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소비보다는 놀이가 먼저다
박찬은 2023. 4. 6. 17:31
늘어가는 편집숍...도시가 재미있어졌다!
편집숍은 앞서 말했듯 주인의 ‘취향’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전통적으로 물건을 파는 일종의 잡화점 분위기 중 최고는 백화점이다. 고급스럽고, 널찍하고, 쾌적하다. 백화점은 큰 건물을 두고 브랜드를 입점시켜 매출 대비 수수료를 떼가는 구조다. 그러니 일종의 부동산 임대업에 가깝다. 하지만 편집숍은 아주 작은 공간부터 거대한 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양성을 보인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은 정말 개인적 취향으로 가득한, 그래서 혹자의 취향과는 동떨어질 수도 있는 가게다. 호불호가 아주 강해진다는 이야기다. 대형 편집숍은 기업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섹션별 MD(상품기획자)의 역량에 따라 색채가 시시각각 변한다. 적든 크든 편집숍은 취향을 파는 곳임에 틀림없다.
편집숍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오던 상점의 한 형태였다. 그러니 지금 와서 왜 이 단어를 꺼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현 시대의 편집숍은 새로운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안적 놀이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게 케케묵은 용어를 다시금 호명하는 이유다. 과거 프랑스 파리에는 ‘꼴레뜨’라는 유명 편집숍이 있었다. 꼴레뜨 루소라는 창업자의 이름을 딴 가게였는데, 그곳의 취향 때문인지 많은 이들에게 ‘파리 꼴레뜨’는 꼭 들러야만 하는 일종의 핫 플레이스였다. 그런 꼴레뜨가 20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2017년에 폐업했다. 어찌 보면 시대의 변화를 이겨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주인장의 취향이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꼴레뜨가 사라졌다고 해서 파리에 편집 매장이 없는 건 아니다. 더 취향 좋은 숍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지금도 성업 중이다. 백화점과 편집숍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마레 지구의 ‘메르시’도 있고, 하이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을 적절하게 섞어 유명해진 ‘브로큰 암’도 있다. 런던, 도쿄 등에서 유명한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소형 버전 ‘리틀 도버 스트리트 마켓’도 파리에 있다.
지난 1월과 2월, 나는 파리에 두 차례 출장 차 다녀왔다. 길을 걷다 보면 위에서 언급한 몇몇 편집매장 이 외에도 굉장히 많은 숍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과거와 달라진 점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그건 단순히 제품을 파는 공간으로서의 편집 매장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해외는 물론 한국에서도 전통적 편집숍의 개념이 현대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성공과 실패 사례들을 잘 분석하고, 현대 트렌드를 잘 반영하며, 가장 중요한 소비자의 변화를 잘 파악한 숍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지는 건 새로운 세대 소비자의 트렌드와 취향을 잘 받아들인 ‘놀이 공간으로서의 편집숍’ 개념이다. 한마디로 물건을 사야만 했던 가게가 아니라 구경만 하고 놀다 나올 수 있는, 그러다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구매하는 그런 패턴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현대의 편집숍은 도시인을 위한 플레이그라운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서울에서 MZ세대들의 발걸음을 가장 많이 향하게 하는 지역은 성수동이다. 여기저기 새로운 매장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난다. 물론 편집숍도 많다. 그런 지역에 근래 새로운 매장이 하나 문을 열었다. ‘스왈로우 라운지’라는 편집숍이다. 가게 주인장이 만든 브랜드의 옷부터 국내외 브랜드들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다. 의류나 액세서리만 파는 게 아니다. 라이프스타일 제품도 있고, 심지어 바이닐 레코드까지 판다. 패션 매거진 등과 같은 서적도 판매한다. 백화점만큼 큰 공간은 아닌데 섹션별로 구색은 다 갖춰져 있다. 한편에 카페도 있다.
