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영화 <더 웨일(The Whale)>

최재민(외부기고자) 2023. 4. 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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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렌든 프레이저의 인생 연기

272kg의 거구로 세상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대학 강사가 9년 만에 만난 10대 딸과 쓰는 마지막 에세이를 쓰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 <더 웨일>. ‘연기 연출의 거장’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이 제작과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분장상을 수상했다.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주인공 ‘찰리’(브렌든 프레이저)는 온라인 대학 강사로, 카메라 뒤에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학생들에게 작문을 가르친다. 죽은 연인에 대한 상실감과 함께, 사랑에 빠져 아내와 딸을 버렸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찰리는 결국 강박적 폭식으로 자멸하기 시작한다. 그의 곁에서 찰리를 지키는 간호사 ‘리즈’(홍 차우)는 전 연인의 여동생으로, 찰리를 돌보며 오빠에 대한 그리움을 채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느낀 찰리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10대 딸 ‘엘리’(세이디 싱크)를 집으로 초대하고, 매일 자신을 찾아와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대학 시절, 비만이 있는 성적 소수자로 음식과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가졌던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미국의 극작가 사무엘 D. 헌터의 연극 ‘더 웨일’이 원작으로, 각본도 직접 썼다. <조지 오브 정글>과 <미이라 3부작>으로 90년대 톱스타가 된 브렌든 프레이저가 분노와 고통, 슬픔을 폭식으로 견뎌내는 ‘찰리’ 역을 맡아 ‘인생에 단 한 번 해낼 수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촬영 중 부상으로 생긴 건강 이상, 이혼과 양육비 문제, 성추행 폭로 이후 슬럼프 등으로 할리우드에서 자취를 감췄던 그는 이 영화로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와 2023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드라마틱하게 컴백한다. 오스카 수상 이후 ‘브레네상스(브렌든+르네상스의 합성어)’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할 정도. 그의 인생에서 ‘찰리’의 모습이 얼핏 겹쳐진다. 주인공이 거의 소파에 앉은 채로 모든 장면이 집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영화에서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극한에 달하는 몸무게를 표현하기 위해 45㎏의 보철 모형을 착용한 채 감정 표현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딸 엘리 역은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의 ‘맥스’ 역으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세이디 싱크가 맡아 반항기 안에 진솔함을 숨긴 복합적인 캐릭터를 선보인다. 영화 <다운사이징>으로 골든 글로브 시상식과 미국배우조합상(SAG)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홍 차우는 찰리를 돌보는 유일한 친구 ‘리즈’로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명단에 생애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더 웨일> 속 주인공들은 복합적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이 ‘크고 많은 사랑을 품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찬사를 보냈던 것처럼, 찰리 역시 긍정적이고 삶과 모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괴로움을 폭식으로 달랜다. 버림받은 상처를 분노라는 두껍고 어두운 갑옷으로 감춘 엘리는 날카로운 혀로 사람들을 괴롭히며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폭력적으로 굴지만, 어느 순간 찰리와의 대화를 즐긴다. 간호사 리즈는 찰리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면서 열심히 보살피지만, 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를 채우기 위해 그의 음식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이들은 과거의 아픔이나 자신을 아끼는 상대방과 손쉽게 화해하지 않는다. 자신 안의 슬픔과 마주하며, 그간 미뤄왔던 것들을 해결하는 과정 역시 친절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게 우리의 삶 아닐까. 허먼 멜빌의 『모비딕』과 월트 휘트먼의 『나의 노래(Song of Myself)』 등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극의 마지막, 드디어 일어나 딸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주인공의 모습은 『모비딕』 속 거대한 고래의 모습과 겹쳐진다. 죽음을 앞두고도 뒤에 남겨질 딸을 걱정하는 마지막 정규는 뜨거운 눈물을 흐르게 만든다. 찰리가 영화 내내 계속 되뇌는 에세이를 쓴 주인공이 누군지 알게 되면 큰 반전을 느낄 수 있다. 러닝타임 117분.

[글 최재민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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