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산불피해지서 멀쩡한 나무까지 벌목···“긴급벌채로 돈벌이” 의혹
“업자·산림소유자, 정부 돈으로 나무 베고
생산된 목재는 다시 팔아 ‘이중 돈벌이’”
지난해 발생한 동해안 산불 피해지역 복구 과정에서 멀쩡한 활엽수림까지 긴급벌채 대상에 포함돼 훼손된 것으로 확인됐다. 산림청과 지자체가 시행하는 긴급벌채를 벌채업자와 산림소유자가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의혹이 나온다.
6일 윤미향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무소속)이 공개한 현장 사진과 산림청 제출 자료 등을 보면 산불 피해지역인 강원 강릉시 옥계면에서 문제없이 자라던 활엽수들까지 긴급벌채 명목으로 훼손됐다. 이곳은 사유림으로 잣나무 조림지에 활엽수가 유입돼 자라고 있는 곳이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섞여 자라는데 산불로 피해를 본 잣나무뿐 아니라 멀쩡한 활엽수들까지 벌목 대상이 됐다.
윤 의원실 보좌진이 현장 방문으로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지적할 때까지 산림청은 이를 모르고 있었다. 지난달 11일 경남 하동 지리산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산불 사례를 통해 대형 산불마저 이겨내는 활엽수림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수십 년을 자란 활엽수들이 마구잡이로 벌목되고 있다.
윤 의원은 산불 피해지에서 활엽수까지 베어버린 것은 산림청의 ‘산불피해지역 긴급벌채 작업지시서’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작업지시서에는 “소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 피해목은 벌목하고, 생육하는 활엽수는 소생 가능성이 많아 벌채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의원실에서 확인한 지역은 활엽수들 덕분에 산불이 수관화가 아닌 지표화 형태로 진행하면서 활엽수뿐 아니라 소나무 중에도 살아남은 개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숲은 긴급벌채지로 지정되면서 ‘싹쓸이 벌목’이 진행됐다. 수관화는 나무의 가지나 무성한 잎을 태우며 지나가는 산불, 지표화는 땅에 가까운 잡초·관목·낙엽 등을 태우는 산불이다.
잘려 나간 나무들은 긴급벌채지 인근 산림조합 목재유통센터로 옮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윤 의원은 “벌채사업자와 산림소유자가 정부 예산으로 멀쩡한 나무를 베고, 다시 이 나무를 팔면서 이중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림청 ‘긴급벌채 집행 기준’에 따르면 “긴급벌채로 인해 생산된 목재는 벌채사업자와 산림소유자의 계약을 통해 대리매각이 가능”하다. 이 규정 때문에 멀쩡한 숲에서 산불 피해를 명목으로 한 벌목이 진행되고, 벌채사업자와 산림소유자가 나무를 팔아 돈을 버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또 울진·삼척산불 피해지의 긴급벌채 지정지역은 강원 542곳, 경북 511곳에 달하지만 산림청은 실내에서 간담회만 진행했을뿐, 현장점검은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산림청은 이 같은 지적이 나오자 울진, 강릉, 동해, 삼척 등 산불피해지역의 1214필지, 1218㏊(헥타르)에 대해 산불피해 긴급벌채가 규정에 맞게 추진되고 있는지 지자체와 함께 일제 점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산림청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긴급벌채는 지자체가 발주하고, 산림청은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며 “윤 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지역을 포함해 긴급벌채지역에 대해 오는 5월말까지 드론, 현지 조사 등을 통해 점검한 뒤 긴급벌채제도의 미비점을 보완·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현행 산림보호법에는 긴급벌채와 관련된 기준과 지침이 없어 불에 타지 않은 멀쩡한 나무를 벌채해도 법·행정적 조치가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긴급벌채지역에서 발생하는 무분별한 삼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벌채에 대한 사전타당성 조사 및 사후점검 실시 규정 등을 담은 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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