스왈로우 라운지가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라 소개하는 게 아니다. 다만, 가장 최근에 생겨난 곳이고, 진화하고 있는 편집숍의 개념을 꽤나 잘 반영했기에 사례로 드는 것뿐이다. 이 매장을 둘러보면 글로벌 트렌드로 꼽을 수 있는 놀이 공간으로서의 편집 매장이 가지는 특징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럼 새로운 시대의 소비자를 사로잡는 편집숍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째는 ‘본연의 기능’이다. 어쩌면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하다. 이 글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편집숍은 일단 패션 카테고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가게로 손님을 끌 수 있는 제일의 조건은 바로 좋은 옷을 ‘셀렉트’하고 ‘에디트’하는 것이다. 사실 편집 매장이라고 해서 들렀는데 눈에 띄는 브랜드 또는 제품이 없다면? 그곳은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근래 문을 연 편집 매장 하나가 있다. 많은 편집숍들이 행하는 오류 중 하나가 일종의 ‘자뻑’이다. ‘해외에서 엄청 떠오르는 브랜드인데, 이 정도는 알아야 돼!’라는, 일종의 교육 또는 훈수의 개념이 소비자 취향의 고려보다 우선시 될 때 발생하는 결과다. 유니크하고 창조적 디자이너 브랜드일 수는 있겠지만 대중성을 담보하지 않은 브랜드로만 채워진 숍은 결코 소비자의 간택을 받을 수 없다. 과거에도 이 같은 시행착오로 버티지 못한 매장들이 많았다.
두 번째는 일종의 구색이기도 하면서 ‘트렌드에 편승한 아이템 선택’이다. 그중 하나가 바이닐 레코드다. 음악 산업에서 바이닐 레코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CD가 피지컬 레코드의 대세였을 때는 많은 편집숍들이 자신들이 셀렉한 CD들을 진열, 판매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LP라 불리는 레코드 판이 대세다. 음반 매장은 아니지만 한쪽에 이 섹션이 있고 없고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편집숍 우열을 가리는 데 꽤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도 주인장의 취향이 중요해진다.
너무 어려운 음악을 진열하기보다는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이라도 들어봤을 법한 아티스트의 앨범을 가져다 놔야 한다. 현재 많은 편집매장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바이닐 레코드를 조금씩 판매하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너무 마이너한 장르만을 취급하기도 한다. 또 어떤 곳에서는 너무 일반적인 팝을 판매한다. 이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편집숍을 찾은 고객들은 그곳에서 들려오는 음악, 거기서 판매하는 음반만으로도 숍 자체를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식음료 코너’다. 매장이 크든 작든 먹고 마시는 휴게 공간은 필수적이다. 단순하게 쇼핑을 위해서라면 굳이 그곳에 갈 이유가 없다. 쇼핑을 위한 가게는 거리마다 널려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제공하는 커피의 맛, 간식의 맛이 아주 중요해진다. 기분 좋게 매장을 둘러보고 잠시 숨 돌리고자 앉는 카페의 커피 맛이 현저히 떨어진다면? 모든 게 허사다.
물론 맛도 맛이지만 MZ세대를 사로잡을 수 있는 근사한 공간도 필수적이다. 굉장히 모던하거나 빈티지하던지, 또는 아주 화려하던지. 엉덩이 걸치고 앉아 모바일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그곳의 사진 한 컷이 해당 편집숍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그 사진들이 급속도로 SNS에 확산되면서 핫플레이스로 등극하느냐, 아니면 곧 폐업 위기에 처하느냐를 결정할 수도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내가 최근 파리에서 들렀던 편집 매장 브로큰 암이 세 번째 특징의 적절한 사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곳의 제품 셀렉션은 꽤나 흥미롭다. 안목이 좋다는 이야기다. 물론 제품 가격은 꽤 높다. 하지만 1층에 작게 마련된 카페의 커피 맛이 참 좋았다. 거기에서 옷을 사지는 않았지만, 커피의 맛 때문이라도 다음 파리 방문 시 다시 들러볼 의향이 생겼다. 이게 현대 편집숍이 존속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다.
