 내 공식 행사에서는 찰스 3세와 윌리엄 왕세자 부부를 내세우고, 자신은 각종 민간단체의 봉사 활동 등에 주로 전념했다. 한때 사치스러운 생활로 비판받고 찰스 3세와 불화설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특유의 소탈한 성품으로 무난히 극복했고, 이미지 관리에도 나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영국 대중의 시각은 여전히 곱지 않다. 대중지 더선(The Sun)은 이날 “왕실이 대관식 초대장을 통해 커밀라가 공식적으로 ‘왕비’가 됐음을 밝혔다”며 “참으로 눈물겨운 ‘러브 스토리’의 정점이 아닐 수 없다”고 비꼬았다.

커밀라 왕비와 찰스 3세의 인연은 197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처음 만나 2년여간 연인 관계였으나, 1973년 찰스 왕세자의 입대와 뒤이은 커밀라의 첫 결혼으로 공식적으로는 친구 관계로 남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사람이 계속 남녀 간의 만남을 이어갔고, 1981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결혼 후에도 관계가 계속됐다.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1995년 BBC 인터뷰에서 “이 결혼 생활에는 ‘세 사람’이 있다”고 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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