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서 고생?…이 기분, 못 잊어요 평생
백패커의 성지 우도 비양도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해안 북쪽 유채꽃길 따라 걷다보면
곳곳에 나지막한 현무암 더미 보여
이곳은 바람 막아주는 '텐트 명당'
오후 6시 넘으면 백패커 모여들어
눈부신 석양 앞에서 인생샷 '찰칵'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우도(牛島). 그 옆에 붙어 있는 섬 안의 섬 비양도는 인천 굴업도, 강원 선자령과 함께 국내 3대 백패킹 성지로 꼽힌다. 제주에는 2개의 비양도가 있다. 우도 동쪽에 있는 비양도(飛陽島)와 협재해수욕장 북쪽에 있는 비양도(飛揚島)다. 둘 중 우도의 비양도가 백패킹의 성지로 꼽히는 이유는 그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수평선 속에서 해(陽)가 날아오르는 것(飛) 같기 때문이다. 이름값을 하듯 일몰과 일출이 빼어나다.
우도에 들어가는 배편은 성산포항과 두문포항에서 일정 시간마다 뜬다. 3월 말 기준 첫배는 오전 9시30분, 막배는 오후 4시. 우도에는 그 흔한 택시가 없다. 비양도까지 가려면 걷거나, 렌터카를 싣거나, 전기바이크를 빌리거나, 순환버스를 타야 한다. 전기바이크는 대여 시간이 정해져 있고, 순환버스는 시간을 맞추기 힘들다. 대부분 백패킹족은 도보를 선택한다.
비양도 텐트치기 좋은 명당은
비양도까지 직선으로 걸으면 한 시간 이내지만 해안을 끼고 북쪽 올레길을 걸어도 좋다. 봄에는 유채꽃, 초여름에는 수국이 있어 걷는 길이 심심하지 않다. 옛 제주민들이 돼지를 키우던 여물통을 지나 언덕배기를 돌면 하고수동 마을이 나온다. 마을 앞에는 재앙을 막기 위해 세운 방사탑이 있는데, 북쪽 하르방탑과 남쪽 할망탑이 한 쌍이다. 그 옛날 동네 젊은이들이 뜻밖의 사고로 죽는 걸 막아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쌓아 만들었다. 하고수동의 작은 해수욕장을 지나면 비양도 입구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 비양도에 도착했다면 가장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한다. 땅이 경사지지 않고, 뾰족한 돌이 튀어나오지 않은 곳이어야 한다. 땅이 기운 곳에 텐트를 쳤다간 안에서 밥을 먹을 때 테이블이 썰매 타듯 미끄러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대부분의 좋은 텐트 자리는 이전에 다녀간 선배들이 현무암을 쌓아 바람을 막을 수 있게끔 만들어 놨으니 그 자리를 활용하면 좋다. 일몰 시각인 오후 6시30분(3월 기준)이 다가올수록 점점 텐트가 늘어난다. 성수기에는 사람이 많이 몰려 텐트를 엉성한 자리에 설치해야 할 수도 있어 잠잘 때 한쪽으로 쏠려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비양도는 바람이 거세다. 텐트를 단단하게 고정하지 않으면 바람에 날아갈 수도 있다. 백패킹용 텐트는 땅에 고정하는 팩을 보통 6개 박으면 되지만 연장끈을 사용해 추가 팩을 박아 놓기를 추천한다. 제주도는 비가 자주 내려 일기예보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배가 끊기면 망한다.
놀멍 쉬멍 먹으멍 ‘백패킹의 시간’
미리 연습하고 온 초보자라면 20~30분이면 텐트가 완성된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으로 ‘백패킹의 시간’이다. 비양도가 백패킹의 성지로 꼽히는 이유는 일출·일몰의 빼어남도 있지만, 가장 큰 공은 24시간 편의점에 있다. 빈손으로 온 관광객에게 언제든 식량과 비품을 조달해주는 등대와 같은 곳이다. 해변 주위에는 도로를 따라 맛집과 술집이 줄을 지어 있다. 자연을 즐기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도시의 편의성을 그리워하는 초보 백패커들에게 최고의 스폿으로 불리는 이유다. 취사할 필요 없이 뜨거운 물을 담아가면 한밤에도 컵라면을 먹을 수 있으니 보온병은 필수다. 야영장 바로 옆에는 해녀의 집이 있다. 해녀가 갓 잡아 올린 전복과 소라 해삼 멍게를 모둠회로 즐길 수 있다. 우도의 명물 땅콩 막걸리도 판다.
비양도가 노을빛으로 물들면 인생 인증샷을 찍기 위해 하나둘 몰린다. 석양은 아이러니컬하다. 맑은 하늘일 때보다 전날 비가 한차례 쏟아부은 이후 구름 사이로 태양이 마지막 숨 끊어지듯 바다로 떨어져야 더 아름답다. 짧디짧은 일몰이 끝나면 긴 밤이 찾아온다. 비양도는 사방이 훤히 트여 있어 인간이 만든 조명과 밤하늘 별빛의 조화가 꽤 아름답다. 일교차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따뜻한 옷과 침낭을 덮고 핫팩으로 버텨야 한다. 하절기에는 별과 바람을 벗 삼아 밤늦게까지 낭만을 즐기는 캠퍼가 많다.
대부분 캠핑 장소에서는 밤 10시 이후에는 ‘매너 타임’으로 떠들지 말아야 하지만 비양도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 숙면을 원한다면 귀마개를 챙겨야 한다. 야영장 바로 옆에는 24시간 개방된 공중화장실이 있다. 남녀가 구분돼 있으며 간단한 양치질과 세수가 가능하다. 샤워나 발을 씻는 것은 금지. 분리배출장도 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뒷정리하는 것까지가 백패킹의 완성이다.
누군가는 캠핑을 사서 하는 고생이라고 말한다. 정답이다. 돈을 쓰고 즐기는 풍찬노숙(風餐露宿)이라니. 하지만 세상사에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사라져버린 이들에겐 이만 한 약이 없다. 바다와 하늘 사이에 머무는 하룻밤은 분명 힘이 된다.
제주=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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