편집숍이 지속가능성을 갖추기 위해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스스로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건 편집숍의 수익 부분과도 관련이 있다. 편집 매장은 마트 또는 슈퍼마켓과 같은 구조다. 좋은 브랜드 물건을 떼어다 팔고, 원가와 비용을 제한 부분을 수익으로 취한다. 아무리 편집숍이 장사가 잘된다 할지라도 매장 자체를 유지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장사라는 게 그렇지 않던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법. 전자로 유지되면 좋겠지만 후자로 치우치는 경우도 많다.
동시에 편집 매장이 브랜드로서 자리를 잡아야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트렌디한 가게로 존재할 뿐이다. 뉴욕에서 시작된 ‘키스(KITH)’라는 편집숍이 있다. 이제 꽤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들 역시 첫 출발은 시대적 맥락을 재빨리 받아들인 편집숍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키스는 트렌드를 생성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브랜드 ‘키스’ 제품들을 만들고 판매한다. 이게 단순한 PB 상품과는 좀 다른 궤적이다. 패션이 아닌 다른 분야 기업에서 티셔츠, 후디 등 굿즈 개념의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키스는 시즌마다 컬렉션을 열 만큼 꽤 큰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앞서 말한 성수동의 스왈로우 라운지 역시 유사하다. 물론 이들은 브랜드를 먼저 만들고 후에 편집숍을 오픈한 경우이긴 하다.
이렇게 네 가지 요소가 응집되어 선보이는 편집숍은 향후의 존속을 일정 부분 보장받는다. 물론 현대의 소비자에게 좋은 플레이그라운드로서 기능하는 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서울에도 이 같은 편집숍들이 최근 많이 생겨나고 있다. 굳이 사지 않더라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다.
최근 꽤나 다양한 범주의 편집숍이 생겨나고 있는 것 역시 흥미롭다. ‘나이스웨더’는 슈퍼마켓 개념을 트렌디하게 도입한 일종의 잡화점이다. 성수동의 ‘LCDC’는 구조화된 공간 속에서 그들의 브랜드는 물론 이런 저런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편집숍이다. 스트리트 브랜드 온라인 몰로 잘 알려진 ‘하이츠 스토어’ 역시 다양한 브랜드를 선보이며 성공적 편집숍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렇다 보니 소비자 계층의 변화를 시도하는 대형 백화점들이 젊은 소비자를 위한 공간 마련을 위해 이들 편집숍에 러브콜을 보내기도 한다. 여의도 소재의 더 현대 서울의 지하층에 가보면 이 편집숍들이 ‘숍 인 숍’ 개념으로 입점해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편집 매장 스타일의 공간이 매력적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현상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좋은 편집 매장이 많아진다는 건 반길 만한 일이다. 우리네 도시는 지금껏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양분 체제로 소비를 규정해왔다. 관습화된 시스템 속에서 기계적으로 소비해야만 했다는 뜻이다. 편집숍은 이제 획일화된 소비 형태를 ‘취향 존중의 시대’ 트렌드에 맞게끔 재편한다. 그 많은 편집숍에서 보고 즐기고 놀면 된다. 물론 몇 군데 들르면 자신의 취향과 맞는 매장을 확정하게 되고, 종종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이다. 더욱이 현대의 편집 매장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 발 맞춰 진화한다. 동일 브랜드지만 취향에 따라 선택된 제품은 상이하다. 그러니 매장별로 완전히 다른 색채를 표출한다. 이제는 내게 맞는 편집숍을 찾아 거기서 구경하고 차 마시고, 간식을 즐기면 그뿐이다. 그렇게 도시의 플레이그라운드는 한 걸음씩 변화하며 나아가고 있다.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및 일러스트 픽사베이,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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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편집숍’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종종 듣는다. 말 그대로 주인장이 ‘편집(edit)’해서 제품을 전시해 둔 ‘숍(shop)’이다. 어떤 물건을 파느냐에 따라 편집숍의 범주는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패션 편집숍이 많다. 가구나 리빙 인테리어 제품을 파는 숍도 있다. 라이프스타일 편집숍도 있다.
