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차별해소” 외친 노동자들, 감형됐지만···손배·형사재판 남아

김희진 기자 2023. 4. 6. 17: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앞 ‘불법파견 시위’ 김수억 전 지회장, 실형→집행유예 감형
여전히 남은 재판과 손배 소송…“끝까지 투쟁”
김수억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 지회장이 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판결 선고 직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왼쪽)도 이날 김 전 지회장의 선고가 진행되는 법정을 찾았다. 김희진 기자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김수억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 지회장이 2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이원범)는 6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지회장의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전 지회장 등의 2019년 1월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관련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했다”며 “위헌적 법률에 대해선 처벌 법규를 적용할 수 없다고 보고 무죄로 판단했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대통령 관저 100m 이내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 법률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김 전 지회장 등은 2019년 1월 고 김용균씨 사망 사건 진상규명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기습 시위를 벌인 혐의, 2018년 7월부터 2019년 1월 사이 서울지방고용노동청·대검찰청 등 앞에서 점거농성과 집회를 벌인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당시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을 비롯해 불법파견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정부를 규탄하고자 점거농성에 나섰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 위기에 처했던 김 전 지회장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자 방청석에선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굳은 표정으로 피고인석에 섰던 김 전 지회장은 동료들 격려를 받으며 법정을 빠져나왔다.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도 이날 법정을 찾아 김 전 지회장의 손을 맞잡고 격려했다. 김 전 지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대부분 1심보다 형량이 줄었다.

당장 실형은 면했지만 김 전 지회장이 모든 혐의를 벗은 건 아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불법파견이나 비정규직은 반드시 해결돼야 할 문제가 맞고, 노동자들 주장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대외적으로 주장을 제시하는 방법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는 없는데 선을 넘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일부 혐의에 대해선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봤다.

김 전 지회장은 이 사건 외에도 코로나 확산 전후로 비정규직 문제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들로 또 다른 두 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2018년 불법파견을 처벌하라고 파업을 벌였다가 사측으로부터 당한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 중이다.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400여명의 불법파견을 인정했지만 노동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12년 만에 대법원 판결을 얻어냈지만 투쟁의 상처가 남은 것이다.

김 전 지회장은 판결 직후 “가장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본적인 조건들을 바꿔 나가자고 요구해왔지만, 경제는 어려워지고 노동자들에 대한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청구가 더 남발되는 상황”이라며 “위축되지 말고 더 싸우라는 뜻이 (감형) 판결을 이끌어 낸 것 같다. 앞으로 더 힘차게 투쟁할 것”이라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