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은행 과점 깨겠다는 토종 PEF … 금산분리 통과가 첫 시험대
◆ 사모펀드 은행 진출 ◆
국내 대형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가 한데 뭉쳐 지방금융지주를 인수한 뒤 은행금융지주로 전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아직까지 지방금융지주 주주들이 매각 방침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추후 매각이 공식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PEF 운용사들은 금융지주회사법을 비롯한 관련 법령에 규정된 '동일인 규제' 등에 대해 유연한 해석을 내려달라고 나섰다. PEF 운용사들은 투명한 논의를 위해 금융당국이 민간 합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은행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대한 정책 방향을 다뤄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6일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PEF 50여 개가 소속된 PEF협의회는 금융당국에 "PEF 운용사들이 클럽딜 형태로 지방금융지주 인수에 나설 때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법령 내에서 유연히 바라봐달라"는 취지로 요청에 나설 예정이다. PEF협의회는 의장사인 JKL파트너스를 비롯해 MBK파트너스, IMM PE, 스틱인베스트먼트, VIG파트너스, 유니슨캐피탈 등 조 단위 딜을 다룰 수 있는 국내 유수 PEF 운용사들이 소속돼 있다.
이들 중 3~4개 PEF는 추후 매각 의사를 밝히는 지방금융지주를 대상으로 지분을 10%씩 동일한 조건으로 사들이는 클럽딜 방식 인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성사되면 PEF 연합군은 지방금융지주 지분을 최대 40% 보유한 최대주주가 된다.
하지만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은 은산분리 규정을 바탕으로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의 금융지주 보유 지분율을 제한하고 있다. 지방금융지주는 최대주주인 동일인이 지분 15%(별도 승인을 얻으면 최대 33%), 은행금융지주는 동일인이 지분 10%(최대 25%)까지 보유할 수 있다. 특히 은행금융지주는 비금융주력자 동일인 의결권이 4%로 제한된다. 산업자본의 은행 보유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PEF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기업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PEF가 비금융주력자로 분류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며 "비금융주력자에 주어진 의결권 제한을 감안해 여러 PEF 운용사가 지방금융지주를 인수해 취약한 지배력을 상호 보강하겠다는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클럽딜로 지분 인수에 나서면 인수 조건이 엇비슷하기 때문에 PEF 운용사별로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했을지라도 외관상으로는 컨소시엄 인수와 비슷해 보인다. 이 때문에 PEF 연합군을 하나의 동일인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PEF협의회는 "PEF 연합군이 클럽딜로 지방금융지주를 인수한다 하더라도 공동경영약정은 맺지 않는 조건으로 인수할 것"이라며 "현행 자본시장법상 상장사 최대주주의 백기사라 할지라도 공동경영약정이 없으면 최대주주 지분에 귀속되지 않는 것과 동일하게 취급해달라"고 제안했다.
국내 PEF 운용사들은 자본시장법상 투자 과정에서 운용사(GP)가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돼 있다. 심지어 PEF에 출자한 국민연금 같은 국내외 대형 연기금도 운용사의 투자 세부 내역에 간여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이 같은 독립적 의사결정 구조가 담보돼 있으니 이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이 같은 PEF 연합군의 공동 인수 과정에서 동일인 규정에 대해 유연하게 해석하면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가능성까지 열린다. PEF협의회는 지방금융지주를 인수한 뒤 은행금융지주 전환을 염두에 두고 PEF 운용사별로 지분 10% 확보를 생각하고 있다. 은행금융지주 전환 때는 의결권 행사 가능 지분이 4%로 줄어든다는 점을 감안해 4개 PEF 정도는 연합해야 의결권 지분 16%가 확보돼 경영 관련 의사결정을 이들 연합군이 주도할 수 있다.
PEF 연합군이 지방금융지주를 거쳐 궁극적으로 은행금융지주 보유자가 되면 국내 5대 금융지주 체제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금융지주 경영에 적극 개입해 금융지주의 비효율적 지배구조와 업무 프로세스만 개선해도 현재 저평가돼 있는 금융지주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더 나아가 강력한 효율성으로 무장한 경쟁자 등장은 기존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과점 체제에 안주해 경쟁 유인이 없던 5대 금융지주가 본격적으로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PEF 연합군의 지방금융지주 진입이 현 정부 은행권 경쟁 촉진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간 HSBC, 씨티그룹 등 글로벌 유수 은행이 국내 5대 은행 벽을 넘지 못하고 소매금융 부문을 철수한 바 있어 PEF 연합군은 이 같은 벽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PEF 운용사들의 지방금융지주 인수 방안이 금융 안정과 소비자 보호·효용 증진 등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지 신중하게 검토할 예정이다.
클럽딜
다수의 투자자가 동일 거래에 같은 조건으로 입찰에 나서는 금융 거래 방식. 투자자 각자 판단으로 딜에 참여할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투자자 복수가 뜻을 모아 같이 거래에 나서는 컨소시엄 딜과 차이가 있다.
[한우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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