놀이공간으로서의 편집숍
편집숍은 앞서 말했듯 주인의 ‘취향’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전통적으로 물건을 파는 일종의 잡화점 분위기 중 최고는 백화점이다. 고급스럽고, 널찍하고, 쾌적하다. 백화점은 큰 건물을 두고 브랜드를 입점시켜 매출 대비 수수료를 떼가는 구조다. 그러니 일종의 부동산 임대업에 가깝다. 하지만 편집숍은 아주 작은 공간부터 거대한 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양성을 보인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은 정말 개인적 취향으로 가득한, 그래서 혹자의 취향과는 동떨어질 수도 있는 가게다. 호불호가 아주 강해진다는 이야기다. 대형 편집숍은 기업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섹션별 MD(상품기획자)의 역량에 따라 색채가 시시각각 변한다. 적든 크든 편집숍은 취향을 파는 곳임에 틀림없다.
편집숍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오던 상점의 한 형태였다. 그러니 지금 와서 왜 이 단어를 꺼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현 시대의 편집숍은 새로운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안적 놀이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게 케케묵은 용어를 다시금 호명하는 이유다. 과거 프랑스 파리에는 ‘꼴레뜨’라는 유명 편집숍이 있었다. 꼴레뜨 루소라는 창업자의 이름을 딴 가게였는데, 그곳의 취향 때문인지 많은 이들에게 ‘파리 꼴레뜨’는 꼭 들러야만 하는 일종의 핫 플레이스였다. 그런 꼴레뜨가 20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2017년에 폐업했다. 어찌 보면 시대의 변화를 이겨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주인장의 취향이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꼴레뜨가 사라졌다고 해서 파리에 편집 매장이 없는 건 아니다. 더 취향 좋은 숍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지금도 성업 중이다. 백화점과 편집숍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마레 지구의 ‘메르시’도 있고, 하이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을 적절하게 섞어 유명해진 ‘브로큰 암’도 있다. 런던, 도쿄 등에서 유명한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소형 버전 ‘리틀 도버 스트리트 마켓’도 파리에 있다.
지난 1월과 2월, 나는 파리에 두 차례 출장 차 다녀왔다. 길을 걷다 보면 위에서 언급한 몇몇 편집매장 이 외에도 굉장히 많은 숍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과거와 달라진 점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그건 단순히 제품을 파는 공간으로서의 편집 매장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해외는 물론 한국에서도 전통적 편집숍의 개념이 현대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성공과 실패 사례들을 잘 분석하고, 현대 트렌드를 잘 반영하며, 가장 중요한 소비자의 변화를 잘 파악한 숍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지는 건 새로운 세대 소비자의 트렌드와 취향을 잘 받아들인 ‘놀이 공간으로서의 편집숍’ 개념이다. 한마디로 물건을 사야만 했던 가게가 아니라 구경만 하고 놀다 나올 수 있는, 그러다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구매하는 그런 패턴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현대의 편집숍은 도시인을 위한 플레이그라운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패션 브랜드+바이닐 레코드+카페
서울에서 MZ세대들의 발걸음을 가장 많이 향하게 하는 지역은 성수동이다. 여기저기 새로운 매장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난다. 물론 편집숍도 많다. 그런 지역에 근래 새로운 매장이 하나 문을 열었다. ‘스왈로우 라운지’라는 편집숍이다. 가게 주인장이 만든 브랜드의 옷부터 국내외 브랜드들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다. 의류나 액세서리만 파는 게 아니다. 라이프스타일 제품도 있고, 심지어 바이닐 레코드까지 판다. 패션 매거진 등과 같은 서적도 판매한다. 백화점만큼 큰 공간은 아닌데 섹션별로 구색은 다 갖춰져 있다. 한편에 카페도 있다.
