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스요금 인상 '공감했다지만'…시점 '불투명'
정부와 여당이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요금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룬 가운데 여론 의견 수렴,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의 자구 노력, 취약계층 지원 방안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 중이다. 다만 물가 상승에 대한 부담을 느낀 여당의 신중론이 강한 편이어서 최종 결론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6일 정부에 따르면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기·가스 요금 민당정 간담회' 참석자들은 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에 대체적으로 동의했다. 전문가들은 요금 정상화 지연 시 전력 공급 안정성이 위태로워지고 관련 산업분야 투자가 위축되는 악영향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올해 1분기 한전채 발행량이 8조원대로 집계되면서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못할 경우 금융시장 충격을 피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민당정 간담회에는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류성걸 의원,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간사인 한무경 의원,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정승일 한전 사장,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 등이 참석했다.
당정은 전기·가스 요금 인상에 앞서 에너지 공기업들의 자구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에너지 생산 비용을 줄여 국민들의 부담을 경감시키겠다는 것이다.
박 정책위의장은 "한전과 가스공사가 비핵심 자산 매각, 공급 안정성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의 사업비 투자, 고강도 긴축경영 등을 통해 2026년까지 각각 14조원, 총 28조원 규모의 자구노력을 강도 높게 추진할 계획이라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박 정책위의장은 "이 정도 (자구노력)으로 국민이 (요금 인상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인지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렸다"며 "국민들이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뼈와 살을 깎는 구조조정 노력이 (요금 인상에 앞서)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또 당정은 전기·가스요금 인상으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추가로 마련하기로 했다. 박 정책위의장은 "취약계층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과 소상공인 대상 요금 분할납부 제도를 조기 시행해서 부담을 덜어주는 것, 에너지 캐시백 제도 활성화 등 국민부담을 경감하는 다양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했다.
산업부는 한전의 적자 증가와 가스공사 미수금을 고려하면 빠른 시일 내 요금 인상이 이뤄져야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2분기 요금을 동결하면 하반기 요금 인상 압박이 더 커지는데 냉방수요가 많은 3분기에 전기요금을 올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 차관은 "지난 정부에서 미뤄온 요금정상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여전히 원가이하 공급으로 한전 적자와 가스공사의 미수금이 누적됐다"며 "에너지공기업의 유동성 위기와 안정적 에너지수급, 금융시장 등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요금정상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한전에선 요금이 인상되지 않으면 한전채 발행이 늘어나 금융시장 경색을 가져올 수 있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 후 정승일 한전 사장은 "한전채 발행이 금융시장 경색을 가져오거나 회사채 발행 수요를 위축할 우려가 있다"며 "한전채 발행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한전만의 노력이 아니라 요금인상 시기나 폭과 연결된 부분이 있어서 한전채 외에 자금 조달 방안이 뭐가 있는지를 설명했다"고 밝혔다.
올해 한전채는 이날까지 8조5400억원이 발행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발행량(7조46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 1분기말 한전채 잔액은 지난해 1월보다 72% 증가한 68조300억 원으로 집계됐다.
2분기 전기요금 인상 보류로 한전이 한전채 발행량을 늘릴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하반기 고금리인 한전채가 과다 공급되면서 국내 채권시장의 수요가 잠식되고 국채와 시장금리의 동반 상승을 유발했던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
2분기 요금 인상이 미뤄지면서 증권가에선 한전의 올해 영업손실 추정치를 기존 예상치였던 8조원대에서 12조원대로 늘렸다. 요금 인상 보류로 한 달 적자만 1조원에 달하게 된 것이다. 한전의 적자는 한전 지분 33%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부실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문가들은 금융 시장에서 사채 문제가 심각하고 이를 미래 사용자에 떠넘기는 불공정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며 "시민단체 참석자들도 대체로 '요금 정상화'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전했다.
당정은 현장 방문 등 추가논의를 거쳐 전기·가스 요금 인상 시기와 폭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의견 수렴 등 절차에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실제 정부는 소비자단체는 물론 기업과 전력·가스산업계의 의견도 청취한다는 방침이다. 여당은 한전·한국가스공사 재무구조 검증과 함께 전문가와 일반국민 의견까지 들을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날 간담회는 전문가와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됐는데 앞으론 전력·가스산업계와 기업들의 입장도 들을 계획"이라며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한전과 가스공사는 계속 자구 노력을 하라는 당의 주문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빠른 시일 내 요금 인상이 결정되긴 어려워 보인다. 여당 주도로 민·당·정 간담회가 열리면서 전력당국인 산업부가 정치권까지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도 난관이다. 박 정책위의장은 "시점에 대한 결론을 내고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전기·가스요금 결정에 정치권의 개입이 과도하다"며 "요금 인상 결정을 위해 당정협의회가 열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세종=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안재용 기자 po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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