스왈로우 라운지가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라 소개하는 게 아니다. 다만, 가장 최근에 생겨난 곳이고, 진화하고 있는 편집숍의 개념을 꽤나 잘 반영했기에 사례로 드는 것뿐이다. 이 매장을 둘러보면 글로벌 트렌드로 꼽을 수 있는 놀이 공간으로서의 편집 매장이 가지는 특징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럼 새로운 시대의 소비자를 사로잡는 편집숍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째는 ‘본연의 기능’이다. 어쩌면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하다. 이 글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편집숍은 일단 패션 카테고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가게로 손님을 끌 수 있는 제일의 조건은 바로 좋은 옷을 ‘셀렉트’하고 ‘에디트’하는 것이다. 사실 편집 매장이라고 해서 들렀는데 눈에 띄는 브랜드 또는 제품이 없다면? 그곳은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근래 문을 연 편집 매장 하나가 있다. 많은 편집숍들이 행하는 오류 중 하나가 일종의 ‘자뻑’이다. ‘해외에서 엄청 떠오르는 브랜드인데, 이 정도는 알아야 돼!’라는, 일종의 교육 또는 훈수의 개념이 소비자 취향의 고려보다 우선시 될 때 발생하는 결과다. 유니크하고 창조적 디자이너 브랜드일 수는 있겠지만 대중성을 담보하지 않은 브랜드로만 채워진 숍은 결코 소비자의 간택을 받을 수 없다. 과거에도 이 같은 시행착오로 버티지 못한 매장들이 많았다.
두 번째는 일종의 구색이기도 하면서 ‘트렌드에 편승한 아이템 선택’이다. 그중 하나가 바이닐 레코드다. 음악 산업에서 바이닐 레코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CD가 피지컬 레코드의 대세였을 때는 많은 편집숍들이 자신들이 셀렉한 CD들을 진열, 판매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LP라 불리는 레코드 판이 대세다. 음반 매장은 아니지만 한쪽에 이 섹션이 있고 없고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편집숍 우열을 가리는 데 꽤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도 주인장의 취향이 중요해진다.
너무 어려운 음악을 진열하기보다는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이라도 들어봤을 법한 아티스트의 앨범을 가져다 놔야 한다. 현재 많은 편집매장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바이닐 레코드를 조금씩 판매하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너무 마이너한 장르만을 취급하기도 한다. 또 어떤 곳에서는 너무 일반적인 팝을 판매한다. 이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편집숍을 찾은 고객들은 그곳에서 들려오는 음악, 거기서 판매하는 음반만으로도 숍 자체를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식음료 코너’다. 매장이 크든 작든 먹고 마시는 휴게 공간은 필수적이다. 단순하게 쇼핑을 위해서라면 굳이 그곳에 갈 이유가 없다. 쇼핑을 위한 가게는 거리마다 널려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제공하는 커피의 맛, 간식의 맛이 아주 중요해진다. 기분 좋게 매장을 둘러보고 잠시 숨 돌리고자 앉는 카페의 커피 맛이 현저히 떨어진다면? 모든 게 허사다.
물론 맛도 맛이지만 MZ세대를 사로잡을 수 있는 근사한 공간도 필수적이다. 굉장히 모던하거나 빈티지하던지, 또는 아주 화려하던지. 엉덩이 걸치고 앉아 모바일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그곳의 사진 한 컷이 해당 편집숍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그 사진들이 급속도로 SNS에 확산되면서 핫플레이스로 등극하느냐, 아니면 곧 폐업 위기에 처하느냐를 결정할 수도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내가 최근 파리에서 들렀던 편집 매장 브로큰 암이 세 번째 특징의 적절한 사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곳의 제품 셀렉션은 꽤나 흥미롭다. 안목이 좋다는 이야기다. 물론 제품 가격은 꽤 높다. 하지만 1층에 작게 마련된 카페의 커피 맛이 참 좋았다. 거기에서 옷을 사지는 않았지만, 커피의 맛 때문이라도 다음 파리 방문 시 다시 들러볼 의향이 생겼다. 이게 현대 편집숍이 존속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다.
편집숍이 브랜드가 되어야 지속 가능
편집숍이 지속가능성을 갖추기 위해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스스로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건 편집숍의 수익 부분과도 관련이 있다. 편집 매장은 마트 또는 슈퍼마켓과 같은 구조다. 좋은 브랜드 물건을 떼어다 팔고, 원가와 비용을 제한 부분을 수익으로 취한다. 아무리 편집숍이 장사가 잘된다 할지라도 매장 자체를 유지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장사라는 게 그렇지 않던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법. 전자로 유지되면 좋겠지만 후자로 치우치는 경우도 많다.
동시에 편집 매장이 브랜드로서 자리를 잡아야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트렌디한 가게로 존재할 뿐이다. 뉴욕에서 시작된 ‘키스(KITH)’라는 편집숍이 있다. 이제 꽤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들 역시 첫 출발은 시대적 맥락을 재빨리 받아들인 편집숍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키스는 트렌드를 생성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브랜드 ‘키스’ 제품들을 만들고 판매한다. 이게 단순한 PB 상품과는 좀 다른 궤적이다. 패션이 아닌 다른 분야 기업에서 티셔츠, 후디 등 굿즈 개념의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키스는 시즌마다 컬렉션을 열 만큼 꽤 큰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앞서 말한 성수동의 스왈로우 라운지 역시 유사하다. 물론 이들은 브랜드를 먼저 만들고 후에 편집숍을 오픈한 경우이긴 하다.
이렇게 네 가지 요소가 응집되어 선보이는 편집숍은 향후의 존속을 일정 부분 보장받는다. 물론 현대의 소비자에게 좋은 플레이그라운드로서 기능하는 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서울에도 이 같은 편집숍들이 최근 많이 생겨나고 있다. 굳이 사지 않더라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다.
각양각색 편집숍이 러브콜을 받는 이유
최근 꽤나 다양한 범주의 편집숍이 생겨나고 있는 것 역시 흥미롭다. ‘나이스웨더’는 슈퍼마켓 개념을 트렌디하게 도입한 일종의 잡화점이다. 성수동의 ‘LCDC’는 구조화된 공간 속에서 그들의 브랜드는 물론 이런 저런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편집숍이다. 스트리트 브랜드 온라인 몰로 잘 알려진 ‘하이츠 스토어’ 역시 다양한 브랜드를 선보이며 성공적 편집숍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렇다 보니 소비자 계층의 변화를 시도하는 대형 백화점들이 젊은 소비자를 위한 공간 마련을 위해 이들 편집숍에 러브콜을 보내기도 한다. 여의도 소재의 더 현대 서울의 지하층에 가보면 이 편집숍들이 ‘숍 인 숍’ 개념으로 입점해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편집 매장 스타일의 공간이 매력적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현상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좋은 편집 매장이 많아진다는 건 반길 만한 일이다. 우리네 도시는 지금껏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양분 체제로 소비를 규정해왔다. 관습화된 시스템 속에서 기계적으로 소비해야만 했다는 뜻이다. 편집숍은 이제 획일화된 소비 형태를 ‘취향 존중의 시대’ 트렌드에 맞게끔 재편한다. 그 많은 편집숍에서 보고 즐기고 놀면 된다. 물론 몇 군데 들르면 자신의 취향과 맞는 매장을 확정하게 되고, 종종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이다. 더욱이 현대의 편집 매장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 발 맞춰 진화한다. 동일 브랜드지만 취향에 따라 선택된 제품은 상이하다. 그러니 매장별로 완전히 다른 색채를 표출한다. 이제는 내게 맞는 편집숍을 찾아 거기서 구경하고 차 마시고, 간식을 즐기면 그뿐이다. 그렇게 도시의 플레이그라운드는 한 걸음씩 변화하며 나아가고 있다.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및 일러스트 픽사베이,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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